재봉하며 소설 읽기
지퍼는 겉지퍼와 속지퍼가 있다. 속지퍼는 주로 여성의류에 많이 쓰이는데 지퍼고리를 올리면 지퍼가 보이지 않는다. 겉지퍼는 점퍼나 청바지 같은 편안한 옷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패브릭 소품에도 많이 쓰인다. 나는 파우치나 쿠션, 베개, 의자 커버를 만들 때 주로 이불용 지퍼를 호수대로 사 놓고 사용했다.
지퍼를 천에 박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왼쪽과 오른쪽을 갈라야만 한다. 그리고 지퍼 알을 갈라둔 오른쪽과 왼쪽을 모아 꽂은 후에 쭈욱 당기면 지퍼가 채워진다. 이때 왼쪽과 오른쪽의 이가 제대로 맞물리지 못하면 지퍼는 틀어지고 어긋난다. 셔츠를 입을 때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옷이 틀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퍼가 틀어지게 되면 소품을 완성할 수가 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반드시 빼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지퍼 알은 생각보다 작다. 지퍼의 구멍은 더 작다. 그곳에 너덜거리는 지퍼 끝을 잘 끼우고 손으로 톡톡 치면 지퍼가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마음이 급한 날은 그게 또 잘 안 들어간다. 그럴 땐 끝을 좀 자르고 하면 훨씬 잘 된다.
그런데 지퍼가 너무 잘 들어가는 날은 의심해 봐야 한다. 지퍼 알이 지퍼보다 호수가 큰 경우는 쉽게 들어간다. 잘 들어간다고 의심 없이 진행시켜봤자 결국 실패다. 지퍼는 갈라져 있던 왼쪽과 오른쪽이 지퍼 알을 거치면서 하나로 맞물려야 하는데 지퍼 알이 크면 맞물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딱 맞는 것이 필요하다.
조해진의 단편소설 <흩어지는 구름>에서 주인공 '나'는 동거남 호재와 함께 동생 집을 방문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자기 꿈은 포기하고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호재는 마치 자기가 '나'의 남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군다. '나'의 동생을 처남이라고 부른다든가, '나'의 엄마가 남긴 유산을 궁금해하는 등 선을 넘는다. '나'는 결국 호재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사귀고 있어도, 숫제 같이 살고 있어도 결혼 제도로 묶일 만큼의 결단은 없었던 것이다.
재봉이나 인간관계나 선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출발지도 중요하고 선택지도 마찬가지. 어디에 서 있든 아닌 것을 끼워 맞추려고 하다간 사달이 난다. 잘못 끼운 줄 알면서 일을 진행시켜 버리면 어긋난 지퍼처럼 틀어져 버리는 게 삶이다. 선택이란 그런 것이다. 잘못된 줄 알면 빨리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슬픔도 실망도 절약할 수 있으니까.
얼마 전까지 했던 고민 중에 '친한 친구는 언제까지 친한 친구일까?'가 있었다. 정말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들이 어느 날부터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내가 먼저 해본 적도 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가족도 모르는 속엣말까지 다 터놓고 흉금도 없었던 사이가 점점 소원해지기 시작하니 내 탓부터 하게 되었다. 사람은 당황스러운 일을 만나게 되면 일단 자기 탓부터 하는 심리가 있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그 사람이 그럴까 싶어서. 그 시기를 넘고 나면 궁금함이 서운함이 되고 섭섭했던 마음은 관계를 포기하기까지 이른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포기를 선택하지 못하면 결국 시답잖은 관계에 얽매이느라 시간낭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로 번지기 전에 어긋난 지퍼에서 지퍼 알을 빼버리듯 빨리 포기하고 새로운 관계를 정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리 우리가 행복한 한때를 가졌어도, 예전에는 가슴 한쪽이 찌르르할 정도로 좋아했어도 그 추억을 상쇄할 만큼의 균열이 우리에게 생겨버렸으니까.
아닌 건 아닌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