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박 Sep 20. 2021

'부당함'하면 뭐가 생각나세요?

부당함에 대하여 글을 써야 한다. 에세이 한 꼭지를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주제 삼아 매주 한 편씩 쓰고 있다. 이번 주는 임경선의 에세이를 읽었다. <부당함에 저항하기>!!!


가만 보자, 난 어떨 때 부당함을 느꼈을까? 내 존재가 상대가 추구하는 가치에 비해 현격히 보잘것 없어질 때 나는 부당함을 주로 느꼈다. 정의를 내리고 나니,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선명한 어느 젊은 상처가 생각난다.



출처 픽사베이

스물한 살 때 신발을 수선하러 갔다. 20년 전에 십만 원을 넘게 주고 산 신발이니 꽤 값이 나갔다. 게다가 대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비를 받아 큰 마음먹고 지른 신발이었다. 유명 메이커보다 내 마음을 끈 신발은 로드샵에서 파는 일명 보세였다. 스무 살 때 사서 여름 한 철을 신고 다음 해에 끈이 떨어져서 수선이 되는지 물어보려고 가져갔다. 수제화이기 때문에 그렇게 비쌌는데 1년 전에 구매할 때 아저씨는 '수제화라 오래 신을 거라며 문제 생기면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예언처럼 1년 만에 신발은 망가졌고 속상했지만 고쳐서 신으면 되지 싶었다. 그 가게는 사장인지 점원인지 몰라도 지나갈 때마다 아저씨 두 명이 번갈아가면서 지키고 있었는데 맡기던 날엔 호리호리한 아저씨가 있었다. 신발을 맡겨도 되냐는 말에 그는 흔쾌히 대답했고, 노트를 내밀며 번호를 부르라고 했다.


두 주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여름 신발인데 언제 신어 보나 싶다가도 재촉하는 진상 손님이 되고 싶지 않아 삼 주 넘게 기다리다가 친구와 함께 점포를 찾아갔다.


내가 사는 도시의 랜드마크 축에 속하는 제법 큰 쇼핑센터 3층에 자리한 그 가게. 그날은 마침 그 쇼핑센터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절호의 기회가 됐다. 호리호리한 아저씨는 없고 덩치가 좋은 아저씨가 가게를 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아주 반가운 얼굴로 우릴 맞았는데 내가 A/S 맡긴 걸 찾으러 왔다니까 눈에 띄게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름이 뭔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가 아니라 '이름이 뭔데요'일 때 물러났어야 했을까? 내가 이름을 말하자 신경질 난 사람처럼 장부를 퍽퍽 넘기던 아저씨는 '없는데?'라며 공책을 탁 덮었다. 그럴 리 없다고 3주 전에 호리호리한 아저씨에게 맡겼고 그 장부 앞에서 번호를 불러주었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없다고 나가라고."


2000년이 되고서 들어본 가장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학생이 잘 못 알았나 봐요'라고  친절하게 답변해 줘도 사기당한 기분일 판인데, 아저씨는 내가 왔다간 자체를 인정하는데 단 1분도 할애하지 않았다. 대충 맡겨놓은 책가방처럼 황망하게 서 있었다. 아저씨는 육두문자를 써서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XX, 안 들려? 나가라고!"


20년 전에 보세 옷가게 주인들은 거칠었다. 물론 다는 아니었지만 무서운 인상의 언니(?)들이 많았다. 환불은 당연히 불가고, 교환도 눈치 보면서 했다. 절대로 남는 돈은 주지 않아서 웃돈을 얹어 다른 옷을 추가로 골라가야 했고, 그런 옷엔 할인도 립서비스도 없었다. 그런데는 '안 가면 그만이다' 하려고 해도 이상하게 그 옷가게 옷이 마음에 드는 걸 어쩌랴. 그런 불친절한 로드샵에서 투덜거리며 나와 본 적은 있어도 기본적으로 두려워서 클레임 한 번 걸어 본 적 없던 나였다. 어려서 그렇기도 하고, 큰 소리가 나면 무서웠다. 이기지도 못할 것도 같고.


그런 내가 신발을 찾으러 갈 때 친구랑 간 이유도 보세는 친절하지 않다는 고정된 관념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혹여라도 그곳에서 부당한 일을 겪게 되면 친구가 안전막이 돼 줄 거란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 나를 잡아당겼다.


"한박아, 가자. 네가 착각했나 봐."

"무슨 소리야, 여기 맞다니까!"


나는 천장에 붙은 가게 이름 패널과 주인인지 점원인지 모를 아저씨를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노려보았다. 아저씨는 갑자기 작은 소파에 앉더니 잘 꼬아지지도 않는 왼쪽 다리를 오른 허벅지에 열십자 모양으로 올렸다. 등을 기대자마자 손목을 밖으로 털다시피 흔들며 그야말로 '훠이훠이' 했다.


지금 같았으면 나도 육두문자를 날리며 당신이 사장이냐, 여기 CCTV 돌려봐라 따지고 덤볐을 것이다. 아니면 좀 더 평화적으로 -이를 꽉 물고- 내가 장부 좀 봐도 되겠느냐고 물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그보다 더 먼저 신발을 맡길 때 수선증을 받았어야 했지만!



아저씨가 추구한 가치는 무엇일까? 이 애들은 절대로 손님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을까, 아니면 맡기지도 않은 물건을 달라고 떼쓰는 사기꾼으로 본 걸까, 그도 아니면 개인적으로 다 귀찮았던 걸까, 아니면 내 신발이 분실 혹은 파손된 걸까? 혹시 내가 정말 가게를 착각한 것은 아닐까? 우연히 옆 가게와 장부가 같았던 거 아닐까? 그 빨간 소파와 수평이 잘 안 맞던 좁고 둥근 테이블과 바닥까지 진열된 신발들이 다 꿈이었을지도.


뭐가 되었던 나는 부당하다는 단어가 떠오를 때 자동으로 신발 가게 사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내 친구 K의 행동이 지금도 서운하다. 곁에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고, 오히려 네가 착각한 게 아니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지금 당장 신발을 사지 않는 자는 손님이 아니라 잡객이라 한눈에 봐도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육두문자를 날려 쫓아낸 그 아저씨만큼이나 친구가 미웠다. 그 후로 난 어떠한 일에도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그냥 친구에게 화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도 결국 나처럼 무서웠던 것뿐일 텐데!


가게에서 나온 우리는 멍하니 걸었다. 반대방향으로 걷는 바람에 하행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선 그 가게를 다시 지나쳐야 했지만 우리는 빙 돌아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결국 1층으로 내려와서 말했다.


"우리 일찍 들어가자."


한 번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경찰을 불러서 아저씨의 장부를 빼앗아 내 이름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느냐며 소비자 보호원에 고발하는 수고까지 불사해 야코를 죽일 것이다. 아니면 우리 엄마라도 불러서 어른과 어른이 해결하게 할 것이다. 실제로 엄마가 나의 부당함을 해결해 준 사건이 바로 등장하기 때문에.


하지만 돌아갈 수 없고, 나는 그 신발을 그대로 잃었다. 내 하루와 자존심을 뺏겼다. 당시는 나 자신이 밉고 창피했다. 버스 안에서도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다. 오늘 나는 즐겁게 외출해, 신발을 찾을 기대를 품은 것 밖에 없는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입도 벙긋 못했으면서 왜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자책하느라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부당한 일은 그 후로도 내내 찾아왔다. 나이를 먹고 , 다양한 일들을 겪을수록 내성도 생기고, 방법도 터득했다. '참나'를 골백번 찾으면서 내내 험담을 되풀이하기도 하고, 악당에 대한 정보를 친구들에게 퍼트려 위안을 삼기도 했다. 이런 소심한 복수 이외에도 정당한 방법을 동원해 바닥에 떨어졌으나 반드시 소유해야 하는 가치를 되찾은 적도 많다. 그러나 이 일은 절대 잊히지 않았다. 치유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애쓴다. 친절이 증명되지 않은 가게에서는 절대 물건을 사지 않는다. 아니라면 다시는 가질 않는다. 이왕 안 갈 바엔 상대가 얼마나 무례한지 되짚어주기도 한다. 귀찮아도 하자가 있는 무엇은 교환을 요구한다. 다시는 잃지 않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당당하고 정당하게. 그리고 반대의 입장에 섰을 때 내가 원하는 가치를 위하여 함부로 상대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시키지 않기로 다짐했다. 특히 나보다 어릴수록 더욱더.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고 저항하는 일은 아주 작아 보이는 문제라도 불안하고 외롭고 두려운 일이다."

                             -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중에서


사이다를 원하는 독자께는 미안하지만 이 글은 여기서 끝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 글을 쓰며 마음이 나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무슨 힘일까? : )

매거진의 이전글 카톡 공해에서 살아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