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남편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안 채워요. 왜 안 채우는지 모르겠어요."
모임 중에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나도 잘 안 채우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게 매번 사이드 왜 안채우냐고 물어봤고 나는 차가 미끄러지는 것도 아닌데 왜 걸어야 하냐고 반문하기 일쑤라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묻지도 않는다. 기실 그런 것이, 평지에서, 그것도 안전한 주차장에서 굳이 한 번의 힘을 더 들여서 파킹 브레이크를 채우는 게 꼭 필요한가 싶다. 노 기어에 둔 것도 아니고 파킹에 두었는데 뭐가 문제야?
물론 나도 내리막길에서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반드시 잠가둔다. 경사로에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았다가는 대형참사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핸들도 옆으로 돌려두어 미연의 사태를 막는다. 경사로가 너무 심한 곳에 주차할 때는 돌을 주워다가 바퀴 밑에 댄 적도 있다. 내가 이렇게 철저하다고!
그렇다면 사이드(파킹) 브레이크는 선택일까??
"언니 핑크 뮬리 보러 가자"
2년 전, 친한 동생 줄리와 나는 각자의 아이들 둘을 데리고 핑크 뮬리를 보러 갔다. 우리가 검색한 장소는 천안시 외곽에 있는 모 카페였다. 카페에서 심은 핑크 뮬리가 장관이라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줄리와 나는 모두 운전을 오랫동안 했는데 줄리의 차보다 내 차가 크기도 하고, 줄리가 자주 차를 태워주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 차를 고집했다.
아쉽게도 간 곳이 영 별로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카페에는 앉을 곳도 없었을뿐더러 핑크 뮬리가 심긴 밭(?)도 뭔가 엉성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밀조밀해서 사진을 찍으면 그 사람들과 단체 사진이 됐다. 아이들은 징징 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배고파. 엄마, 케이크 있다고 했잖아. 엄마 다리 아파.'
몇 장 찍고 가자고 말했는데 사진을 찍었더니 핑크 뮬리는 보라 뮬리인지 회색 뮬리인지 그냥 벼인지 알 수 없게 나왔고 우리는 엄청 실망했다.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도시 외곽인 데다가 워낙 안 쪽에 들어가 있는 카페여서 다시 주차장으로 걸어 나와 큰 도로로 빠져나오는 데만도 꽤 걸렸다. 아이들은 이성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단 것이 필요했다. 게다가 줄리는 휴대폰 배터리가 없다면서 충전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와 그녀는 다른 기종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충전이 불가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젠더! 아주 작은 사이즈의 젠더만 있으면 나의 차량용 충전기에 꽂아서 충전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편의점을 찾아야 했다. 사실 거기만 가면 모두 해결이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간식거리도 찾을 수 있고, 휴대전화를 충전할 도구도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근처의 다른 카페라도 다녀가기로 했다. 주차가 용이한 편의점이면 더 좋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그런 곳이 있었다. 편의점 앞의 너른 터에는 20대도 더 댈 수 있는 주차공간이 있었다. 자갈이 깔려 있어서 덜덜 거리면서 진입해 차를 세웠다.
고백을 하나 하자면, 당시 나는 차를 바꾼 지 얼마 안 됐었다. 동생이 타던 SUV를 넘겨받아서 타게 됐는데 이전의 내 차도 비슷하게 생긴 차였다. 운전을 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별다른 사고도 없었고, 어려운 길도 척척 갔기 때문에 아마도 오랫동안 교만하지 않았나 싶다. 오랜 버릇 중의 하나는 정차시나 잠깐 주차 시에 기어를 'N'에다가 놓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주 위험했지만 별다른 감지를 못했던 것은 내리기 전엔 항상 브레이크를 놓고 몇 초 가량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내 차가 밀리지 않으면 내려서 목적한 일을 해치웠고, 밀리면 당연히 'P'기어에 두거나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워두었다.
그날 편의점 앞에 차를 가로로 받치고 시동은 꺼두었다. 편의점 마당은 분명히 평지였고, 돌도 깔려 있었다. 나는 기어를 'N'에 둔 것도 모른 채-아니 관심 없는 채- 습관처럼 차에서 내렸다. 줄리도 내렸고, 내 딸 보미도 내렸다. 줄리 아들 주니는 안 내리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주니야, 너 안 내려? 내려서 아이스크림 사자."
"안 내려 엄마가 사와."
그렇게 주니는 차에 있고, 우리 셋은 내렸다. 나는 생수를 사고, 보미는 과자를 고르러, 줄리는 충전 젠더와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었다. 불현듯 밖을 내다봤는데 분명히 차가 세워진 자리에 있어야 할 차가 사라지고 없었다. 차에서 내릴 때 왼편에 베이지색 경차가 있었는데, 그 차는 그대로 세워져 있고 내 차가 안 보였다. 만약에 내 차가 있다면 경차는 가려서 보이질 않았어야 했다. 계산이 안된 생수를 아무 데나 놓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경악했다.
내 차는 후진으로 주차장을 빠져나가서 이차선 도로를 지나 논두렁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미세하게 천천히 굴러가고 있었다. 차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주니가 타고 있었다. 주니는 고작 일곱 살이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움직일 수 없단 말이 맞다. 3,4초가량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어, 어, 어'만 반복했다. 작지만 분명하게 '푹'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서야 나는 2차선 도로를 보지도 않고 막 달려갔다. 도로 건너편에는 논이 펼쳐져 있었다. 차는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다행히 그곳은 급커브길이어서 마을에서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돌로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교각 끝에 다리 이름을 표시해둔 돌 끝부분에 차 트렁크 문이 걸렸다. 차의 무게 때문에 그대로 찌그러졌지만 추락한 것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나는 차 문을 벌컥 열고 주니를 봤다. 주니는 계속 게임 중이었다. 아이는 차가 이만큼 밀린 것도, 자기가 얼마나 위험했던 것인지도 모르는 듯했다.
"주니야, 괜찮아?"
주니는 나를 보고 끄덕거리곤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편의점 쪽을 바라보니 그제야 줄리와 보미가 나왔다. 줄리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기어를 파킹으로 올리고 시동을 걸었다. 차를 몰고 다시 편의점 앞으로 갔다. 돌과 맞닿은 부분이 빠져나오면서 우지끈 소리를 냈다. 줄리는 차마 차가 미끄러졌다는 생각은 못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손이 벌벌 떨렸고, 계속 울었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아무리 봐도 평지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이전 차는 'N'에 두어도 잘 밀리지도 않았는데 이 차는 어떻게 같은 RV 차량인데 이토록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안 다친 것도, 심지어 놀라지도 않은 것에 울면서 감사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차가 점점 뒤로 빠지고 있을 때 2차선 도로에 쌩쌩 달리는 차라도 지나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곳이 급커브 구간이 아니어서 그 돌담이 없었더라면? 내차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꺾여서 다른 곳으로, 혹은 가속이 붙어서 세게 박았더라면. 무수한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은 내게 운전자로서의 자격이 있냐는 것이었다. 너무나 교만했고, 타성에 젖었고, 무지하고 무식했다. 순전히 운이 좋아서 여태까지 안전을 보장받았던 것이다. 안전 불감증의 말로가 이토록 위험천만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내가 줄리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 엄청 화냈을 것이다. 하지만 줄리는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언니, 괜찮아. 언니 주니 괜찮잖아. 게임하느라고 차가 움직이는 것도 몰랐대. 언니, 애 안 다쳤잖아. 내가 데리고 내렸어야 했는데. 언니 운전할 수 있겠어? 우리 근처에 어디라도 가자, 응?"
줄리의 마음이 어땠을지 완벽히 다 알지는 못한다. 알았다고 해도 나는 할 말이 없고 그녀가 나를 고소해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뱃속에서부터 알았고, 낳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조카처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아이를 다치게 할 뻔했을 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고, 때론 가족처럼 삶을 나누기도 하는 소중한 친구를 잃을 뻔했다. 그것이 운전습관 때문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자만에서 기인한 오만, 그 이상엔 뭣도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는 개인은 어떠한 행위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그 행동은 타인과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제한된다."
차병직 외, [지금 다시 헌법] 중에서
안전벨트 미착용에 대한 판례를 책에서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안전띠를 안 매면 많이 다치는 건 알지만 개인의 선택인데 왜 벌금을 매길까? 안전을 우습게 아는 생각이 공동체의 이익에 어긋나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그렇다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 행위가 습관이 된다면 어떨까? '전엔 안 그랬어, 밀릴 줄 몰랐어'라고 말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것 역시 공동체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 아닐까?
더 이상 나는 'N'기어 상태로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내가 차 안에 있을 경우라도 주정차 중에는 'P'에 두고 있는다. 이젠 습관이 됐다. 그런데 사이드 브레이크는 또 안 채우고 다녔다. 부끄러웠다. 남의 남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왜 민망할까?
안전 불감증이 한 번만 오는 건 아니구나 싶어서다. 부지불식간에 여전히 사이드쯤은 안 채워도 되겠지 하는 생각이 스물 거리고 올라왔던 것이다.
남편은 답답할 정도로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 연애할 때는 그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인적이 드문 도로면 조금 어겨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택시 운전사였던 시아버지는 아들에게 운전을 알려주자마자 법규부터 준수할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고 했다. 차근차근 습관이 돼서 지금도 안전하게 운전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답답한 일이 아니라 인간성이고 준법성이다.
이제 나도 처음 운전하는 것처럼 새로운 습관 하나를 연습 중이다. 정확하게 주차하고 파킹 브레이크 버튼을 잊지 않고 발로 밟는다. 계기판에 빨간 불로 브레이크 표시가 뜨면 그때 시동을 끄기로 했다. 아무리 급해도, 시각적으로 아무리 안전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
주니는 잘 자라고 있다. 3년쯤 돼서야 나도 핑크 뮬리를 맘 놓고 감상할 수 있게 됐다. 그 풀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아마 잊지 말라고 해마다 자라는 모양이다. 줄리와 같이 분홍빛 풀 사이에서 사진 찍고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진짜 다행이고 감사하다. 모두에게의 안전은 이만큼 눈이 부신 일이구나 새삼 깨닫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이드 브레이크는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