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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Dec 07. 2021

개띠 엄마고 83년생이에요

스물넷에 엄마 되기2


 2006년도에 아들을 낳았다. 친구들은 모두 입신양명에 힘쓰고 있었고, 남편은 바빴다. 육아서를 탐독하며 아기를 키우고자 했지만 심심했다. 맘 카페를 기웃거리는데 ‘13개월 아들 키우고 있어요, 같이 점심 먹어요’.'주곡동 사는 돼지띠 맘이에요, 놀러 오세요’처럼 번개모임을 원하는 글이 많았다. 지금은 코로나 같은 질병 때문에도 그렇고, 개인정보나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불가능에 가깝지만 당시는 그런 위험에 대한 감수성이 없었다.

 

나도 한번 가볼까 싶어서 댓글을 달았다. ‘저는 개띠 엄마고 83년생이에요.’ 아래로 대댓글이 몇 개 달렸다. 나와 나이가 같은 엄마도 있고, 아이끼리 띠가 같기도 했다. 남편이 83년생이라는 엄마도 있었다. 내 주변에선 내가 가장 어린 엄마인데 맘 카페에 들어오니 비슷한 또래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기연 맘은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동네에 살았다. 아이는 내 아이보다 한 살 어렸다. 나와 나이가 똑같다고 놀러 오라길래 갔더니 나 말고도 몇 명의 엄마들이 더 있었다. 나처럼 처음 온 엄마도 있었고, 여러 번 왔었는지 자기 집 주방인 듯 편하게 드나들며 컵이며 그릇 일속을 꺼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차가 날라져 왔다. 나는 휴지를 사 가지고 갔는데 빵이나 과일을 사 온 엄마들도 있었다. 아기들은 기거나 걸었다. 엄마들 모두가 한 번에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거의 없었다. 몇 명이 대화를 하면 몇 명은 흩어져서 자기 아기들을 돌보러 다녔다. 기연이는 이제 막 붙잡고 서서 옆으로 이동하는 능력만 가진 8개월짜리 아기였고, 내 아들은 걸을 수 있는 13개월이었다. 아기가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만지러 다니는 바람에 수다스럽게 들리는 이야기는 멀리서 귀동냥만 해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연 맘이 나를 콕 집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미 엄마, 내가 준식 엄마 얘기했나?


 

 오래전부터 기연이네는 이런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기연이 형 때부터 독박 육아를 하다 보니 외로웠는데 인터넷 카페에서 사람들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즐겁게 평일을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하루는 맘 카페에서 가까운 동네의 개띠 엄마들을 초대했는데 준식 맘도 그때 만났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준식이 아빠는 기연의 외삼촌과 같은 회사에 다녔기에 기연 맘은 더 반가웠다고 한다. 그런데 만남이 거듭되면서 이상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기연아, 나 어제 너네 집에서 2만 원이 없어졌어.”

 “무슨 소리야, 2만 원이라니.”

 “분명히 지갑에 4만 원이 있었단 말이야. 자장면 값 계산하려고 지갑을 열었더니 2만 원만 들어 있는 거야.”


 ‘네가 착각한 것 같다, 훔쳐가려면 다 훔쳐가지 않겠냐’ 말했다. 전화 건 사람은 ‘그런가?’만 연발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다음 모임 후에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언니, 있잖아요. 치사한 말 같아서 안 하려고 하는데 뭔가 찜찜해요.”

“뭔데 그래?”

“그 언니 있잖아요, 준식이 엄마. 현관 밖에서 남편이랑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준식이를 태준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무슨 소리야, 잘못 들었겠지.”

“아니에요. 그리고 지난번에 우리 모임 할 때 내가 언니네 작은방에 가방을 두고 코트를 접어 덮어놨거든요? 근데 애가 잠들어서 재우려고 들어갔더니 내 코트를 누가 건드린 것처럼 돼 있더라고요. 심지어 가방 지퍼도 절반만 닫혀 있었어요. 침대에 준식이가 자고 있고.”


 기연 맘은 자기도 모르게 없어진 돈이 있냐고 물었다. 전화 건 사람은 돈이 얼마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무턱대고 의심을 하는 건 안 좋을 것 같아서 준식 맘을 더 잘 지켜보기로 했다. 모임 때 별다른 이상을 못 느꼈지만 며칠 후 기연 맘은 화장대 서랍에 넣어 둔 순금팔찌가 사라진 걸 알게 됐다. 무게가 있어 깊숙하게 모셔만 두는 팔찌였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서에서 알게 된 것은 가관이었다. 아기 이름은 준식이도 태준이도 아닌 준형이고, 애 아빠는 기연이 삼촌과 같은 회사는커녕 우리랑 같은 도시에 있지도 않다고 했다. 심지어 나이도 소개한 것보다 세 살이나 어렸다. 그러니까 모두 거짓이었다. 기연 맘의 팔찌를 훔치지 않았다고 끝까지 발뺌했지만 마지막 모임 날짜로 통장에 200만 원을 저금한 것을 들키고야 말았다. 기연 맘은 팔찌를 돌려받지 못했다.


 긴 이야기 끝에 나는 잠이든 아들 때문에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아이가 졸려해서 업고 재웠는데 방에 눕히면 깰까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저 이야기를 듣고 방에 들어가 아이를 눕힐 수 없었다. 실팔찌 하나 훔쳐갈 생각이 없지만 의심받는다는 건 오해가 풀린다고 해도 싫었다. 딱 한번 방문을 끝으로 기연네를 다시는 놀러 가지 않았다. 너무 사람들이 바뀌어서 정신이 없기도 했고,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자꾸 나오는 준식맘 이야기도 듣기 싫었다. 그 후에는 내가 주도해서 아파트 번개모임을 몇 번 했었다. 기연네서 만난-여기저기 흩어져 살았던 사람들과는 달리 한 동네 사니 더욱 끈끈해져서 좋았다. 하지만 집에서 만날 때는 늘 의심의 레이더를 곤두세우지 않도록 귀중품은 알아서 잘 숨겨두는 지혜(?)를 배웠다.



 지금 아기 엄마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깜짝 놀랄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모르는 사람들을 집으로 들여 간식을 나눠먹고, 오랜 시간 내 집처럼 지낸다는 것은 이젠 과거의 일이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에겐 너무도 소중한 친목의 시간이었다. 같이 밥 해 먹고, 시켜 먹고 별다른 걱정 없이, 너무 길기만 한 무료한 하루를 한탄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아기와 아기 엄마만 있는 세계는 누구에게도 민폐가 아니었다. 우리만의 세상에서 서너 시간 서로에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힘든 육아시간도 슬쩍 지나가는 기적을 체험했다. 그런 날은 남편이 조금 늦어도 덜 기분 나빴다. 물론, 기연네의 특이한 경험 같은 건 부작용이었을지 몰라도 육아라는 섬에 조난당한 우리들에겐 시끄러운 서너 시간의 온기가 , 홀로 있으면 너무도 길 하루를 탄력 있게 스킵하는 에너지였다. 나는 오랫동안 그때를 그리워했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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