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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r 07. 2024

다 잊기를 바란다

노랑이 이야기5

 너를 기억하는 일은 멀고도 험하다.


 너의 마지막을 알게 되었을 때, 너와 너보다 앞서 나를 떠난 아이들을 기억하고자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어느새 삼십 대가 된 나에게 글쓰기를 위한 시간을 더 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일같이 너보다 더 일찍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할 줄 알았던, 순진했던 어린 날의 오산처럼.




 노랑이의 사진을 많이 찍어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나는 옛날 사진을 보며 회상에 잠기는 그런 버릇이 좀처럼 들지 않는 사람이다.


 꽤나 몽상가적인 인간이었음에도, 나는 나를 스쳐간 사랑스러운 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를 주저했다. 그들은 나에게 지극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손바닥을 스치는 털들의 감촉이었고, 귓가에 울리는 다정한 울음소리였으며, 나를 향해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핸드폰 카메라 따위에는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몇 년 전까지는 가능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나의 뇌도 노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인지, 그들의 얼굴이 조금씩 흐릿해져 간다. 어쩌면 예전부터 흐렸지만, 상상의 살을 덧붙여가며 잘 기억하고 있다고 우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사진을 남기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발악일지도.


 기억만큼 쉽게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 없다. 위스키는 천사와 나눠마시게 되어있다는데, 나는 내 기억을 대체 누구와 나누고 있었나. 긴 반려와 상실을 함께한 가족들과 그 일부를 간접 경험한 친구들. 그 외에는 없었다.


  그러니 작게는 사진을 남기지 않은 것에 대한 속죄로, 크게는 그들의 삶을 그다지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속죄로 뭄바이 빨래터처럼 어지럽고도 가지런히 널린 기억의 천들을 주섬주섬 거둬들여 글을 쓴다. 나 역시 그들을 사랑했건만, 나를 사랑한 그들의 마음에는 늘 미치지 못했다. 이는  나를 아프게 찔러 기어코 눈물을 뺀다. 지금 내 곁에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는 너무도 부족했다.


 그들과 살았던 시간들이 무조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세상에 그런, 행복하기만 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뭐든 지나치면 좋을 것이 없으니까. 지금까지의 경험들에 의거, 나는 2인 혹은 3인 가구 기준 동물은 한 마리면 족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얄짤없이.




 노랑이와 긴긴 세월을 보냈음에도, 노랑이와의 세밀한 순간들을 이 이상 연이어 떠올리기는 어렵다. 기억이라는 것이 이렇게 연약하다. 어쩌면 기억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지 못한 마음에 글을 고칠 때마다 눈물을 흘려서, 그 눈물에 노랑이와의 기억이 조금씩 씻겨나가 버린 건지도. 글들의 제목에 '노랑이 이야기'라는 꼬리가 달린 것은, 다시 노랑이와의 시간들이 떠오르면 이어 써내려 갈 생각이 있어서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든 뒤에도 언제든 노랑이와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게. 나는 사진도 문장도 머릿속에서 찾아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나, 내 머리는 기억을 헤집는 일을 버거워하기 시작했다.


 내 삶을 스쳐간 모든 고양이들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되지 않을 온기와 사랑을 주었다. 그들이 주고 떠난 것들이 머리 속속들이 들어앉아 나는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노랑이와의 추억은 평생, 불현듯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남겨둘 생각이다.




 나는 노랑이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다. 내 반려동물들은 늘 내가 없는 순간을 틈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내 눈물을 더 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야속하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내가 밉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마지막 순간, 잘 다녀오라고 쓰다듬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다음 생에는 더 사랑받을 수 있는 곳에서 태어나서 나 같은 건 남김없이 잊어버리기를. 너에게 못해준 것이 너무 많은 나는 네게 기억될 만한 자격이 없다. 안녕.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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