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우리 집 푸들의 뿌리, 초코 이야기 3
초코 역시 우리 집 동물 식구 답게 예상치 못한 경로로 엄마가 되었다.
집에 오니 초코가 보이지 않았다. 찾으러 나가야 하나 전전긍긍하던 차에, 초코를 교배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쁜 초코의 2세를 보고 싶다는 아빠와 외삼촌의 합작이었다. 외삼촌은 원래 강아지를 좋아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배변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코를 싫어했던 아빠가 초코의 번식을 바랐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이미 보내버렸고, 잃어버린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으니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초코는 사흘 정도 지난 뒤 집에 돌아온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집이 낯설다는 듯 어리둥절했던, 멍한 표정의 갈색 푸들 한 마리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처음에 나는 아빠와 외삼촌이 초코가 아닌 다른 강아지를 잘못 데려온 줄 알았다. 초코는 겪어서는 안 될 일을 겪은 사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몸냄새도 이전과 달랐다.
강아지도 넋이 나간 얼굴을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초코가 어디로 교배를 갔는지 아직도 모른다. 그러나 초코에게 일어났던 일이 일등이가 겪었던 일과는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은 다녀온 초코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일등이는 우리가 일등이를 데려온 펫샵에서 키우는 초록 눈의 페르시안 고양이와 교배를 했다. 일주일은 그곳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둘에 관한 여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초코의 경우 우리는 초코 혹은 초코의 교배에 관해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으며, 돌아온 초코는 2주 넘게 이상행동을 보였다.
초코는 집에 돌아온 뒤 훨씬 더 많이 배변실수를 했고, 설사도 많이 했다. 엄마는 동물병원에서 설사약을 타왔고, 초코에게 먹였다. 당시 이것이 초코의 뱃속에 든 새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초코의 교배 이전, 우리 집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엄마는 어느 날 아빠와 인부들이 집에서 낡은 중국식 침대를 꺼내 버리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이튿날, 할아버지가 병원에 실려가셨다. 아빠는 집에서 쓰러진 할아버지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갔고, 할아버지는 그대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야자가 끝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까지 가는 길에 아빠 차를 보았고, 나는 그 길로 차에 실려 할아버지를 보러 갔다. 차갑고 딱딱했던, 수면양말을 신은 할아버지의 발. 눈물만 한 방울 흐를 뿐, 아무 말씀도 못하시던 굳은 얼굴. 할아버지는 다음 날 새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출상 날, 나를 가장 사랑했던 고양이 꼴매가 죽었다.
대략 2주 뒤 나는 돼지독감에 걸려 학교를 한 주 쉬었고 다시 등교한 지 일주일 만에 수능을 쳤다. 나도 가족들도 괴로웠던 시기였다. 초코의 교배는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뤄진 일이었다.
그러니 나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초코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초코가 새끼를 낳는 것을 보지 못하고 멀리 있는 대학에 갔다. 엄마가 초코가 낳은 새끼들의 사진을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초코는 갈색 푸들 두 마리를 낳았다. 둘 다 수컷이라고 했다. 털이 좀 더 연하고 큰 놈은 알파, 털이 좀 더 짙고 작은 쪽은 파이라 부르기로 했는데, 파이가 조금 이상했다.
파이의 왼쪽 눈이 오른쪽 눈의 절반 정도로 작았다. 그들이 눈을 뜰 때쯤 알게 된 사실이었다. 엄마는 타 먹인 설사약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나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파이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초코도 파이도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코와 파이는 엄마를 가장 사랑했다. 초코는 엄마 없이는 산책도 안 가려는 껌딱지며, 엄마는 파이가 떠난 날까지 파이를 무척이나 사랑해 주었다. 그들은 늘 그거면 족하다 여기는 존재들이고, 모든 슬픔을 잊은 채 우리를 향해 꼬리를 흔든다.
엄마를 가장 많이 원망한 건 엄마 자신이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