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 Jul 11. 2024

너는 그대로였는데 우리는,

우리 집 푸들의 뿌리, 초코 이야기 2




 고양이만 키워봤던 우리 가족에게 초코의 생태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초코는 강아지였고, 고양이처럼 본능적으로 화장실을 찾아 볼일을 보지 못했다. 또 자꾸만 안아달라고 했다. 고양이만 키워본 우리에게 이는 작은 센세이션이었다.



초코가 곧잘 했던 수면포즈. 요즘은 산책시간 빼고는 마주칠 일이 없어 아직도 이렇게 잠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에는 돌돌 만 신문지로 콧잔등을 때린다거나, 칸막이를 쳐서 가두고 나와서는 배변을 못하게 하는 등의 훈련방식이 떠돌아다녔다. 우리도 시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 그 조그만 것을 어떻게 때린단 말인가.


 엄마와 나, 사촌동생 외의 다른 가족들은 갑자기 나타나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똥오줌을 싸놓는 강아지를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초코는 엄마가 케어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주로 사촌동생 방에 갇혀 있었고, 자주 혼이 났다. 특히 배변 때문에 혼이 나니, 나중에는 사촌동생의 침대 밑에다 배변을 했다. 치우기가 힘들어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가족들과 갈등이 많았다.



초코의 손녀 두나에게 뽀뽀당하고 있는 나의 상황은 아랑곳없이, 초코는 내 품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엄마가 떠준 뜨개옷이 참 잘 어울리는 초코.



 그러면 싫어져야 하건만, 초코는 속절없이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조그맣고 보들보들한 꼬순내 덩어리였던 초코를 우리는 늘 품에 꼭 안고 다녔다. 어렸을 때 안고 다녔더니 커서는 안아달라고 보채서 안아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키우면 계속 안기려고 한다는 걸 알고, 초코의 아들 알파와 파이부터는 안기를 자제했다.


 당시에 든 버릇대로 초코는 아직 우리 품에 갓난아기처럼 안겨있는 것을 좋아한다. 추정컨대 올해로 18살이 된 초코의 털은 강아지 때처럼 폭신 빽빽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부드럽다. 우리 품에 안겨 다니던 강아지 시절, 배변 때문에 혼이 나도 우리 품에선 불안이 가라앉았던 기억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무릎으로 바로 올라오지 못하는 지금도 초코는 늘 다리 아래서 조심스레 안아달라 시그널을 보낸다. 산책하다 몸을 털면 그 반동 때문에 넘어지기도 하는, 백내장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열여덟 초코는 아직도 안아달라 조용히 보챈다.


초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아빠도 이제는 매일 아침 초코를 안아준다. 이 때도 열 살이 넘은 노견이었지만, 그런 티가 전혀 나지 않는 초코.



 가족들은 서서히 초코에게 스며들어갔다. 강경 반대파들은 초코의 예쁨과 귀여움에 함락된 찬성파들의 열정적 지지 탓에 소수의견으로 전락했다. 초코는 우리 집 사랑둥이가 되어갔다.


 그러나 초코에게 시간은 약이자 독이었다. 사촌동생이 멀리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초코는 그곳에 함께 갈 수 없었다.




 사촌동생은 오래 초코를 그리워했다. 초코도 그랬을 것이다. 막 고등학생이 되었던 사촌동생에게도, 아직 세 살 밖에 되지 않았던 초코에게도 선택지가 없던 이별이었다. 사촌동생은 첫 반려견을, 초코는 첫 주인을 잃었다. (어린 나이에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졌다면 신중하기를. 스스로 돈을 벌기 이전까지는 반려동물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언젠가 사촌동생이 초코를 데려가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지금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5년쯤 지났을까, 초코가 할머니가 되었을 시기에 사촌동생이 우리 집으로 내려와 잠시 함께 지냈다. 그때 초코는 그 애를 반겼지만, 결코 그 애를 보호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초코는 그렇게 우리 곁에 남겨졌다. 초코의 새로운 보호자는 내 엄마였다. 어쩌면, 이는 처음부터 바뀐 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초코가 우리 집에 온 그날부터 초코의 보호자는 엄마였는지도. 나와 초코는 엄마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초코는 우리 가족과 함께 천천히 나이 들어갔다. 늙어간다는 것만 빼면 초코는 어릴 때도 지금도 똑같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고, 앙살을 많이 부리고, 자기주장 강한 우리 초코. 초코는 늘 그대로였다. 그대로 우리 곁에 찰싹 붙어 있었다.

 

 그러나 초코의 세상은 시시각각 달라져왔다. 사촌동생과의 이별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에 의해, 초코는 엄마가 되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세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이전 25화 최초의 푸들이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