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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Jul 25. 2024

방구석 여포가 진짜 여포를 낳고

초코와 그의 아들들 알파, 파이 이야기



  초코는 일등이 같은 헌신적인 엄마는 못되었다. 엄마가 된 뒤에도 여전히 초코였다.


*짖음 주의!* 초코는 간식을 먹고 싶을 때와 공놀이를 하고 싶을 때 가장 심하게 앙살을 부리곤 했다. 공놀이하자고 성질을 부리는 모습.




 초코는 원래 앙살 맞았다. 배변문제로 초코를 좋아하지 않는 가족들이 많았지만 금세 가족 대부분을 강경 초코파로 만든 건 초코의 귀여운 외모와 앙살맞음이었다. 초코는 요구가 많은 푸들이었고, 우리는 고 귀여운 강아지가 안아달라고, 간식 달라고 떼를 부리면 짜증을 내다가도 얼른 들어주었다. 조그맣고 귀여운 강아지가 성질을 내봐야 얼마나 낼까.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초코는 복슬복슬한 앙살쟁이이자, 당시 우리 집 안에 살고 있던 유일한 동물로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 초코가 새끼를 낳았다. 


 새끼를 낳고 난 뒤 초코는 완전히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새끼를 낳았다고 갑작스레 헌신적인 엄마가 되어버리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육아의 대부분을 사람 엄마에게 맡기고 자기는 가족들 무릎에서 쉬거나 안겨 다니기 일쑤였다. 초코는 젖을 물릴 때만 새끼들 곁에 있었고, 그 외 어미가 해 주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은 몇 번 하는 시늉만 하다 나중에는 본체만체했다. 그러나 이는 초코의 탓이 아니었다.




 초코는 펫샵 강아지였다. 아마 뜬장에서 태어나 어미 개의 돌봄을 거의 받아보지 못한 상태로 경매장으로 팔려갔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새끼를 낳은 동물은 초코를 포함해 다섯 마리인데, 그중에서 어미에게 끝까지 보살핌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일등이 뿐이었다. 일등이와 미쯔 정도만 새끼들은 지극정성으로 돌봤고 확실하게 교육했다. 동물의 모성도 본능만은 아니었다. 받아야 줄 수 있는 사랑이었다. 




 초코의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런데 알파와 파이의 성장과정은 그리 순탄치가 못했다. 이들은 수컷 강아지였다. 우리는 수컷 강아지를 처음 키워봤는데, 초코와는 차원이 달랐다.


 초코는 집에서는 온갖 쿠션에 마운팅을 하기도 하고 갖은 앙살을 부리는 여포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산책줄을 매고 밖으로 나가면 자전거만 지나가도 안아달라고 하는 쫄보 강아지였다. 알파와 파이가 청소년기를 지난 때쯤 초코도 아들 둘과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 살게 되었는데, 옥상 터줏대감 고양이들의 위세에 눌리고 둥가둥가 해주는 우리도 없으니 한동안 쫄보 상태로 지냈다. 앙살쟁이 초코는 방구석에서만 은밀하게 여포였던 것이다.



자전거 같은 게 지나가면 초코는 항상 우리 옆으로 몸을 붙이거나 안아달라 졸랐다. 내려주어도 자전거가 다 지나갈 때까지 몰래 지켜보곤 했다.



 그러나 알파와 파이는 진짜 여포였다. 엄마 아빠는 알파와 파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보려고 리드줄을 샀지만, 웬만한 줄은 다 씹어 뜯어버리는 알파 탓에 나중에는 쇠사슬에 가까운 줄을 사야 했다. 그때 둘은 아직 청소년 강아지였다. 


 옥상 생활 중 성견이 된 알파와 파이는 옥상 집의 녹색 망도 다 물어뜯어버려서 결국 쇠창살을 사다 집을 새로 지어야 했다. 알파는 중성화 수술 당일 집에서 넥카라를 박살내고 잠복고환 수술 자리의 실밥을 물어뜯어 피를 봤다. 알파는 열 살이 넘어서도 하네스를 씹어 끊어버리고, 철사로 만든 방충망을 물어뜯고 딸들과 탈출해 우리 가족이 출근하고 없는 사이 온 시골을 누비며 뛰놀다 밤늦게 마당에 들어와 있기도 했다. 


 파이는 알파보다 덜했지만, 알파의 난장판에 항상 함께였다. 둘 다 갈색 푸들이었건만, 키우는 체감은 거진 중형견이었다.




 나는 알파와 파이가 자라나는 동안 대학생활을 했다. 기숙사에 살았던 터라 방학 때만 집에 돌아왔는데, 돌아올 때마다 둘은 무럭무럭 자라 있었고, 금방 성견이 되었다.


 내가 없는 동안 우리 집은 건물 안에서 이리저리 이사를 거듭했다. 원래 우리 가족이 살았던 5층은 할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다른 이들에게 세를 주기 위해 개조했고, 우리 가족은 4층으로 내려가 외숙모네 가족과 함께 살았다. 그러다 4층도 개조해 세를 주게 되었고 우리는 3층으로 내려갔다. 3층의 일부는 우리 가족이 운영하는 학원이었고, 졸업 후 돌아온 나는 옥상 옥탑에서 지내다 3층 학원의 빈 강의실을 개조해 잠시 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초코와 알파, 파이는 자연스레 옥상으로 올라가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이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이모가 또 개를 주워왔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세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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