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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자, 가을이 왔다 1

갑자기 찾아온, 가을이 이야기

by 미소


내 가을은, 화요일 아침 6시 30분쯤 받은 전화 한 통에 시작되었다.



6시 30분. 비몽사몽 전화를 받자, 엄마는 우리 집 데크 밑에 개가 들어왔다고 했다.


초코, 알파, 두나, 세나, 흰돌이가 아니고 '개'가 들어왔다고 했다. 그 말은, 데크 밑에서 나오지 않는 그 개는 우리 집 개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일 년 전쯤 길을 잃은 늙은 개 한 마리가 근처 저수지에 빠진 것을 아빠가 발견해, 우리 집에 잠시 데리고 있었다. 주인은 개를 찾으러 돌아다니다 반나절쯤 지난 시점에 우리 집 문을 두드렸고, 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일도 있었다. 그러니, 그런 일이겠거니 생각했다.




'개'가 기어들어가 나오지 않는 데크는 우리 땅에 눌러앉은 예쁜이의 새끼들 두치, 세치, 네찌, 뿌꾸의 보금자리였다. 나는 우리 땅에 들어온 개를 데크에서 꺼내고, 고양이들의 영역을 돌려주기 위해 비틀비틀 걸어 데크까지 왔다.

데크 앞에서 엄마는 개가 깊이도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며 바삐 집으로 들어갔다. 바쁜 와중에도 엄마의 이야기는 충분히 길게 들렸고, 개가 손을 물지도 모르니 장갑을 끼라는 경고는 기나긴 사설에 슬쩍 끼어 있었다. 그런 무서운 개라니. 왜 아빠가 아니라 나를 불렀는지 조금 원망스러워하며 데크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데크 아래에는,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으르렁대고 있었다. 딱 봐도 새끼 티가 났다. 엄마의 목소리가 시끄러워서 더 겁을 먹었는지 데크 제일 안쪽까지 들어가 있었다.


데크가 너무 깊어서 억지로 꺼내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데크에 걸터앉아 강아지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조용히 있으면 슬쩍 기어 나와서 자기 갈 길 가지 않을까 싶어서.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우리 집은 시골이고, 주변에 마을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곳이다. 우리 집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험해서 사람 사는 집보다는 논이나 밭이 많았다. 집이라고는 바로 옆에 하나, 맞은 편의 주말 별장처럼 쓰이는 농막 하나가 전부다.


그 두 집 모두 개를 키우지 않는다. 대체 이 강아지는 어디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


멍하니 생각하던 차에, 강아지가 데크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으르렁 낑낑하는 소리는 데크 깊숙이 들어가 있을 때보다는 조금 잦아들었다. 나 때문에 겁이 나서 못 나오는 게 분명해 보여, 데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쪼그리고 앉았다.



요런 모습으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서는 앞발로 팡팡 땅을 두드렸다. 왠지 약간의 겁이 묻은 것만 같은 표정이다.



강아지는 슬금슬금 데크에서 몸을 빼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더니, 앞발을 쫙 벌리고 바닥에 팡팡 두드렸다. 초코를 필두로 푸들 일가를 15년 넘게 키워온 나다. 개의 언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강아지의 이 행동은 사람 말로 하자면,

"나랑 놀자!"

뭐 그런 말이었다.




타이어 화분에 앉아 나와 잠깐 같이 있었다.



슬쩍 다가가 만지니 슬슬 손에 붙어오던 하얀 강아지는 이제 나를 따라다녔다. 데크에서 나오면 어디든 알아서 가겠거니 생각하고 기다렸던 터. 그런데 강아지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아침을 먹으면서 아빠는 나와 엄마보다 더 일찍 강아지를 발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벽녘에 비닐하우스에 물을 주러 갔던 아빠는 그 앞에서 서성거리던 강아지를 보았다. 강아지는 아빠를 보고 깜짝 놀라 우리 집 쪽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고양이들을 마주쳐 데크 아래로 기어들어간 것으로 추정되었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에도 강아지는 어디 가지 않고 데크 근처에 있었다.


붙잡아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귀에 진드기가 보며 물티슈로 귀부터 닦아주었다. 행동을 보니 생각보다 더 어린 강아지인 것 같아 입술을 들춰보았다. 이가 너무 작았다. 아직 유치인 것 같았고, 심지어 좀 덜 난 듯 보였다. 3개월? 4개월? 그 정도 밖에는 안된 것 같았다. 그러니 대뜸 낯선 사람 보고 놀자고 했겠지.


갈 길 가라고 그냥 놔두기에는 너무 어렸다. 아빠와 나는 강아지에게 하네스를 채워서 윗마을로 올라갔다. 강아지 잃어버린 집 없나 싶어서. 그러나 윗마을에는 비슷하게 생긴 개를 키우는 집조차 없었다.




귀와 이빨까지 샅샅이 조사당하고 윗마을에 다녀온 뒤. 강아지는 많이 지쳤는지 몸을 쭉 누이고 쉬었다. 자기가 새벽 내내 울었던 그 데크 위에서.




8월 28일이었다. 이날 처음 만난 강아지는 하네스도 척척 매고 나와 아빠를 따라 윗마을까지 잘도 갔다 왔다. 낑낑거리고 으르렁거리던 강아지는 어디가고, 얌전하게 하자는 대로 다 하는 야물딱진 강아지에게 물도 주고 밥도 먹이며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아직 애긴데 왕발에 다리도 길쭉하고 혀도 우리 집 푸들들보다 두 배는 넓적했다.



처음에는 너무 귀엽다고만 생각했던 사진인데, 지금 돌아보니 참 지쳐 보인다. 넌 대체 어디서 왔니?



까만 눈과 코, 수제비 같은 귀에 짙은 쌍꺼풀이 매력적인 강아지. 우리는 이 친구의 이름을 지어줘야 했다.


배에 뭔가 만져졌기 때문이었다.






*2024년 11월, 여섯 마리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다섯 마리 고양이들도 밭과 마당, 저희 집 창고를 누비며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올 7월 부터 떠나보낸 동물들의 이야기를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이라는 이름의 브런치북으로 남겨왔습니다. 11월 28일 목요일,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2>로 돌아왔습니다.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과 생겨날 이야기들을 마저 꺼내보려 합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링크를 눌러보세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기 시작하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200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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