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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가을은 없겠지만

가을이 이야기 4

by 미소


시작점에서 끝을 생각하는 일은 나의 버릇이다. 나는 늘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이 일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를 상상해 본다. 어쩌면 나는 그것이 좋아서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추적하고 예측하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으나, 이는 나의 삶을 너무 움츠러들게 하기도 했다. 나는 너무 섣부르게 예단하곤 했다.


이 버릇은 올백이를 잃어버리고 꼴매를 떠나보낸 뒤부터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이후로, 나는 종종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동물들의 마지막을 생각했다. 이들이 나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나는 단 하루라도 그들 곁에 오래 있어주고 싶어 진다. 내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 중 일부도 여기에 있었다.


물론 이는 거창한 명분일 뿐, 나의 귀향은 전적으로 취업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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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4일의 가을이. 친구에게 얻은 스타벅스 하네스는 참 잘 어울렸지만 일주일만에 끊어졌다.



가을이는 사랑스러웠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는 가을이가 살아갈 날들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을이는 무럭무럭 자랄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다. 큰 개들을 작은 개들처럼 오래 살지는 못한다고 들었다. 지금 우리 강아지들 중 가장 젊은 게 두나와 세나였고, 장수노견 초코가 벌써 열여덟 살쯤 되었으니, 열 살인 두나와 세나가 멀리 여행을 떠날 때쯤 가을이도 노견이 되겠구나 싶었다.


나의 반려생활은 고작 2년에서 5년 정도 더 길어지는 셈이었다. 물론 예쁜이가 남긴 네 마리 고양이들이 또 내 곁에 살기는 하겠지만.




이별은 늘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10년은 너무 긴 시간 같지만, 겪고 나면 결코 길지 않다. 나를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오던 강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자기를 부르는 나를 분간하지 못한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다. 그러니 지금을 이야기해야겠다. 2024년의 가을은 벌써 지나갔지만, 가을이의 시간은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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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코가 까맸던 11월 4일. 지금은 조금씩 애기 티를 벗어서 그런가 이 때의 새까만 코는 찾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아쉽다.




가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예쁘고, 귀여워진다. 지난번에 가을이 예민하다고 흉을 좀 봤으니, 오늘은 가을이의 예쁨 모먼트를 이야기해 보고 싶다.


가을이는 웬만한 하네스 XL사이즈를 쓸 정도로 커졌지만, 아직 6개월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어린 강아지인 것이다. 큰 개들은 15개월까지도 자견용 사료를 먹인다는 걸 난 가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가을이는 산 것만큼 더 살아도 아직 강아지일 것이다. 너무 커서 다 큰 개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20241103_091850.jpg 배추 옆에 누워 쉬는 가을이. 이때가 11월 3일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많이 작게 느껴진다.




가을이는 그런 내 맘을 아는지, 산책하러 가면 꼭 몸에 머리를 잔뜩 비비고 손이나 온 끝을 살짝 깨물깨물 하면서 얼굴이며 몸을 싹 다 쓰다듬어 달라고 어리광을 피운다. 만족스러울 정도까지 쓰다듬은 뒤에야 하네스에 리드줄을 걸고 산책길에 나선다. 요즘은 내가 너무 바빠서 아빠와 함께 산책을 하는데, 아빠에게도 비슷한 요구를 한다고 한다.


가끔 아주 기분이 좋으면, 한참 산책하던 중에 나를 한 번 돌아보고는 털썩 앉아서 더 만져달라고 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함께 저녁산책을 했던 지난 토요일, 가을이는 나와 같이 산책하는 게 좋았는지 갑자기 앉아서 나에게 머리를 비볐다. 나도 같이 주저앉아서 많이 안고, 쓰다듬어주었다. 왠지 어른 개가 되면 더 이상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 기억이 좋았는지 어제도 오늘도 두어 번 길에 주저앉아 나에게 몸을 비볐다. 우리는 길바닥에서 꼭 끌어안고 잠깐씩 있고는 하는 존재들이다.



20241205_073227.jpg 누워서 애교 부리는 왕개 가을이.



가끔은 내 옆에 드러누워 뒹굴대기도 한다. 꼭 푸들처럼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참 귀엽지만 조금 어색하기도 하다. 내가 만나 본 큰 개들에게서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모습이어서. 가을이가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면, 내 나름대로 가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가을이도 그걸 알아주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나의 작은 사랑은, 그들에 감지되는 순간 거대하고 포근한 모습으로 내게 되돌아온다. 동물들의 사랑은 대부분 그랬다. 그들은 몸을 던져 나를 사랑한다.



20241115_073638.jpg 낙엽이 가득 떨어진 산에서 나를 돌아보며 웃는 가을이.



가을이는 자주 웃는다. 가을이는 멀리서 나를 발견하면 눈빛부터 바뀐다. 그리고 내가 자기 집에 들어가면 입을 벌리고 웃는다. 참고로 아빠와 산책할 때는 잘 웃지 않는다고 한다. 쪼그만 게 벌써 사람을 가린다.


가을이는 간식을 손에 들고 있으면 자리에 바로 앉아버린다. 앉아만 가르쳤더니 그렇게 되었다. 아빠가 산책 중에 간식을 주려고 주머니에 넣어갔더니, 주머니 냄새를 맡고 바로 그 자리에 앉아버려서 간식을 다 먹고 산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몸집이 커서 그런지 손톱만 한 것 하나 주는 걸로는 엉덩이가 안 떨어지고, 네 개 다섯 개는 줘야 엉덩이를 뗀다. 나와 산책할 때도 그런다. 귀여워서 그냥 그러마고 한다.



20241205_072743.jpg 참 예쁘게 웃는 가을이. 일주일 전 사진인데, 코가 분홍분홍해지고 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예쁘고 귀엽다. 미사여구는 필요치 않다. 하얗고 반질한 털에 진한 쌍꺼풀, 까만 눈과 분홍빛 코. 산책하다 만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꼭 예쁘다고 하는 가을이. 예쁘게 생겨서 하는 짓도 다 귀여워 보이는 것일까?


가을이는 유독 나에게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가을이는 나에게, 그저 가을이라서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게 전부다. 그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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늠름하다가도 아기같은, 11월의 가을이.




누구에게도 영원한 계절은 없으므로, 우리는 더욱 깊이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부터는 아래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에서 다 다루지 못한 갈색푸들 초코 가족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링크를 눌러보세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기 시작하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200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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