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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예민해

가을이 이야기 3

by 미소



12월, 가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석 달 하고도 한 주가 지났다.


1730194806085-7.jpg 10월 29일 아침의 가을이. 지금은 더 많이 커졌지만, 대형견을 새끼 때부터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나는 이 때도 크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가을이는 우리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쑥쑥 자랐다. 처음 온 날 5.2킬로그램이었는데, 지금은 대충 봐도 20킬로 정도 되는 것 같다. 한 번 산에서 안고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2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정말 무거웠다. 수의사 선생님의 추측대로라면 가을이는 지금 생후 6개월. 아직도 얼굴은 어린 강아지 같으니 수의사 선생님의 추측이 맞는 것 같다.




20240918_114206.jpg 초코의 하네스를 물려받아 쓰고 있던 아가 시절 가을이



가을이와 함께하는 첫겨울을 맞아, 가을이만의 특별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내 이야기는 이미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반려동물들에 대한 회고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사진과 기록이 일상이 된 최근에야 우리의 가족이 된 가을이에 대해 써 내려가는 일이 새삼 반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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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산책 후 소시지로 교육받는 가을이. 간식 앞에서는 엉덩이가 바닥에 찰싹 붙는다.


반려동물을 처음 키우게 되면 느끼는 감정을, 아주 오랜만에 느끼게 되었다. 사랑을 발견하는 일은 늘 새롭고 기쁘다.






가을이는 예민하다.


사실 이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챌 수 있었을 특징이었다. 가을이가 데크 아래서 나오기를 조용히 기다렸던 나에게는 살갑게 다가왔기에, 이후 아빠와 함께 윗마을까지 걸어갔다 오기도 했기에 우리는 가을이의 경계심을 과소평가했다. 동물병원에 갔을 때도 수의사 선생님께는 다소 반항했지만 이동 중에는 조용했고 (초코 가족은 차에서부터 괴성을 지르기 때문에 우리는 가을이가 매우 순둥한 강아지라며 좋아했다) 병원에서 대기하는 동안에도 의기소침하기만 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가을이는 낯선 존재에 매우 예민했다.




확실하게 드러난 시점은 추석연휴기간이었다. 내 친구들이 가을이를 보러 온 날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가을이 집 근처로 올라가는데, 낯선 개 짖는 소리가 왕왕 울렸다. 어느 집 개가 이렇게 크게 짖나 했더니, 그게 가을이었다. 가을이는 우리 집에 온 뒤로 그때까지 한 번도 짖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나는 그 소리가 가을이 짖는 소리인지도 몰랐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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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달라는 듯한 가을이의 표정이 애처롭지만 너무 귀엽다.



가을이는 많이 클 것 같아 사다 준 특대사이즈 개집, 일명 '왕개집' 뒤로 몸을 숨기며 세상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친구들이 가을이에게 한 발 한 발 가까이 갈수록 가을이는 집 뒤로 숨어 비명을 질렀다. 첫 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울부짖음이었다. 물론 그간 잘 먹고 잘 자라서 목청은 엄청나게 커진 상태였다.




친구들은 가을이와 친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단 보더콜리 두 마리를 키우는 친구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가을이가 낯선 개 냄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커피나무 막대기를 선물한 친구는 가을이 집으로 들어와 친해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왔는데 가을이의 비명만 듣고 돌아가기는 ㄴ너무 아쉬우니까! 그리고 가을이도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연습을 해야 했다.


일단 집 뒤에 숨을 가을이 옆에 앉아서 손바닥으로 사료를 주다가 친구는 손만 쭉 뻗어 내 손에 손을 겹쳐 사료를 먹여주고, 가을이가 친구 손에 든 사료도 한두 알 먹자 조금씩 가까이 앉고 하면서 서서히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내 무릎에서 주둥이만 쓱 내밀어서 친구 손에 든 사료를 먹던 가을이는 나중엔 앞발 정도까지는 친구 몸에 갖다 댈 수 있게 되었다. 줄을 채워서 같이 산책을 나간 뒤에야 가을이는 친구들과 아주 조금 친해졌다.



1726384174484-8.jpg 브런치북 표지 사진도 이 날 친구가 찍어 준 것이다. 같이 산책하고 나니 덜 서먹해진 가을이와 내 친구들이었다. 사실 가을이만 서먹했던 거지만.




가을이는 우리 가족들과 깊은 유대를 쌓고 싶어 한다. 우리 가족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흰돌이를 특히 매우 좋아했다. 아무래도 자기를 낳아준 엄마를 닮아서가 아닐까? 다만 흰돌이는 자꾸 자기랑 놀고 싶어서 집 앞에 와서 껄떡대고 산책할 때도 기웃대는 가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는 흰돌이가 산책하는 중에 작은 개가 앞에 와서 깔짝대고 짖어서, 그 뒤로 작은 개들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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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이 절반도 못 되던 시절에도 가을이는 흰돌이와 친해지고 싶어했다. 점점 흰돌이만해져가는 지금도 그렇다. 흰돌이는 지금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을이는 우리 집 갈색 푸들 가족 초코, 알파, 두나, 세나도 좋아한다. 네 푸들의 산책길 초입에 가을이 집이 있는데, 그들이 지나갈 때면 가을이는 꼬리를 흔들며 그들을 알아가고 싶어 한다. 네 푸들들은 처음에는 궁금해서 냄새 몇 번 맡아봤으나 볼 때마다 커져있는 가을이가 무서운지 이제는 모르는 척 지나가버린다. 가을이는 고양이들과도 놀고 싶어 하는데, 이는 내가 철저하게 막고 있다. 가을이도 고양이들도 서로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다. 처음 키울 때부터 그들에게 바로 달려들지 않도록 주의를 뺏는 교육을 했고, 지금도 교육하는 중이다.



20241009_072854.jpg 가을이가 궁금했던 네찌. 거리를 두고 가을이를 관찰하고 있다. 가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땅파기에 열중이다.




가을이는 우리 가족과 낯선 사람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가을이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 낯선 강아지를 모두 피하고 싶어 한다. 열심히 냄새를 맡으며 산책하다가도 멀리서 낯선 사람이나 개가 보이면 얼른 뒤돌아 집으로 뛰어간다. 20킬로그램이 넘는 것 같은 지금도 그런다. 이미 산책길에서 여러 번 만나서, 가을이보고 예쁘다고 해주시는 어르신들을 보고도 가을이는 겁이 나서 도망치거나, 집에 가는 길에 어쩔 수 없이 마주치면 내 곁으로 와 풀썩 엎드린 채 쫄아있다. 가을이는 자기를 봐도 아무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가는 어르신을 가장 덜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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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가는 길, 나무 사이로 보이는 걸어다니는 사람을 보고 멈춰 선 가을이. 사람들 다 지나간 뒤에야 산에서 내려갈 수 있었다.



요즘은 가을이가 우리 집 주변을 산책하시는 분들과 더 익숙해질 수 있도록 흰돌이와 함께 산책을 한다. 흰돌이와 엄마가 앞서가면 가을이는 낯선 사람을 봐도 일단 엄마를 쫓아가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말이 함께지, 사실 가을이가 산책하는 흰돌이와 엄마를 따라잡으려고 애쓰는 형태다. 흰돌이와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만나는 연습을 하고, 낯선 사람만 보면 도망쳐서 산책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가을이는 매일, 견문을 넓히는 연습을 하고 있다.






가을이가 우리만 보고 사는 개로 자라지 않았으면 했다. 우리 집 푸들들과 흰돌이는 우리 가족밖에 모르는, 낯선 사람 및 낯선 개와의 만남을 거절하는 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동물을 여럿 키워본 결과 다들 바꾸기 힘든 기질이라는 게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어릴 때부터 노력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


우리가 모르는 가을이의 두 달 반이 지금의 가을이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타고난 기질일까? 지금에서야 알 방법은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을이의 시간에 함께 발맞춰 걸어주는 것. 그것뿐일 것이다.



이름을 부르면 고개 갸웃하는 가을이가 보고 싶어서, 나는 열 번도 넘게 '가을'을 외쳤다.







*2024년 11월, 여섯 마리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다섯 마리 고양이들도 밭과 마당, 저희 집 창고를 누비며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올 7월부터 떠나보낸 동물들의 이야기를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이라는 이름의 브런치북으로 남겨왔습니다. 11월 28일 목요일,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2>로 돌아왔습니다.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과 생겨날 이야기들을 마저 꺼내보려 합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링크를 눌러보세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기 시작하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200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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