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드림테라피)
진우는 며칠을 알 수 없는 두통에 계속 시달려 병원을 찾았지만 단지 스트레스성 두통이거나 수면 자세가 잘못되어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만을 들었다.
지끈거리는 두통은 목덜미를 타고서 찌릿한 통증이 정수리를 지나 이마까지 머리가 찢어질 듯 퍼져나가고 있었다. 메고 있던 크로스백을 통증에 떨리는 손으로 뒤져가며 두통약을 꺼내 급히 입에 털어내고 '아드득' 소리를 내며 씹어먹고서 길가의 화단에 잠시 걸터앉으며 숨을 고르며 통증이 잠시라도 가라앉길 기다렸다. 쉴 새 없이 관자놀이와 목덜미를 눌러가며 숨 고르기를 얼마나 했을까. 수면 자세로 인한 승모근의 뭉침이라는 이야기가 다시 떠올라 타이 마사지에 들러 안마를 받아 봤지만 안마사의 지압에 뭉친 근육이 눌려 통증만 이어졌을 뿐 두통은 가라앉지 않았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두통은 그 끝조차 알려주지 않으려는지 진우의 머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지만. 약도 먹어봤고 정밀검사도 받아봤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기에 두통과 더불어 답답한 마음은 호흡마저 곤란하게끔 하고 있었다.
“이러다 죽어야 가라앉으려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안고 골목으로 들어가 진우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려다 바로 고개를 흔들며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파 죽겠는데 담배는 무슨…."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자 골목길에 빌딩 사이로 파란 하늘이 스쳐 보였다. 잠시 두통이 가라앉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낡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드림 테라피’
“이름 참…….”
간판에 적힌 이름에 비웃듯 실소를 던지며 골목을 나설 때 진우는 뭔가 어색함을 느꼈다.
순간 좀 전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지는 느낌. 며칠 아니 몇 달을 괴롭히던 두통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진우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고개를 들어 좀 전의 간판을 바라봤다.
“에이. 설마.”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언가에 홀린 듯 간판이 달린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판이 달린 건물에 서자 1층에 오래되어 보이는 건축자재를 팔고 있는 철물점 비슷한 가게가 보였다. 철근, 전선 그리고 목재라는 아주 다양하지만, 연관성이 없는 그런 물건들의 집합소 같아 보였다. 건물을 빙 둘러보며 위로 향하는 계단을 찾아 헤매며, 겨우 3층에 올라온 진우는 낡아버린 철문에 플라스틱 명판으로 '드림테라피' 라고 적힌 글씨를 확인하고선 고개를 가로저으며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신기하게 문 앞에 서기까지 두통이 한 번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마음 속 갈등이 가득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면서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문을 두드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진우는 예전 방화에서 보던 7~80년대 다방이 생각났다. 책상 위 거만하게 앉아있는 나이든 개 한 마리가 드림테라피에 들어 온 진우를 흘긋 쳐다보았지만 이내 흥미가 없다는 듯 자세를 고쳐 잡으며 잠이 들려 하는 듯 보였다.
귀여워 보여 가까이 다가가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으르렁’ 거리는 소리에 한 걸음 물러나 보니 앞다리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다친 건지 선천적인지는 모르지만, 몸이 불편한 노견이라 예민한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드림테라피를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무슨 노래인지. 음악인지 모를 것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괴상한 코끼리인지 곰인지 애매한 동물의 그림 한 점과 그 아래 앉아있는 덩치 큰 대머리의 남자. 관리를 잘한 탓일까. 유난히 번쩍거리는 그의 머리를 보고 두상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아…. 예….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찾아온 것 같네요."
“하하하. 설마요. 아래서부터 힘들어하시다가 설마 하며 찾아 온 얼굴이신데.”
"예?"
"제가 하는 일이 워낙 이렇다 보니 이제는 오시는 분들 얼굴만 봐도 대충 알게 됩니다. 앉으세요. 뭔가 힘들어서 오신 것 같은데 이야기나 들어보죠. 저도 장사가 안 되서 무료하기도 했고. 아!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건 그냥 공짜니까 걱정마시고. 하하."
넉살 좋아 보이는 남자의 이야기에 진우는 얼떨결에 자리에 앉아 허브차를 한 잔 건네 받고서 편해진 마음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건물에 들어서고서 계속 두통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무언가 질겅거리는지 남자의 입이 쉬질 않았다. 기분 탓이었을까. 남자의 몸에서 은은한 대나무 향이 퍼져나오는 느낌이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던 남자는 웃던 표정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며 입을 열었다.
"믿으시든 아니든 그건 진우씨의 자유입니다. 병원의 약물치료나 물리치료 또는 마사지로도 안 되셨다면 저희 테라피는 어떠실까 한 번 권해드리고도 싶네요. 무언가의 무의식에서 진우씨를 괴롭히는 일이 있다고 보이는데, 아. 이렇게 보여도 바깥에서 심리학 교수도 하고 있습니다. 하하. 어디 보자…."
대머리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가 뽀얗게 쌓인 두툼한 책 한 권과 액자를 챙겨 가져와 다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무의식의 진실’ 이라는 제목의 책에 저자는 'Mack. Lee.’ 라고 적혀있었고 그 옆에는 심리치료사 자격증이 담긴 액자가 놓여있었다.
"이게?"
“미국에서 공부할 때 박사학위 따고서 낸 책인데 제 영어 이름 입니다. 잘 팔리진 않았지만…
저도 한 때는 프로이트 박사를 꿈꿨는데 말이죠. 하하."
남자의 이야기에 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프로이트라니. 진우는 그것보다 매트릭스라는 영화에 나오는 배우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다. 이 곳에 오고서부터 무언가 알 수없는 편안함이 계속 진우를 감싸안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두통에서 벗어난 이 시간과 장소가 너무나 편해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럼 한 번 해 보겠습니다. 금액이?”
“오늘 이렇게 오신 것도 큰 결심이셨을 텐데. 음. 테라피 마치고 나서 후불로 해드리죠.
저기 가서 누우실까요?"
진우는 한편에 있던 작은 미닫이문으로 안내하는 남자에게 홀린 듯 몸을 움직이며 장사 수완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내받은 곳은 대형병원의 정신과에서나 볼 수 있던 베드룸이었다. 안락해 보이는 카우치 형 베드와 의자 그리고 여러 가지 향초와 허브 오일들.
신발을 벗고서 자리에 눕자 맥이라던 남자는 향초에 세심하게 불을 붙이고서 차분히 옆에 앉아 진우의 손을 잡았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누워계시면 됩니다. 곧 잠이 올테니까.”
남자의 말에 진우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마 숙면을 취한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이런 낯선 환경에서 잠이라니. 속으로 비아냥거리며 눈을 돌리니 벽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오후 세시 이십분. 그것이 진우가 잠들기 전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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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니 온 세상이 알록달록한 풍선들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얼핏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었겠지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바라보니 풍선안에는 여러 여자들의 얼굴이 고통에 찬 표정으로 갇혀있었다.
'맥이. 이거 이상하네...‘
꿈속의 허공을 유유히 걸어가던 개가 입을 열었다. 사무실의 책상에서 졸고 있던 그 개였다.
"알아. 노인네..나도 보고 있어.“
맥이는 작은 개와 함께 꿈속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어딜 가나 둥둥 떠다니는 풍선만이 가득한 풍경만이 계속 이어져 갔다. 떠다니는 풍선을 하나 잡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느 여자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풍선 속의 여자는 맥이를 보지 못하는지 겁에 질려 도망치려 하는 듯 풍선 속을 어지러이 돌아다니는 듯이 보였다. 마치 도망치듯이. 그때 어디선가 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맥이와 개는 고개를 돌리고서 재빠르게 소리의 진원지로 몸을 날렸고 개는 맥이의 뒤를 따라 세 개뿐인 다리로 바람처럼 움직였다. 꼬리에 방금 맥이 놓친 풍선의 주둥이가 닿아 작은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바짝 세운 귀로 줏어들으며
‘보내 주세요….’
풍선 사이에 몸을 숨기고서 소리가 나는 곳을 살피는 맥이. 그리곤 의외의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자 뒤따라 날아 온 개가 맥이의 어깨 위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여자들이 갇힌 풍선을 진우가 바늘로 하나씩 터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늘고 힘 없는 비명소리들이 풍선이 터지는 소리에 함께 묻혀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이 둘의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자세히 바라보자 진우는 여자의 풍선을 잡고 유심히 바라보며 소중히 안고 눈물을 흘리다 이내 자신의 손에 쥔 바늘로 풍선을 터트리며 웃음과 울음을 번갈아 지어가고 있었다.
“저게 뭐야? 영감. 알겠어?”
'단순한 두통이 아니었군.'
“그건 저걸 보는 나도 알겠어.”
맥이가 퉁명스럽게 대꾸를 하자 개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억지로 기억을 지우려고 하고 있군. 터트리는 속도보다 기억이 생기는 속도가 더 빠른 게 문제지만.'
“영감. 아무래도 작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살인. 죄책감의 조각이지.'
“역시. 쯧.”
'어쩔 텐가? 맥이. 지금 저 꿈에 관여하면 자네나 저 녀석이나 모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 할 텐데.'
“그래서 영감 데리고 온 거잖아.”
‘자네는 나를 뭐로 보는겐가….’
맥이의 이야기에 허공에 떠 있던 개는 늘어진 꼬리를 바짝 치켜들고 풍선을 터트리며 울부짖는 진우에게 다가가 시선을 빼앗으며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진우의 표정에 호기심에 찬 웃음에서 분노에 찬 표정으로 바뀌고 손에 든 바늘은 회칼로 변해 있었다. 맥이는 재빨리 풍선이 나오던 구멍 같은 곳에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서 소리를 치며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끄집어내려 애를 썼다. 맥이의 고함과 함께 비좁은 구멍에서 달려 나온 것은 풍선 속에서 울부짖던 세 여자였다. 세 명의 여자를 힘겹게 끄집어내고 고개를 드니 그제야 색색의 풍선들에 세 명의 여자들의 여러 표정이 나뉘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영감! 지금!”
맥이의 소리를 듣고서 개는 날렵하게 방향을 바꿔 크기를 몇 곱절은 키운 모습으로 변하며 다가와 입을 벌려 선홍빛의 불 구슬을 뱉으며 신비한 구멍을 만들었고 맥이는 끄집어낸 여자들을 구멍으로 집어 던지듯이 보내고서 자신도 속으로 몸을 던졌다. 몸집이 커진 개 달려오는 동시에 다시금 크기를 줄이며 점차 작아지는 구멍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진우의 칼이 스쳐 꼬리를 살짝 다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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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진우는 무척이나 개운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얼마만의 숙면인지 알 수 없었다. 몸이 날아가는 듯했고 두통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서 고개를 돌려 시계를 쳐다보니 오후 세 시 이십삼 분. 고작 3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옆을 쳐다보니 왜인지 모르게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손을 꼭 잡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꼭 잡은 남자의 손 사이로 피가 흐르며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괜찮기는 칼에 베였는데…. 세 명? 그래서 잠을 못 잤나?”
“무슨 말인지….”
“쾌락과 죄책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팠겠지.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고통에 가득 찬 기억만 심어 놓고서 혼자 살겠다고 버티려 했으니 몸에 이상은 없고 두통만 계속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겠지."
남자의 이야기에 진우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리를 피하려 몸을 움직였다.
“아픈 놈인지 알았는데…. 아프게 할 놈이었다니."
“무. 무슨 개 소리야. 당신이 뭘 안다고 떠들어.”
“몰랐지. 몰랐는데. 알았다. 맥하고 얘기하거라. 더러운 놈."
말을 끝마친 맥이의 고개가 풀썩 꺾이자 미닫이문 바깥에서 '끼잉' 하는 강아지의 소리가 들려왔고, 바로 숙인 고개를 들어 진우를 바라보며 맥이는 입을 열었다.
“자수하시죠? 그럼 아마 두통은 사라질 텐데.”
“이…. 이게 무슨. 쇼 하는 거야? 미…. 미친놈.”
진우는 씩씩대며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집어던지듯 건네고선 가게 문을 박차고나가버렸다. 베드룸을 나와 뛰쳐나가는 듯한 진우를 바라보던 맥이는 그제야 따끔거리는 통증에 손을 바라봤다.
“영감…. 상처까지 넘겨주는 건 너무한 거 아냐.”
‘웃기는 소리.’
“어떻게 될 거 같아? 저 남자.”
‘적어도 내 꼬리에 상처를 낸 놈을 그냥 보내야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구나. 하지만 조만간에 다시 죄를 짓겠지. 이매(異魅)를 하나 붙여놓았다'
“나한테 피해만 주지 말아줘.”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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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아 개 사료 좀 주세요. 제일 싼 걸로.”
“하하. 가끔 비싼 것도 사다 먹이고 하시지.”
“얼마나 살겠다고 좋은 걸 먹입니까. 하하."
‘다음 뉴스입니다. 얼마 전 여성 연쇄 실종 사건에 대한 용의자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용의자는 서울 모처에서 범행을 다시 저지르려는 모습을 본 시민이 경찰에 신고하여 검거 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은 현재 실종된 여성들의 거취를 파악 중….'
“세상 흉흉하네요. 자. 여기 사료 받으시고.”
“뭐 그래도 잡혔다니 다행이죠. 많이 파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가게를 나온 맥이 주머니에서 철사를 꺼내 입에 물고선 사료가 든 봉투를 흔들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노인네. 참 심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