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이

옛날 인연

by 배순호

맥이는 기지개를 하며 환기를 위해 사무실의 창문을 열었다. 곳곳에 찌들어있는 아로마 향기를 지우려 연신 부채질을 하며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 아로마의 향기보다는 쌓인 먼지를 치우는 게 더 급해 보였지만.


‘똑똑’


아침부터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맥이는 귀찮음에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세상에서 먹고 살려면 손님을 거부할 수 없었기에 한숨을 뱉으며 점잖게 소리쳤다.


“어서 오세요.”


‘끼익’ 하는 쇠가 긁히는듯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백발의 노인이 드림테라피 안으로 들어와 맥이와 눈이 마주치자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맥이님.”


“어? 아니 이게 누구야? 정군 아냐?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여전히 그대로시군요.”


“이 사람이 신수가 늙는 게 말이 되나! 하하하.”


맥이의 이야기에 노인의 눈은 소파에 누워 졸고 있는 늙은 개를 향했고 소파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서야 맥이의 안내를 받고 의자에 앉았다.


“이제 머리에 서리가 앉았네?”


“맥이님과 어르신 덕분에 머리가 이렇게 세도록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 사람. 아부는. 여전하네. 그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실은 맥이 님께 부탁드릴 일이 하나 생겨서…”


“응? 하하하 이 사람. 예전 약속은 다 잊은 거야? 하하하. 돌아가. 반가웠어.”


맥은 호탕하게 웃으며 정군이라고 부른 노인을 밖으로 쫓아내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문밖까지 밀려 나간 노인이 맥이 웃으며 문을 닫으려 하자 무릎을 꿇으며 소리를 질렀다.


“맥이님! 제가 아닌 제 하나뿐인 여식을 살려 주십쇼.”


“이 사람. 남들이 보면 오해하겠어. 그럼 조심히 가고 이런 일 말고 다른 일로 보자고. ”


‘쾅.’


노인의 부탁에도 드림테라피의 문은 매정하게 닫혀버렸다.


‘그 무당 집 꼬맹이?’


“네. 영감님. 그 무당 집 꼬맹이.”


‘이야기나 들어보지 그러나. 어차피 신기는 저 꼬맹이로 끝난걸로 아는데'


“영감도 알잖아…. 내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지...시덥잖은 잡졸이 장군이라 속이고서 밤마다 꼬맹이가 잠이들면 해코지 하면서 신내림 하려고 한 거. 맥이. 자네가 잡아 먹었지.’


“내가 한 거 말고 내가 당한 거!”


‘아. 뭣도 모르고서 신내림 방해했다고 욕 먹고 쫓겨난 거?’


“하아. 영감. 나 그 때 소금 맞고 팥 맞고 작두에 썰려서 태워질 뻔 한 건 기억 안나? 누구보고 잡신이래.”


‘신수라는 놈이 속이 좁아서는’


“영감은 나이 먹고서 기억하고 싶은것만 해서 좋겠네.”


‘그래도 그 때 저 꼬마가 널 구한다고 울고불고 했는데 이야기라도 들어보지?’

“하…. 진짜.”


맥이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백발의 노인은 아직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좀 전의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와.”


맥이의 말에 노인은 힘들게 몸을 일으켜 사무실로 들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노인에게 물 한잔을 건네는 척 슬쩍 창문 밖을 쳐다보고는 노인의 맞은편에 앉았다.


“영감한테 고맙다고 해.”


맥이가 소파 쪽을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며 고개를 돌려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예. 맥이님과 어르신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직 뭘 하겠다는 건 아니고 이야기나 듣는 것뿐이니 기대는 말고”


정군이라 불린 노인의 말은 이러했다. 맥이의 도움으로 어린 시절 신내림을 피하고 나이를 먹어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도중 결혼을 하고 도통 생기지 않던 아이가 50이 넘어 힘겹게 출산을 했다고 나이 들어 늦둥이로 낳은 딸이 너무나 소중해. 모든 것을 해주며 키웠는데 불현듯 1년 전쯤부터 밖으로 다니더니 변했다고 그저 질병이나 탈선 혹은 약물까지 걱정되어 이런저런 검사나 치료를 했지만, 날이 갈수록 야위어져 가며 이제는 생명줄이 닳아 보인다며 간절히 맥이의 도움을 받고 싶다며 애원하듯 말했다.


“정군.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내가 뭔지는 알지?”


“예...신수 이십니다.”


“그런데 내가 뭘 해줘? 사람 인생에까지 관여하는게 내 일이 아냐.”


“그럼 제가 딸을 데려올 테니 상태라도 봐주셨으면 합니다.”


“정군. 자네 아직 내가 줬던 손톱 가지고 있나?”


“예. 제 품속에 이렇게 한시도 떼지 않고 갖고 있습니다.”


노인은 품속에서 비단 주머니에 곱게 쌓여 얇은 금줄로 묶여있는 맥의 손톱을 꺼내 보였다.


“참...액운을 막으라고 준 손톱인데. 자네 피해서 내려간건가.”


‘그럼 자네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


“아. 영감 조용히 좀 해봐. 정군. 내가 할 수 없는 일 일지도 몰라. 딸은 데려와. 상태는 봐줄게.”


“정말이십니까. 맥이님. 고맙습니다.”


“대신 밖에 데리고 온 놈들 두배는 데려와. 길 막아야 해. 그리고 이번 치료비는 꽤 비쌀거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속물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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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오후가 되자 문이 열리고 노인은 다시 드림테라피를 찾아왔다. 깡마른 여자의 손을 꼭 잡고서 맥은 정군의 딸이란 것을 알고서 상태를 살펴보고서 안내를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죠?”


“예? 예.”


“손녀분이신가? 잠을 못 자서 너무 걱정되신다고. 이쪽으로 가실까요?”


늦둥이 딸인 걸 알면서도 맥이는 정군의 부탁이 귀찮아 그 딸이라도 놀리려 했지만 영 반응이 없었기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안내를 이어갔다. 그런 맥이의 안내에 여자는 축 늘어진 어깨로 발을 질질 끌 듯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베드룸으로 향했다. 허브차를 내어주고 아로마 향초를 태우고 잠시 기다려달라 이야기를 하고 맥이는 밖에 서 있던 노인을 불렀다.


“정군. 절대 아무도 사무실 안으로 들이지마. 내가 부르기 전까지! 절대!”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맥이는 다시 베드룸으로 돌아갔다.


“이런 게 효과가 있을까요?”


힘없는 여자의 물음에 맥이는 웃으며


“효과가 없어도 간만에 한 숨 푹 자면 그게 좋은 거 아닐까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낮잠 잔다고 생각하세요."


“전 잠을 편히 자 본적이 없는데...수면제도 듣지 않아요.”


“오늘은 편히 잘 겁니다.”


“네.”


짧은 대화를 마치고서 곧바로 여자의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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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군.”


“그러게. 오랜만에 보는데. 이런 꿈은.”


맥이는 또 늙은 개와 함께 여자의 꿈에 들어와 서 있었다. 아니 떠 있었다. 짙은 회색빛이 온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상하좌우, 그 기본조차 알 수 없었다.


“영감. 움직일 순 있어?”


“날 어찌 보는 건가.”


“그럼 가 보자고.”


맥이는 텅 비어버린 공간에서도 익숙한 듯 몸을 움직이며 회색의 근원지를 찾아다녔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회색의 공간 그 하나.


“아무 소리도 빛도 물건도 없군.”


“나도 그래.”


“어딘지는 아는 건가.”


“다행히 냄새는 있어. 따라와.”


맥이는 눈을 감고서 옅게 새어 나오는 냄새를 찾아 늙은개를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갔을 때였다.


“멈추게. 맥이.”


맥이의 뒤를 따라오던 개의 말에 맥이는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뜨고서 발 아래에 펼쳐진 광경을 쳐다봤다.


“이런…. 욕이 다 나오네.”


맥이와 늙은 개의 눈동자가 고정된 곳에는 긴 흑발에 하얀 피부의 여자가 커다란 유모차에 올라타 있는 상태로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여자의 눈은 초점 없는 공허한 눈빛으로 유모차 지붕에 달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위로 커다란 손만이 여자를 보살피듯 쓰다듬고 유모차를 움직이고 있었다.


“맥이. 이건 아무래도.”


“영감. 안다니까 이야기 더 안 해도 돼.”


“어쩔텐가.”


“뭘 어째. 일단 알았으니 해야지. 오래간만에 먹기 싫은 거 먹겠네.”


“자네는 원래 악몽을 먹지 않나.”


“그건 세간에 잘못 알려진 거지. 보기에 맛없는 음식을 좋아하는 괴식가는 아니라고.”


둘은 짧은 대화를 마치고 유모차를 잡고 있는 커다란 손으로 몸을 날렸다. 가까워지는 둘을 알아차렸는지 손의 방향은 둘을 향했고 손톱의 위치에 실금이 생기더니 이내 손톱 위에 열 개의 눈이 뜨이고 둘을 덮치려 달려들었다. 유모차 속의 여자는 여전히 모빌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었다.


거대한 손아귀가 맥과 영감을 할퀴고 지나갔다. 둘은 허공에서 겨우 몸을 피하고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손이 튀어나온 근원지를 찾기 위해. 손가락의 눈이 돌아가며 둘을 쫓았다. 다행인지 덩치가 커 속도가 빠르지 않아 피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둘은 각자에게 고정 되어있는 다섯 개의 눈을 피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영감! 아직이야?”


“그러는 자네는?”


“젠장!! 영감 미안해! 다음 주 사료는 싸구려야.”


“이런.”


말을 마치고 맥이는 자신을 쫓아오던 손아귀에 잡혀버렸다.

눈이 있던 손톱 아래 손가락 끝이 벌어지며 입이 생기고 맥을 뜯어먹으려 하는 듯 주먹 쥔 손아귀의 속에서 우적우적하는 소리가 영감의 귀에 들려왔다.


“맥이.”


잠깐 뜯어먹히는 소리가 나자 맥을 쥐던 손이 펴졌다. 그런데 쥐어졌던 손가락이 두 마디 이상씩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보인 모습은 곰의 형상에 코끼리의 코를 하고 범의 꼬리를 흔들거리며 두 개의 송곳니를 번뜩거리는 짐승이 입에서 검은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꼿꼿이 서 있었다.


“더럽게 맛없네.”


한마디 말을 던지고 나서 괴이한 모습을 한 동물은 남은 손에 달려들어 이리저리 뜯어 삼키기 시작했다. 늙은 개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한숨을 쉬며 악몽의 근원을 찾으려 다시 몸을 움직였다.


“맥이!”


한참을 돌아다닌 영감이 유모차 위에 멈춰 맥이를 부르자 남은 손을 마저 뜯어먹은 괴이한 동물이 유모차로 다가왔다.


“유모차였네.”


“그럴 것 같더라고. 퉤.”


무언가를 뱉어내자 뜯어먹던 손의 살점이 허공에 둥실거리며 떠다녔다. 검은 액체 같은 형상을 뿌리며.


“어쩔 텐가?”


“어쩌긴. 유모차도 먹고 여자는 꺼내 가야지.”


“헌데, 여자와 유모차가 붙어 있네….”


“쉬운 게 없네. 쉬운 게 없어. 이거 나가면 비싸게 받아야겠어.”


본 모습을 나타낸 맥이는 그 긴 코로 유모차 안의 여자를 조심스레 감싸고서 송곳니로 유모차의 가장자리를 찢으며 씹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섭식을 멈췄다.


“젠장…. 너무 맛이 없어.”


“어쩌려고 그러나. 남겨두려고?”


“누가 남긴대. 유모차만 없애면 되는걸.”


맥이는 유모차에서 떨어뜨린 여자를 조심스레 안고서 빙글빙글 돌며 유모차의 지붕 쪽으로 날아가 자세를 고쳐 잡고서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맥이의 오줌을 맞은 유모차는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흐. 얼마 만에 시원하게 싸는 거야.”


“신수라는 칭호가 아깝네.”


“영감. 내 오줌은 영물인 거 잊었어?”


맥의 오줌을 맞은 유모차는 검은색 진흙 같은 모습으로 녹아 사라졌고 여자와 연결되어 있던 형태도 녹아 흐릿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붙은 채로 사라지진 않았다.


“영감. 이건 부탁할게.”


맥이의 한마디에 영감은 입을 벌려 입김을 불듯 움직였고 여자의 등허리에 붙은 형태가 마치 얇은 실 같이 흐릿해지자 맥이가 송곳니로 끊어버렸다. 초점 잃은 여자의 눈에 미세하게 생기가 도는 듯했다.


“이제 가자고.”


“알았네.”


영감이 입에서 하얀 방울을 내뱉자 다시금 하얀색이 가득한 출구가 완성되었고 회색빛이었던 공간이 조금씩 옅어져 가는 것을 보고서야 둘은 출구로 몸을 던졌다.


“정군!”


맥이의 외침에 밖에 있던 노인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맥이 님.”


“딸내미 간수 잘해…. 젠장.”


“그럼 제 딸은….”


“이제 사람처럼은 살 거야.”


“으허헝…. 감사합니다. 맥이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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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딸을 데리고 드림테라피를 떠나자 맥이는 소파에 몸을 깊게 파묻고서 한숨을 뱉어냈다.


‘꼬마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을 텐가…?’


“어디 귀한 딸내미가 여기저기 몸 굴리다 저런 꼴 당했다고 얘기를 쉽게 하겠어. 그것도 처음도 아니고.”


‘그래. 그 장난감의 숫자가 넷이었던가.’


“어. 유모차는 하나인 걸 보니 아마도 발정 난 녀석 하나가 네 번 임신 시킨 거겠지…. 정군 딸은 버티다 버티다 제풀에 놓치고서 죄책감에 저리된 거고. 죄책감에 절어있고 후회에 빠져 속이 무너지니까 질 나쁜 음기가 새어 나왔겠지. 잡스러운 놈들이야 허기에 달려들어서 정군 딸내미 기운 빨아먹으며 지내기에 딱 좋았을 테고.”


‘..고생 많았네. 자네 본 모습도 간만이라 반갑고 좋았네.’


“그만해. 지치니까.”


‘자넨 꿈이 뭐라 생각하는가.’


“뭐긴 뭐야. 꿈이 꿈이지. 이제 정신 차리고 살겠지. 꿈은 꿈으로 둬야지. 주인이 있는데 잡것들이 넘볼게 아냐.”


‘자네. 참 신수 같으이.’


“영감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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