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
햇볕이 따갑던 어느 날.
맥이는 온몸으로 햇볕을 쬐며 공원에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맥이를 한 번씩은 쳐다보며 지나갔다. 분명 나무 그늘 사이에서도 유난히 반짝이는 맥이의 머리 때문이었을 터였다.
“이번 달은 수입이 좋긴 한데. 오랜만에 흥분해서 기운을 많이 썼더니. 쯧.”
얼마 전 정군이라 불린 노인의 딸을 구하는데 본 모습을 현신해서인지 맥이는 기운이 많이 빠져있는 상태였다.
“아. 가기 싫은데.”
어느덧 햇볕에 뜨거워진 머리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택시를 타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경동시장이었다. 시장에 발을 들이자마자 여러 약재의 냄새가 코를 간지럽혀오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 맥이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시장을 훑어보며 돌아다니며 약재의 냄새가 잦아들 때 쯤 어느 골목의 작고 허름한 식당에서 멈춰 섰다.
“하아….”
한숨을 깊게 내쉬고서 맥이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이 네 개 정도 놓인 작은 백반집.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주방. 식사를 하며 만족감을 얼굴에 하나 가득 보이는 노인들.
“어서 오세요.”
중년의 여종업원이 인사하며 맥이를 맞았고 빈자리에 앉은 맥이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도 주방의 눈치를 살폈다.
“뭐 드릴까요?”
주문을 재촉하는 물음에 맥이는 더욱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특제 선농 솥으로 가득 주십쇼.”
라는 주문을 하며 고개를 들자 종업원은 주방을 향해
“특제 선농! 솥 가득!”
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주방에서 ‘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마에 칼을 꽂은 남자가 맥에게 걸어 나왔다.
“아? 이게 누구야? 이런 귀한 곳에서 솥째 시키는 누추한 놈이?”
“아하하. 그새 농이 느셨네요.”
남자는 건장한 체구의 맥을 보통 체구의 사람으로 보이게 할 정도로 덩치가 컸다.
“수련아! 식사 중인 손님들 다 드시면 가게 문 닫아라.”
남자의 굵은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귀가 아닌 온몸으로 울려오듯 했다. 그 와중에 맥이는 알 수 있었다. 남자가 단단히 화가 나 내는 목소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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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나가자 가게 문을 닫히자마자 맥이는 허리를 굽히며 다시금 인사를 건넸다.
“그간 별고 없으셨죠?”
“없었는데 방금 생겼군?”
“어르신도 참…. 농이 과하십니다.”
“어디 신수인 놈이 사람 행세를 하면서 순리를 깨고 다니는데 좋아할 신이 있겠나?”
“그러는 어르신도 사람은 아니십니다.”
“보아하니 현몽에 현신이라도 해서 왔나 보지?”
남자의 말에 맥은 다문 입을 열지 못했다.
“아주. 살 만큼 살면서 이제 신수가 아니라 신이라도 되려고?”
“아닙니다. 제가 감히….”
“아버님이 보셨다면 네 다리를 부러트리셨을 거다. 네 동생 놈은?”
“예전에 사고 치고 나서 저도 못 본 지 오래라서….”
“불가살 놈. 네 놈이 처신을 바로 했어야지!”
“몇백 년 전 일을 아직도.”
“이놈!”
“알겠습니다.”
“그래야지. 예나 지금이나 버릇이 없는 건 똑같군. 한때 장백산에서 지혜도 나눠주던 놈이.”
“부끄럽습니다. 신농님은 잘 계십니까?”
“오늘 아침까진 잘 계셨다만 네놈 덕에 불편하시겠구나.”
한껏 꾸지람을 들으며 맥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수라고 불리긴 하나 신은 아니기에 그랬을지 모르지만
“어르신이 안부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맥이의 한마디에 남자의 눈이 번뜩 뜨이더니 고함을 치려다 이내 입을 꾹 다물고서 이성을 찾으려는 듯 애쓰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어르신은 건강하시고?”
“예. 아직 정정하시고 사료…. 아니 식사도 잘하십니다.”
맥이의 대답에 남자는 아이의 꿀밤을 때리듯 식탁 위의 국자로 맥이의 머리를 때렸다.
“네놈 고집에 어르신이 고초를 겪으시는데! 이놈!”
“아니. 영감 아니 어르신 잘못에 벌 받으시는 거지. 제가. 뭘.”
맥이의 말대꾸에 신농의 아들이라는 남자는 씩씩거리며 화를 식혔다.
“그래. 어르신께 안부 전하고. 왜 찾아온 건데?”
“그게 아까 보셨다시피 원기가 빠져.”
맥이의 대답에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미간을 손으로 잡고 고민에 빠진 듯 말이 없었다.
“이치를 위해 한 거겠지?”
“동생 놈 실수에 속죄라 생각하며 한 번도 이치를 거스른 적 없습니다.”
맥이의 대답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몸을 돌려 찬장과 이곳저곳을 뒤지며 안도하듯 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재료가 있으니 바로 해주마.”
“고맙습니다.”
“어르신 봐서 해 주는 거니. 네 놈이 더 잘해야 할 것이야.”
남자의 말을 듣고서 맥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서 주방 옆에 있는 쪽방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주방에 있던 남자가 펄펄 끓는듯한 커다란 무쇠솥을 들고 방에 들어와 웃옷을 벗고 있는 맥이의 모습을 보고서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신수란 놈이 이렇게 어눌해서야. 숨겨놓은 몸뚱아리에 법칙이 하나 남아있지 않구나.”
“그래서 제가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습니까.”
“놈! 뚫린 입이라고!”
맥이는 꾸중에 또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대꾸해 봐야 치료는커녕 반나절은 욕만 먹을 게 뻔했다. 신농의 자식이라 불리던 남자는 펄펄 끓어오르는 무쇠솥의 내용물이 전혀 뜨겁지 않다는 듯 손을 담그더니 맥의 등에 기묘한 문자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신수라 불리는 놈이 제 몸 하나 꾸리지 못하는 꼴이라니”
“으윽.”
“네 놈 몸에 식(式)이 엉망이구나. 어디 용케 버티고 여까지 온 건 칭찬할 터이니 더 버텨 보거라.”
신농의 아들은 아버지의 기운을 받아 맥이의 등에 계속해서 문자를 정성스레 그려나갔고 등뒤로 손이 지나갈 때마다 맥이는 이를 악물고 참아가려 애를 썼다.
“침향이 쓰냐? 주사(朱沙)가 아프더냐?”
농이 섞인 듯 신농의 아들이 던진 이야기에 약이 올랐지만 이는은 이를 악물고 오기로 대답했다.
“어르신 손이 예전같이 투박하지 않아 이제는 부드러워 아픈 제가 치료받기에 딱 좋습니다.”
“아직 덜 아픈 모양이구나?”
말이 끝나자마자 맥이의 등에 기묘한 문자가 새겨지며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참기가 힘들어
짧은 신음 소리를 뱉었다.
“꼴에 형이라고 불가살 그놈만큼 불은 버티는구나.”
맥이는 그 말을 끝으로 아픔을 눌러가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이내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맥이가 눈을 뜨자 쪽방 구석에 놓인 작은 제단에 향을 피우며 제사를 지내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막 정신을 차렸지만 제단 앞에 앉아 공손히 절을 올리며 예를 표했다.
“아버님이 도우셨다. 살만하냐?”
“역시 약신(藥神)이시라 만물에 영통 하신 지라 이제 살 것 같습니다.”
뼈 있는 대답에 신농의 아들은 기분이 나빴으나 아버님의 능력에 대한 인사인지라 성질을 내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작은 제단에서 제(祭)를 마친 맥이는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칭찬은 하지 않고서 아버님의 칭찬을 돌려 말하는 맥이가 얄미웠지만 남자는 조용히 분을 식히며 입을 열었다.
“그래 뭔가?”
“신농의 아드님이시고 반신이시면서 여기에 설렁탕집 차리시면 대박일 텐데.”
“놈!!!!!!”
가게가 떠나갈듯한 호통에 그 언제보다 빠르게 맥이가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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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 : 중국에서 전해지는 농업의 신이자 약의 신.
한의학의 시초인 신노본초경을 서술하였다고 알려짐
선농단 : 맥의 농담처럼 설렁탕의 기원은 신농에게 제를 드리는 선농단에서 제를 마친 뒤
참여 인원들에게 국물을 나누어주었다는데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