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이

그슨대

by 배순호

'지난 밤. 생활고에 버티지 못한 청춘이 또 한 명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 새벽 두 시경 뒤에 보이는 저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린 청년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소위 말하는 취준...'


맥이가 1층의 주인이 외출하고 없는 철물점 구석에 앉아 대나무를 질겅거리며 소식을 전하는 기자의 모습이 나오는 티브이를 심드렁하니 꺼버렸다.


'표정은 왜 그런가.'


고개를 슬쩍 들어 맥이를 쳐다보며 늙은 개가 말을 걸었다.


"아니. 뭐 그냥 요즘 살기 좋은데. 왜들 저렇게 죽나 해서."


'시대가 변하는 만큼 역경도 변하는 법이지. 알지 않나?'


"그래도 말이야. 전쟁을 겪어 봤어? 나무뿌리를 뜯어 먹어봤어? 새끼를 품 안에서 놓쳐봤어? 그런 거 하나도 없이 그냥 떨어져 버린 자존감에 제 몸 던지는 거 아냐. 하여간 예전이나 지금이나. 맥아리들이 없어. 쯥."


마치 지금의 속된 말로 ‘꼰대’ 라고 불릴만한 말을 쏟아내며 혀를 차는 맥은 바닥에 놓인 전선의 피복을 벗기며 입에 넣기 바빠 보였다.


'자네는 어찌 그리 변했는가. 예전에 그 덕망 있고 위엄 넘치던 신수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음. 영감은 저 높은데서 쉬다 와서 그렇지. 난 이 땅에서 계속 굴러먹다 보니 이렇게 바뀐거고. 자연스러운거야."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죽었다는 청년. 이 근처인데 가 볼텐가?'


"응? 내가 왜?"


맥이가 의아해하며 전선을 질겅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작은 이매(異魅) 한 마리가 몸을 배배 꼬듯 서 있었다.


'지신(地神)이 와 달라 하네. 전할 말이 있다는군.'


"아. 지가 오라고 해! 어디 이제 막 자리잡은 놈들이 오라 가라야."


맥이의 신경질에 이매는 겁을 먹었는지 부르르 떨다가 이내 땅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그새 새로 입에 문 전선을 마치 육포 뜯듯 거칠게 질겅거리며 신발을 구겨 신는 모습에 늙은 개는 고개를 저었다.


"영감도 갈 거요?“


'난 가게를 지켜야지. 다녀오시게.'


맥이가 반짝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신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하품을 하며 작게 속삭였다.


'또 화 나서 오겠구만.'


맥이가 뉴스에 나온 건물의 근처에 도달했다. 헌데 이상하게도 생명이 사라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사자(使者)놈들이 이렇게 일을 빨리 처리할 리 없는데?'


맥이가 안력(眼力)을 집중해 장소를 바라보니 응당 남아있을 백(魄)의 기운이 없었다. 숨을 쉬는 생명이 사라지는 순간 혼과 백이 나뉘며 어찌 되었건 백의 흔적은 남아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맥이는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를 한 병 사서 몸에 뿌리고 입을 헹구며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게 했다. 그리곤 외진 골목에 들어가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아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귀에 대고선 조용히 속삭였다.


"나와."


맥이의 한마디에 땅바닥에서 꾀죄죄한 회색 도복을 입은 어린 동자의 모습을 한 형체가 솟아올라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맥에게 인사를 건냈다.


'지신(地神) 하율. 인사를 드립니다.'


"뭐 하는데 자꾸 일 터지게 두냐. 지신 맞아?"


'지맥이 많이 뒤틀려 소신의 힘이 부족해져.'


"지맥은 뭐 백년 전 부터 이랬잖아."


'소신의 미숙함을 용서하옵소서.'


"그래. 어르신이 부탁해서 왔다만. 무슨 일인데 날 불러. 날짐승들 시켜서 전하지."


'신수께서는 혹 지난 변고의 흔적을 보셨는지요.'

"그러잖아도 보고 오는 길이긴 한데 이상하단 말이지. 백(魄)이 없어. 사자가 다녀간 것도 아니고."


'그슨대 이옵니다.'


"뭐? 그슨대? 시골에서 사는 놈이 여기는 왜?"


'그것이 현세에 인간들의 마음이 피폐해져 되려 잡아먹기 쉬워진지라 영역을 넓혔다 전해 들었사옵니다.'


"넌 안 막고 뭐 했어? 지신인데."


'소신. 이제 지신에 오른지 막 3백년에 다다라 신력이 부족하여.'


"아니 그럼 그슨대 그 놈은 언제 왔는데?"


'달포 정도 되었사옵니다.'


맥이가 그 말을 듣고 큰 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럼 어르신이나 나한테 알리던가 했어야지! 지금 시간이 이렇게 지나서 뭐? 신력이 부족해?

그게 변명이야?"


골목 한 귀퉁이에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지나는 행인들이 흘긋대며 맥이를 바라보고 몇몇은 가까이 다가왔지만 진하게 풍기는 술 냄새에 금방 뒤돌아 가며 손사래를 치며 술주정이라 여기고선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그슨대가 불사(不死)인건 아냐?"


맥이의 물음에 한껏 움츠려든 모습의 지신은 말이 없었다.


"망할 영감. 이래서 날 보냈군. 이 근처에 하천이 있던가?"


'여기서 북쪽으로 10리 떨어진 곳에 곡천이라 불리는 작은 천이 하나 있사옵니다.'


"물 상태는? 물고기 있어?"


'아직 곡천은 생태가 살아 있사옵니다.'


"하율. 넌 가서 그슨대 잘 감시하고 이매 하나 보내서 영감 곡천으로 오라고 전해. 난 뭐 한 가지 더 알아봐야겠다.'


'명을 받듭니다.'


하율이 인사를 마치고 다시금 땅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맥이는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의 다이얼을 누르며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쇳조각을 꺼내 입에 넣으며 골목을 나섰다.


"어디 보자. 그게 뭐 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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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짙어가자 도시 외곽에 있는 하천에 늙은 개 한 마리가 다리를 절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마치 경치를 바라보는 노인같이 그윽한 눈빛으로 경치를 구경하는듯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 영감 빨리 왔네?"


인적이 뜸해진 시간 건장한 체구의 맥이가 다가와 쉬고있던 늙은 개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가 늦은게지. 헌데 여기에는 왜?'


"아. 그제 꼬맹이 지신이 얘기하는 거 듣고서 생각난게 있어서 뭐 좀 하느라고."


'그 양동이는 또 무어고? 대체 뭘 하고 다니는건지.'


"응? 영감도 모르겠어? 이거 진짜 성공인데? 으하하."


'뭐가 말인가.'


"아니야. 그럼 읏차…. 일 좀 해볼까."


맥이는 짧은 대화에 뭐가 신났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신발을 벗고서 바짓단을 접고서 하천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이 시간에 천에 들어간다고?'


"어. 아 맞다 영감. 그 뭐냐 기운 좋은 이매 하나만 불러줘. 그냥 힘만 쓰면 될 것 같으니까. 난 귀찮아서."


인상을 쓰며 맥이 그슨대의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비우고 또 이제와서 하천에서 이매를 불러달라는 이야기에 황당했지만 여지껏 맥이 실 없는 일은 한 적이 없었기에 믿고 기다리기로 하고 이매 한 마리를 불러 맥이의 옆에 세웠다. 크기가 맥과 비슷한 안개의 형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이내 눈 앞에 자리를 잡고 나타났다.

'헌데 자네는 왜 이매를 부리지 않나?'


"귀찮아서?"


'자넨 연장자를 공경하는 법을 잊었나 보군.'


"그런거 나도 좀 살다보니까 잊었지. 흠. 이 놈 기운 좋게 생겼네. 어디보자. 야! 이거 좀 들어 봐."


맥이의 부름에 이매가 다가와 아래 있는 돌을 집어들자 불빛을 비추며 맥이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기 시작했다. 늙은 개는 그제야 맥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고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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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저기 봐."


"어? 뭐?"


친구의 말에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골목길 구석에 술에 취한 듯 벽에 기대어 한 여자가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딱 봐도 무척이나 술에 취했는지 잠에 빠진 여자였다.


"야. 죽이지 않냐? 완전 떡 된 것 같은데. 어때?"


"지랄. 양아치냐? 저런 거 잘 못 건드리다 인생 쫑나 새꺄."


"우리가 선량한 시민은 아니지 않냐?"


"그건 그러네. 어떻게? 돈이라도 챙겨?"


"돈만 챙기지 그럼 병신아. 뭐 돈 챙기다가 가슴에 닿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킥킥. 병신. 가자."


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남자와 모자를 쓴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행인들이 없음을 확인하고 골목으로 향했다. 가로등 불빛마저 닿지 않는 캄캄한 골목에서도 술에 취한 여자의 모습은 수컷 둘을 유혹하기엔 충분했다. 금전적이건 신체적이건. 모자를 쓴 남자가 여자를 가로막고 소변을 보는 흉내를 내며 시야를 가렸고 노란머리의 남자는 쪼그려 앉아 여자의 지갑을 뒤지는 척 하며 가슴을 주물러댔다.


"와. 씨. 자연산이야. 죽여주네."

"빨리 하고 나와. 병신아. 킥킥. 어?"


시야를 가리던 남자가 골목길 안쪽에서 낯선 형태를 발견하고서 말을 멈췄다.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인 듯 했다. 골목 깊은 곳에서 꼿꼿이 선 채 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먼저 발견한 남자가 소리를 쳤다.


"꼬마야. 여기 누나가 감기 걸릴까 봐 형아들이 봐주는 거야. 언능 집에 가. 훠이~"


"킥킥킥. 그래 꼬마야 여기 누나 추울까 형들이 따뜻하게 해주려고 하는 거야. 킥킥."


둘의 비아냥에도 아이는 달아나긴 커녕 둘을 향해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조금씩 다가왔다.


"아놔. 그러니까 빨리 하라니까. 병신이. 애 가까이 오잖아."


"아. 조용히 좀 해봐. 얌마! 저리 가!"


여자의 몸을 더듬던 노란머리의 남자가 발치에 굴러다니던 빈 음료수 캔을 주워 겁을 주려고 아이에게 던졌다.


"어?"


남자의 손을 떠난 음료수 캔이 아이의 머리에 맞았다. 하지만 머리에 맞는 소리도 튕겨나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캔 자체가 아이에게 맞고서 사라진 것 같았다.


"뭐냐?"


"맞힌거 아냐?"


"그런거 같은데? 뭐야? 피했나?"


노란머리의 남자는 쓰레기를 몇 개 더 줏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씩 다가오는 아이를 향해 하나씩 하나씩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집에 가랄 때 갔어야지. 꼬맹이 새끼가."


"그만 해. 새꺄. 애야."


깨진 병도 종이뭉치도 캔도 아이를 맞쳤지만 하나같이 사라지는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새 가까이 온 아이의 형태가 조금씩 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하고 가자. 어? 느낌 이상해."


모자를 쓴 남자가 쓰레기를 던지는 남자의 어깨를 잡고 말리려 하자 노란 머리가 고개를 돌리며 욕을 내뱉었다.


"아! 뭐 병신아! 저런 꼬맹이한테도 쪼냐? 이제? 망이나 봐! 간만에 여자 좀 만져보나 했더니. 별 거지 같은 게."


"아니 그래도 애한테까지는 심하잖아."


"뭐! 병신아! 이제 돈 훔치는 건 괜찮냐? 말도 못하는 게…. 어휴."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떨치고 노란 머리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의 뺨을 때렸다.


"뭐 이거 깜깜해서 어디가 얼굴인지도 모르겠네. 어?"


아이를 때리고 나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노란 머리는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자세히는 자신의 손톱이나 팔목에 찬 시계는 보였지만, 자신이 때린 아이는 형체가 까맣게 보일 뿐 이목구비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듯이 보이질 않았다. 고개를 돌려 서 있던 친구를 바라봐도 모자라던가 옷차림의 윤곽은 보였다.


"야. 이 꼬맹이 뭔가 이상해. 꼭. 어?"


노란 머리의 세상이 뒤집혔다. 순간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것처럼 보였다.


"뭐야. 이거."


정신을 채 차리기도 전에 노란 머리의 눈 앞에 모든 것들이 어둠에 쌓였다. 모자를 쓴 남자는 친구의 머리가 위아래로 꺾이며 맞을 때마다 커졌던 아이의 그림자가 그대로 친구를 삼키듯 먹어버린 장면을 보고서 그대로 자리에 굳은 채 공포에 벌벌 떨고만 있었다.


"아…. 아…."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아이 아니 이제는 골목을 뒤덮을만한 크기가 되어버린 검은 물체가 자신을 먹으려 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포에 질려 눈을 감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물체가 다가올수록 주변에 나뒹굴던 쓰레기들이 그림자에 가려지듯 그렇게 삼켜지면서 오는 모습에 모자를 쓴 남자의 바지가 빠르게 젖어갔다. 점점 커진 그림자가 주저앉은 남자의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어이. 그만하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맥이었다. 등에 가방을 메고서 그슨대와 남자의 사이에 나타난 맥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슨대가 덮쳐왔지만 맥이는 코웃음을 치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만 하라고 했지?"


맥이의 손에서 환한 불빛이 퍼져나가 골목을 비추자 그슨대가 급격히 작아지며 골목의 깊숙한 곳에 멈춰 섰다.


"오? 이거 쓸만한데?"


손에 들린 휴대용 LED 랜턴을 보며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다 뒤에서 겁에 질린 남자를 발견했다.


"응? 넌 도망 안 가고 뭐해?"


"아…. 그게…. 아니고."


"아니긴 뭐가 아냐. 이 나쁜 놈."


맥이가 남자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대로 랜턴으로 남자의 정수리를 찍어 기절시켰다.


"내가 살생을 안 하는 게 이럴 때 너무 아쉽다."


다시 뒤에서 그슨대가 빠르게 날아와 그런 맥이를 덮치려는 순간 씩 웃으며 자신의 뒤쪽으로 랜턴을 밝혔다. 이번엔 스위치를 누르며 깜박거리도록 하면서. 그슨대는 빛이 깜박일 때마다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괴로워 하는 듯 했고 맥이는 신기한 장난감을 보듯 무척이나 재밌어 했다.


"하하하. 이거 진짜 재밌네.. 왜? 약 오르냐? 그럼 음."


맥이는 랜턴을 끄는 동시에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잡아보던가."


그슨대를 약 올린 맥이가 건물에서 건물로 몸을 날려 도망치듯 달리기 시작했고 이미 약이 끝까지 오른 그슨대는 건물 벽의 그림자를 타고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밤의 추격전이 시작했다. 틈틈히 뒤를 돌아보며 그슨대의 움직임을 살피며 도시를 벗어나 외곽으로 방향을 잡았고 점점 외곽을 향할수록 그슨대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었다.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맥은 랜턴을 비추며 거리를 벌렸지만 상가의 불빛이나 가로등의 수가 적어질수록 그슨대의 영역이 넓어져 랜턴의 불빛을 피하며 따라오는 그슨대를 떨치기에 점점 힘이 들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도시 외곽의 어느 산에 이르러서야 이때다 싶어 랜턴의 조리개를 조절해 빛을 넓게 퍼트려 그슨대에게 비추려 팔을 뻗었고 순간 반짝이던 불빛이 바로 번쩍하더니 꺼져버렸다.

달려가며 고장 난 랜턴을 확인하던 맥이가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Made in China’


“하여간.”


맥이는 멀리 랜턴을 집어 던지고 산 아래 공터에 발을 멈췄다. 달빛이 비치는 공터는 꽤 넓어 보이는 장소였지만 이 정도 밝기라면 그슨대가 돌아다니기엔 방해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순간 공터의 가운데에 흙먼지가 일었다. 뒤를 쫓아 온 그슨대는 크기가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난폭하고 사나워 있지도 않은 형태로 맥이를 당장에라도 죽일 듯 주위를 맴돌았다. 그런 그슨대를 보며 메고 있던 가방을 풀어 안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 앞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부시럭 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비닐봉지에 붙어 있던 부적을 맥이 떼어내자 그슨대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너도 이게 뭔지 이제 냄새를 맡는구나? 하긴 영감도 몰랐는데 너라고 알겠냐. 옛다."


봉지를 흔들던 맥이가 무언갈 휙 하고 던지자마자 땅에 떨어진 물체로 그슨대가 달려들었다.

아까 골목에서 쓰레기를 집어삼킬 때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이번엔 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침을 흘리는 것처럼 검은 물체를 질질 흘리는 모습이 마치 며칠을 굶은 짐승 같았다.


"잘 먹네? 너 때문에 내가 야밤에 고생을 좀 했지. 더 줄까?"


다시 봉지에서 꺼내 그슨대 쪽으로 던진 그것은 민물가재 였다. 민물가재가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그슨대는 미친듯이 달려들어 가재를 먹어치웠다. 아무리 어둠 속에서 사는 요물이라도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진미(珍味)로 취급하는 가재 앞에서는 마물이 아닌 그저 짐승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가재를 툭툭 던져대며 공터의 중앙으로 그슨대를 유인하며 맥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그리고 내가 한 이틀을 너 따라다니면서 실험을 했거든? 넌 잘 모르지?"


‘까드득’ 무언가 씹는 소리가 심해진 것과 동시에 봉지에 잡아둔 가재가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다.


"너 다니던 길목에 내가 아는 꼬맹이한테 부탁해서 이런 거 몇 개 뿌려놓고 봤는데 아주 그냥 껍질까지 씹어먹더라?"


비어버린 봉투를 땅에 집어던지자 아직 허기에 찬 그슨대가 맥이를 덮치려고 꿈틀거리던 순간 가방에서 커다란 바닷가재를 꺼내어 땅바닥에 집어 던지며 뒤로 몸을 날렸고 동시에 그슨대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바닷가재를 온몸으로 삼키려고 했었다.


"영감!!!!"


맥이의 외침과 동시에 공터가 대낮처럼 환히 밝아지기 시작하며 그림자가 생길 틈도 없이 사방이 빛으로 채워졌다. 바닷가재에 정신이 팔린 그슨대는 그 환한 빛 아래 자신의 몸집이 바닷가재보다 작아지는지도 모른 채 아직도 허기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는 듯 했다.


'가재를 이리 좋아하는 걸 알았나?'


"영감. 나 예전부터 영산에서 지혜의 신수 였어."


어느새 다가온 늙은 개가 맥이의 옆에 서서 그슨대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어찌 할 텐가?'


"뭐 어찌 되었든 사람을 해쳤어. 없애야지. 그게 맞아."


'그래. 그렇지. 헌데 저거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겐가?'


"지금 어떻게 없앨까? 생각 중이긴 한데…. 건방지게 날 잡아먹으려고 했단 말이지."


맥이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하다가 가방을 뒤져 아까보다 더 큰 랜턴을 꺼내 들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Made In Korea' 가 새겨진 글씨를 확인하고서 웃으며 조리개를 돌려가며 빛을 좁게 비치도록 만지고서 바닷가재를 뜯어먹고 있는 작아진 그슨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제 너 좋아하는 거 다 먹었으면 암흑으로 가라."


말을 마친 맥이가 빛을 비치자 마치 P.E.T 병이 열에 쪼그라들듯 크기가 빠르게 줄어 들어가는 그슨대였다. 그제야 자신의 크기가 작아진 것을 알아챈 그슨대가 달려들었지만, 빛이 비치는 랜턴의 발광 부 쪽으로 그대로 찍어버렸다.


소리도 없이 그저 검은 연기가 땅에 퍼지듯 그슨대가 소멸해버렸다.


땅 위에 수직으로 서 있는 랜턴을 향해 맥이 합장을 했고 그 모습이 의아한 늙은 개가 맥이 에게 물었다.


'자네가 요물(妖物)에게 안녕을 고했던가?'


"엉? 뭔 소리야? 가재한테 인사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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