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재 Aug 28. 2022

붓다가 말하는 행복의 길

'붓다'는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무엇을 깨달았다는 걸까?

다르마(Dharma;우주의 진리)를 알았다는 말이다.

붓다는 명상으로 다르마를 발견했고 이를 제자들에게 평생 가르쳤다. 남방불교는 아직 그 전통대로 수행하고 있다.


다르마는 무엇일까?

다르마의 성질은 두 가지다.


무상함과 불확실성.





행복하려면 무상해야 한다



무상함이라...


봄날은 가고 사랑은 변한다.

아이는 자라고 곁을 떠난다.

만나고 헤어지고 나이가 든다.

변하지 않는 게 없다.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눈에 그 변화들이 보이는가?


산은 산이고 새는 새며 나는 나다.

뭐가 변하지?

그냥 모든 것이 고정된 것만 같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지만, 우리는 똑같다고 느낀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변하는 것이 있음을 경험할뿐이다.


그렇다. 그래서 대단한 진리는 말은 아주 쉬워도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것은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깊이 알게 했다.

사물과 별, 감각과 생각, 감정, 모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그건 여기에 있지 않다. 이미 지나갔다.

그런데 나는 그 생각과 감정을 붙들고 괴로워한다.

마음이 아주 고요해지면 그것들이 여기에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면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나 뒷골이 당기는 느낌 따위는 사라진다.


붓다는 무상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게 계속 여기 있다 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괴로움이 일어난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기억, 젊음, 재물, 쾌락은 붙들고 싶다.

반대로 비난이나 무관심, 실수, 외로움 같은 것들은 힘껏 밀어내려고 한다.

좋은 건 변해서는 안 되고 싫은 건 빨리 지나가고 없어지기를 바란다.


모든 존재는 강물과 같다.

지금 보는 강은 어제의 강이 아니고

몇 초 전의 물방울도 이미 지나가고 없다.

이렇게 내 인생이 단지 우주의 물방울이라면 통찰하기 쉬울텐데, 그것이 내 돈과 연인, 직장, 칭찬이라면 어떨까?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계속 내 것이어야 하니까.



아주 깊은 산, 어느 나무 위에 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계절이 무르익자 사람들은 나무의 열매를 약으로 쓰기 위해 산으로 몰려왔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열매를 따가자 새는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내 것이다! 내 것이다! 가져가지 마라. 내 것을 따 가면 나는 싫다!"

새는 쉴 새 없이 지저귀었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 채 부지런히 열매를 땄다. 새는 열매가 없어질까 봐 걱정이 되어 쉬지 않고 소리를 질렀고, 결국 죽고 말았다.


내 것이 언제까지나 내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그러면 미래를 불안해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게 만족스럽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래부터 내 것이었을까?

하물며 나는 누구의 것인가?


내 것이어야만 한다는 집착은 과거와 지금, 미래 가운데 지금에 살지 못해서 생긴다. 항상 과거에 괴로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좋은 것이 지나감을 괴로움의 원인으로 여기고,

지금은 미래에 그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뿐이다.

정작 지금에 깨어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내 것에 대한 환상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에 갇혀 늙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행복은 멀고 괴로움은 가까운 삶을 살게 된다고 붓다는 말했다.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을 받아들일 때 진짜 행복이 온다.

진짜 행복이란 '행복해'라고 문자로 적거나 말로 말하는 그 행복은 아니다. 흔들리지 않고 조건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것이 진짜 행복이다.

붓다는 해탈하기 전 반드시 겪어야 하는 여덟 가지 고통 가운데 태어나 사는 것을 근본적인 괴로움이라고 말하였지만, 그 괴로움은 깊은 명상을 통해 소멸할 수 있다고도 말하였다. 붓다는 실제로 자신의 삶 자체를 행복으로 구현하였다.


언뜻 무상함을 받아들인다는 건 행복이 아니라 불행처럼 여겨진다. 왜냐하면 내 것이 언제까지나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유권과 권리로 점철되는 자본주의 인간에게 무상함은 어쩌면 대단히 패배적이고도 혁명적인 발상일 것이다.


그런데 무상함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누가 내 미래와 칭찬을 가져가는가?

그건 나의 두려움일 뿐이다.

또 쉽게 무기력에 빠질까?

오히려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다르마의 성질 중 두 번째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붓다는 말했다.

행복해지려면 소소하게 하되 집착하지 말고

열심히 하되 기대하지 않으며

노력은 하되 걱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가는 연습을 반복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무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