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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Nov 09. 2022

우리에게는 숙명론이 필요하다

 운명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아주 확실하다고 믿는 운명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숙명만큼 좋은 단어는 없다. 숙명이란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인과율에 따라 원인이 그러하면 결과도 그러할 것이라는 연역적 믿음은 삶의 경험 가운데 귀납적으로 강화된다. 인지의 범위가 넓어지고 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숙명론을 약화시키기는 했지만 행복보다 불행의 양이 더 많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은 여전히 숙명론을 지지하고 있다. 원인과 결과,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불확실성에 몸서리치는 인간에게 숙명론은 일종의 안정제인 것이다.


그러나 숙명론적인 사고방식은 결코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사고의 방식은 긍정과 부정,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생각의 무게중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생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생각의 주체와 뚝 떼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긍정과 부정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친 생각의 경향성을 가진 주체가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와서 기존의 경향성과 결합한 것이다. 그래서 숙명론적인 사고방식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며, 숙명을 여과하는 심상의 상태에 따라 파괴적이기도, 유용하기도 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어둠 속에서 걱정을 버리고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신념 역시 확실한 결과를 의심하지 않는 숙명론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긍정적인 사람이 숙명론을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지 않고, 기대하는 목표를 달성하게 해 줄 능동적인 태도와도 연결된다. 소위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았다고 평가받았던 위인들을 이제 와서 숙명론자라고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에 나열하는 원인행위 뒤에 내가 바라는 결과가 응당 뒤따를 것이라는 믿음은 숙명론적인 사고방식이며, 의도하지 않은 다양한 변인과 결과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지 않는 확고한 태도는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끊임없는 원인행위를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목표를 이루기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목표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라고 권유하고 싶다. 목표에 다가서는데 이보다 더 강력한 도구는 없다. 숙명론대로 사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것이며, 불확실한 세상에 맞서 세상을 발전시키는 자기효능적 인생관이다. 이와는 반대로, 운명이나 숙명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불확실성이 진리라고 믿는 태도는 사뭇 이성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인생과 세상을 확실하게 불확실하게 만들 것이다. 숙명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인생을 자연의 의지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힘없는 모습이 떠오른다면, 심장에 불을 지필 확고한 목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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