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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Feb 02. 2023

최후의 인간에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한 순간이다. 동시에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순간이기도 하다.


모든 살아있는 인간은 모든 죽은 인간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모든 살아있는 인간은 앞으로 태어날 모든 잠재적 인간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인류 마지막의 인간이 태어날 것이다.


이 땅 위에 존재했던 1,190억 명의 인간들은 잠재적 인간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고 있을까?

가장 마지막에 태어날 그에게 나는 과연 어떤 존재로 기억될 것인가?


-만약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태양계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기 시작한다면, 인간의 멸종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고 잠재적 인간은 더 많아진다.

-만약 인간이 태양계를 벗어나 항성계 또는 은하계 수준으로 흩어져 산다면 은하계의 에너지가 유지되는 1천억 년 동안은 멸종을 피할 수도 있다. 은하계가 한 번에 폭발해버리지 않는 이상 인간은 존속할 것이다.

-만약 인간이 은하계를 벗어나 전우주로 흩어져서 산다면, 인간이 멸종할 가능성은 우주가 소멸할 가능성과 궤를 같이할 것이다.


세 번째 가정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잠재적 인간의 수는 양과 구 사이다.

양은 1에 0이 28개 붙는 단위이고,

구는 1에 0이 32개 붙는 단위이다.


그래도 인간은 반드시 멸종한다.


한편으로는 유전자 공학으로 인간에서 인간이 아닌 생명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때부터는 인간의 존속이 아니라 다시 종의 다양성이 관건이다.

종과 종 사이의 접함점, 그 이전에 어느 흐릿한 경계선 위에는 그래도 마지막 인간이 서 있을 것이다.


그는, 또는 그녀는 아기로 태어난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 흐른, 어느 환경 속, 어느 공간에서, 자신이 마지막 인간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울음을 터뜨리거나 잔뜩 찡그린 얼굴로, 엄마의 피를 뒤집어쓰거나, 갈라진 엄마의 몸 사이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거나 생명의 불씨가 꺼지기 직전에, 또는 죽어가는 순간에 자신이 마지막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앞으로 죽어간 모든 인간들의 인생은 별 보다 많았고 그는 별들의 죽음이 쌓아 올린 가장 애틋하고 비참한 존재로 죽는다.


그는 나를 탐구할 수 없지만 나는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탐구할 수 있다.

나는 모래알 사이 안개 같은 존재지만 그는 명백하고 선명한 존재다. 그는 죽은 인간들과 잠재적 인간들의 최후의 정점이다.

나는 오백 년 전에 살았을 인간 무리나 전승된 인간도 알고 태어나는 아기들과 태어날 인간들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는 그의 이후에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나는 한 명으로서 인간의 존속 기간에 비례하여 잠재적 인간들에게 무수한 영향을 줄 존재이지만, 그는 오직 지난 모든 인간들의 모든 영향을 간직한 존재로 살 것이다.

이것이 그의 운명이다.


나는 그를 상상한다. 그도 지금 나를 상상한다.

나는 그를 무척 아끼며 사랑한다. 그는 나를 그리워한다. 결국 별은 지고 우주는 더 어두워진다.


인간은 분리된 자아로 서로를 탐했다가 형태와 존재의 이어짐을 하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인간으로 귀결될 양과 구의 인간은 지나고 보니 모두 자연이었다. 그렇게.


최후의 인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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