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쏘여 잘 있거라

내가 한없이 여리고 어리숙했을 때

by 주부맥가이버

내가 점점 커가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내 성격이 그다지 편안하고 좋지 못하다는 것을. 사춘기를 거치며 처녀시절까지도 나는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엄마는 늘 융통성이 없고 고지 곧대로인 내 고집에 대해 누누이 지적을 하고 변화하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모든 걸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지적을 서슴지 않는 엄마에게 번번이 대들고 목소리를 높여 대꾸를 했다. 어쩌면 장점처럼 보일 수 있는데 나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었다. 누가 하는 말을 꽤나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그 말이 사실이 아닌 걸 알았을 땐 적잖이 실망하고 내 자신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지만 그 화를 되려 가족들에게 풀곤 하였다. 정말 그때는 내가 한없이 여리고 어리숙했을 때였고, 나는 꽃같은 17살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식이 다음 날이었다. 방학식 날엔 반대항 합창대회가 열리는 날이라 몇 날을 이날을 위해 연습했는지 몰랐다. 여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고 한밤에 가방을 등에 매고 걸어가는 길이 약간 축축하게 느껴질 정도로 계절은 많이 가까이 와 있었다. 집에서 걸으면 20분 정도 걸리는 국제 외국어학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어둑해진 시내의 밤거리를 걸으며 내일이 방학이라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학원에서 집까지 중간쯤 걸어왔을까. 실버 로터리라고 불리는 사거리에서 나는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짧은 찰나였지만 신호등이 바뀌길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초록불이 되자 이내 나는 횡단보도로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겼다. 초저녁이었지만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집으로 혼자 걸어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3분의 2 쯤 걸었을까? 진한 청색의 무쏘에 탄 젊은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횡당보도에 걸쳐서 차를 세우고 있었다. 내가 학생으로 보였는지 대뜸 나에게 '알바할 생각이 없느냐?' 물어왔다. 곧 방학이었고 내 친구 미옥이가 알바 자리를 찾겠노라 했었던 말이 기억나서 처음 본 그 젊은 남자에게 대답을 했다. '어떤 알바인데요?'


알바 자리에 대한 그의 대답은 요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 그저 지나쳐가면 될 것을 나는 왜 그 일면식도 없는 남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일까? 그 알바라는 것은 기다릴 필요도 없이 지금 당장 해주면 되는 일이라고 하였다. 실버 로터리엔 실버 목욕탕, 실버 나이트클럽까지 온통 실버라는 이름으로 시작되는 가게들이 들어찬 꽤 큰 건물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그 건물의 맨 꼭대기층인 실버 나이트클럽에 올라가서 '김 선생'이라는 사람을 찾아주면 된다고 말했다. 세상에 서울역에서 박서방 찾는 것도 아니고 그 복잡한 곳에 올라가서 김 선생을 찾으라니.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그것을 하기 위해 고등학생이 들어가지도 들어가서도 안 되는 나이트클럽으로 가기 위해 이미 나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가까워질수록 쿵쿵 대는 음악소리가 벌써 울려 퍼졌다. 난 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곳에 올라갔던 것일까? 겁이 나서 침을 꼴깍 삼키고 나는 그 불빛이 뻔쩍이고 고막이 터질도록 울려대는 음악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 들어갔다. 처음 본 나이트클럽의 모습은 가히 광적이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사람이 버글거리고 있었고 아무도 나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같이 따라 올라온 그 남자와 함께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지만 대체 김 선생이라는 작자는 찾을 수도 찾을 길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 남자에게 그만두고 이만 내려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맥없이 따라 올라온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화를 불같이 잘 내는 나는 처음 본 사람이긴 했어도 요상한 요구를 한 이 남자에게 몹시 화가 났었다. 씩씩 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그 건물 1층으로 내려왔다. 집에 가려는데 그 남자는 미안하다며 자기가 집까지 태워줄 테니 자신의 차에 타라고 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남자의 차에 타에 올라타버리고 말았다.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그맘때쯤 인신매매에 대한 흉흉한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힘없고 젊은 여성을 눈 깜짝할 사이에 검디검은 봉고차에 확 납치해서 떠나가는 장면을 상상하면 등골이 그렇게 오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난 그런 얘기를 듣고도 늘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늘 했던 말 때문이었다. 야! 니 얼굴을 봐라. 그 얼굴이면 잡혀가지도 않고, 잡혀가 봤자 원양어선으로 끌려가 고작 양파나 감자를 깎게 될 테니 걱정하덜덜 말어라! 그랬다. 그래서 난 그 얘기를 철석같이 믿고 나처럼 못난이는 절대 인신매매의 대상이 아닐거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여름이 오기 전 실버 로터리에서의 그날은 그런 나의 어리숙한 믿음을 와장창 깨뜨릴 정말 공포스러운 날이 되었다.


실버 로터리에서 내가 잠시 살았던 아파트로 가는 길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짦은 거리였다. 바보같이 이미 그 무쏘에 몸을 실은 나는 미안하다며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그 젊은 남자의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어차피 나이트클럽에서 시간을 허비했으니 나는 서둘러 집으로 가야 했다. 그리고 자기는 창명여자고등학교의 체육교사이며 내 이름이 뭔지를 물었다. 나는 똑바로 내 이름 석자를 그에게 말해줬다. 황. 혜. 란.이라고. 다음 사거리에 다다라서 좌회전만 하면 바로 코 닿을 곳에 우리 아파트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좌회전이 아니라 우회전을 하였다. 내겐 생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공포감이 이내 밀려왔다. 심장이 마구 쿵쿵대기 시작했다. 손발이 떨렸다. 그 방향이 아니라고 말을 내뱉었지만 이미 차는 쏜쌀같이 시내를 벗어나 어두컴컴한 시골길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 했고 내가 그렇게 못생긴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시골길을 달리자 모든 것이 깜깜했다. 양 옆에 아무것도 없이 컴컴하기만 한 길을 무쏘는 참 힘차게도 달렸다. 나는 이미 울먹이며 차를 돌려서 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조용하게 운전을 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갑자기 차를 휙 꺾어 아래 비탈진 길을 내려가더니 그는 시동을 끄고 차를 세웠다. 그가 차를 세운 곳은 다리 밑이었다. 너무나 기나긴 시간과도 같았던 동시에 찰나 같았던 그 시간에 내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울고 있는 나를 두고 그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 트렁크를 열어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내 등위에서 요구르트 먹을래? 물 마실래?라고 물어왔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말, 그 음성을 잊지 못한다. 아니 잊을 수 없다. 나는 대답을 안 하는 것보다 대답을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요구르트를 하나 받아 들었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는 공포에 조수석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차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집으로 걸어가겠다는 나를 잡아끌고 어깨를 잡으며 그는 내게 소리쳤다. '너 도대체 왜 이래 영선아!' 아니 선영이었나? 분명 그가 학교 선생이라고 소개했을 때 나는 내 이름 석자를 얘기했건만 그는 나를 다른 이름으로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난 필사적으로 도망가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깊고 무서운 이 공포의 순간에서.


다리 위로 올라올 수 있는 길을 쳐다보았지만 앞은 깜깜하기만 했다. 하지만 난 무조건 그쪽으로 달렸다. 살려달라는 소리도 빠뜨리지 않았다. 합창대회를 위한 연습을 하길 잘했던가. 서럽게 울먹이면서도 나는 허공을 향해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달고 큰 소리로 외쳐댔다. 한번 뒤를 돌아보았을까. 그 젊은 남자가 차 시동을 켰고 노란색 불빛의 헤트 라이트가 켜졌다. 세상에. 영화광인 내가 늘 영화에서 보던 그 쫄깃한 장면을 내가 연출하게 될 줄이야. 걸음아 날 살려라 뛰며 소리치는 나를 향해 그 힘찬 무쏘가 불빛을 뿜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대체 어쩌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뛰면서도 나는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오늘은 결코 죽을 수 없다고 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하며 뛰고 또 뛰었다.


모든 곳이 어두웠지만 내 눈앞에 세워져 있는 트럭이 한대 보였다. 열심히 그쪽을 향해 소리를 쳤지만 맘속에서 과연 저기 있는 사람들도 무서운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죽음의 공포. 그쪽에서 내 소리를 들었는지 젊은 남자 둘이 내게로 달려왔다. 나는 또 겁이 덜컥 났다. 그들을 보자마자 내가 한 말은 '나쁜 사람은 아니죠?'였던 것 같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무섭게 느껴진 날이었기 때문이다.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자 달려오던 무쏘는 이내 다리 위로 올려가 자취를 감췄다. 오열하는 내게 그 사람들은 쉽사리 말을 건네지 못했다. 가뜩이나 울보인 나는 대체 강물처럼 쉬지 않고 나오는 눈물을 멈출 길이 없었다. 울먹이면서도 그들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그들은 남녀 커플끼리 다리 밑에 와서 고기를 구워 먹던 사람들이란 걸 알았다. 일행인 여자를 보고 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차로 나를 시내까지 데려다주면서 어찌 그리 겁 없이 남의 차를 탔느냐고 말하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계속 울먹이고 있었던 나는 그들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나를 내려주고 가는 순간까지도 연락처 하나를 물어볼 생각도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그들은 내 생명의 은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집에 와서도 밤새 울먹이며 잠들지 못했던 내게 이미 그들은 잊힌 사람들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공포스러운 곳인가를 깨닫는 동시에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한꺼번에 깨달은 날이었다. 여름이 오기 전 그 축축했던 초저녁 밤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살다가 어떤 경험을 하고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때가 있다. 바로 저 날이 나에게 그러한 날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알았고 내 생각처럼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영화에서나 보던 구원자가 하느님의 모습이나 대단한 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를 구원해준 건 그저 평범한 인간, 내 주위에 있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나를 구해준 그들에게 이제서야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방학이 되고 어느 날, 나는 길에서 그 무쏘를 운전하고 있는 젊은 남자를 보았다. 그날처럼 똑같이 신호대기를 하고 서있었던 차속에서, 그 어둠 속에서 봤던 그 남자가 있었다. 나는 차 번호판을 외웠고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경찰과의 만남이 있던 날. 난 다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을 찾아냈지만 내가 고소를 하지 않는 이상 그를 처벌할 방법은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내 마음의 우물처럼 깊게 패인 상처 말고는 경찰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시뻘건 살갗의 상처 따위는 내게 없었다. 그는 나를 차에 태웠고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은 것 외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무서워서 고소하기를 포기했다. 그건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동네 지척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더욱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같이 꽃 같고 어린 다른 여자 아이에게 똑같은 만행을 저지를 수도 있는 그 젊은 남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내가 한없이 여리고 어리숙하기만 했던 꽃다운 17살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속엔 그저 무쏘여 잘 있거라, 이 한마디만이 오랜 기간 맴돌고 맴돌았다.



*대문사진(크리에이터 정리미:노랑머리 소녀 옆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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