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하고 부르면, 응하고 답하던
사 남매 둘째 딸
어릴 적 식탐이 많았던 둘째 딸에 대해 엄마가 늘 빼먹지 않는 얘기가 있다. 머리를 묶어주면 언니와 다르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사자머리가 되는 딸. 콧물은 코에 가득 고여 있어 콧구멍 끝에서 날름거리는, 볼이 빨갛고 오동통한 우리 집 둘째 딸이라고. 태어나서 그리 예뻤다며 어릴 적 사진을 볼 때마다 엄마는 자랑하듯 이야기하곤 했었다. 둘째 딸은 돈복 하나는 타고났다며 떵떵거리며 잘 산다고 했더란다. 엄마의 젊은 시절부터 점집을 드나들며 들은 이 말은 우리 집 전설이 되었다.
동생은 새우튀김을 해놓으면 손에 한 움큼 집어가 숨겨놓았다. 혼자 배가 터지도록 야금야금 먹어댔던 동생을 우리 집에서는 늘 돼지라고 불렀다. 어디선가 누가 돼지 하고 부르면, 으레 둘째가 응하고 대답을 했다. 어릴 때는 진짜 살이 꽤 오르고 볼이 빨개서 돼지라는 별명이 잘 어울렸다. 커가면서 볼의 홍조도 사라지고 결혼하고 나선 살이 쪽 빠져버린 아리따운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얘는 우리 집에서 돼지다. 여전히 돼지하고 부르면 주저 없이 응. 나?, 라며 대답을 한다.
결혼을 해서 독립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우리 사 남매를 빼고 인생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동생들과 나는 각별하다. 특히 나와 두 살 차이로 항상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돼지를 나는 동생들 중에도 가장 사랑했다. 어릴 적이야 우리 사 남매는 늘 싸우는 게 일이었다. 젖가슴이 봉긋해지고 서로 키가 비슷비슷해질 무렵, 세 자매는 아침에 누가 먼저 맘에 드는 옷을 쟁취하느냐로 언성을 높이곤 했었다. 내가 찜한 옷을 입고 갔다며 아침에 씩씩 성질을 내다가도 금세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저녁나절이면 깔깔거리며 웃어대기도 했다.
서로 맞지 않았던 부모는 종종 큰소리를 내며 싸웠다. 부모가 싸운 날이면 좁디좁은 싱글 침대에 누워 두 자매는 함께 세상사를 한탄하곤 했었다. 나는 늘 부모 원망을 하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화를 내는 쪽이었다.
우리 집 돼지는 별말 없이 내 얘기를 들어주고 괜찮을 거라며 내게 위로를 건넸다. 그러다 내 불평불만에 지루해질 때쯤 스르르 잠이 들어버리곤 했다. 정이 많고 긍정적이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싹싹한 우리 돼지. 어린 시절 엄마가 아빠와 대대적으로 싸우곤 집을 나가 몇 날 며칠이고 안 들어온 때가 있었다. 동생은 우리의 세모집 앞 은행나무 가로수 앞에서 나무를 부여잡고 빙빙 돌며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울고 울었다. 돼지처럼 나대던 먹성도 잦아들어 그 오동동 하던 볼살도 빠지는 듯하였다. 그때의 나는 또 어디선가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처녀 가장으로 살 때도 돼지는 또 다른 처녀 가장으로 집안 대소사에 빠지지 않고 자기가 벌은 돈을 턱턱 내놓았다. 언니가 에어컨을 사놓으면 동생은 냉장고를 들였고 언니가 또 셋째 대학 등록금을 내놓으면 엄마 아빠 옷이라도 한벌씩 사다 드리는 동생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꽃같이 꾸미고 싶을 시절, 두 자매는 필요할 때마다 자신보단 집을 위해 살아가던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어릴 적이야 악다구니를 쓰고 머리채도 잡고 싸웠지만 성인이 되고선 잘 싸울 기회가 없었다. 더욱이 각자 결혼을 하고선 더 그럴 일은 없었는데 며칠 전 우리 집 돼지와 언성을 크게 높이며 싸우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돼지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내가 먼저 불같이 화를 내도 늘 별말 안 하던 애였다. 그날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내게 화를 내었다. 동생의 모습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고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동생이 화가 난 이유를 듣고 나선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다.
돼지는 19살에 연애를 시작하고 8년간 연애를 한 후에 약혼식까지 야무지게 올리고 결혼식을 올렸다. 제부는 동생보다 한 살이 어렸고 얼굴도 잘 생기고 우리 집 식구들과도 기나긴 연애기간 꽤 잘 지냈었다. 나도 불같은 성격에 그도 그래서 몇 번 크게 싸운 적은 있었으나 8년이라는 시간을 우리 가족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맞춰지고 있었다.
그런 동생이 결혼 13년 만에 종지부를 찍고 제부와 별거에 들어간 지 벌써 몇 해째이다. 이미 이혼을 한 거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 집이 대대적인 콩가루 집안에 무당 엄마가 있어서 결혼에서도 문제가 있었으나 제부의 강력한 의지로 둘은 결국 결혼했다. 그렇게 힘들고 뻑적지근하게 화려함을 자랑하며 결혼하더니 13년이나 살고 못 살겠다는 소리에 우리 가족은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역시 사람 일은 모를 일이고 부부의 속내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우리 집은 가세가 기울고 엄마는 무당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는 사돈댁이긴 해도 어떤 때는 우회적으로, 어느 날은 노골적으로 우리 집을 무시했다. 그들이 그런 걸 알기나 하는 인간성을 지녔는지도 의심스럽지만 돈만 있지 정이라곤 없는 집안이었다. 내 동생은 13년을 며느리 노릇을 하며 잘 사는 듯하였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부부간에 금이 가는 것은 한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기에 우리 가족은 동생의 이혼에 일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선택을 존중해주고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혼자여서 자기는 더 좋다며, 명절에 시댁 눈치 볼 것 없다는 동생의 말에 이혼이 밥 먹듯 이뤄지는 요즘 세상에 까짓것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혼이란 것이 어찌 그린 간단한 일인가. 겉에서 보면 다 잘 사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 곪아 터져 있는 경우가 있다. 이혼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 늘 괜찮다고만 하던, 긍정적으로 말하던 동생은 늘 피곤에 절어 있었다. 부잣집에 시집갔다고 속물근성이 흐르는 우리 엄마의 늘 자랑거리였던 동생이 이젠 제일로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나보다 먼저 화려함에 화려함을 더해 시집가는 동생을 보며 사촌이 땅을 산거처럼 배가 아팠던 노처녀 시절이 있었다. 많이 축하해주고 진심으로 기뻤지만 동생을 먼저 보내며 변변한 남자 친구 하나 없고 직업도 그저 그런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고 느껴졌었다.
지금의 나는 부자도 아니고 때론 삶이 힘겹고 살다가 어떤 날 잠시 잠깐만 한없이 행복하다 느끼며 살고 있다. 돼지는 아마 내가 노처녀 시절 느꼈던 그 열등감과 부러움을 안고 살고 있었던 듯했다. 내가 결혼하는 동생을 보며 느꼈었던 그 날것의 감정. 그리고 반대가 돼버린 지금. 그날의 싸움은 이것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게 솔직하지 못한 동생 때문에 정말 화가 많이 났다. 내게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말해줬더라면 지금의 상황이 배 아프고 힘겹고 땅으로 꺼질 만큼 그렇게 힘들었다고 힘겨운 목소리로 한 번만이라도 말해줬더라면 난 결코 그것을 잊지 않고 순간순간 동생을 배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생 말만 듣고 괜찮을 거라고 착각한 내가 너무 싫었다. 혼자 견뎌온 동생의 아픔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서른에 겪었던 그 시기 어림과 질투, 부러움이 다시 살아났다. 모든 것이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내가 떠올랐다. 돼지가 꼭 그렇게 아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이지 꽤 오랜 시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힘겨웠던 나의 삼십 대를 동생은 많이 배려하고 챙겨주었을 것이다. 우리 돼지는 그렇게 맘이 깊은 아이였고 지금도 그렇다. 내게 자존심이 상해 말하지 못했다던 절망과 힘듦을 이젠 언니인 내가 감싸주고 보듬어줄 때이다. 나는 복잡한 가정사 속에서 별 탈 없이 지내준 동생들을 늘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였다. 우리 부모가 젊은 날 철없는 방황을 할 때마다 어쭙잖게 내가 휘두르는 빗자루에 작은 손바닥과 머리통을 내주던 나의 동생들. 그중 원망스러운 부모 때문에 힘겨워하던 나를 제일 많이 잡아준 나의 동생, 우리 돼지. 이젠 내가 동생에게 내어줄 차례이다. 그렇게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인생의 굴곡은 누구에게나 공평한지 모르겠다. 아직 마흔 하고 여섯 해밖에 살아내지 못했지만 절망적인 바닥도, 하늘을 날 것 같은 행복감도 다 누려봤으니 말이다. 내게 힘겹게 손 내밀어준 나의 돼지, 작은 손을 꼭 잡아본다. 네가 과거의 내가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 같을 때 내밀어준 작지만 따뜻한 손에 이젠 내가 보답할 때이다. 네가 늘 행복하길 바라지 않는다. 웃을 땐 한껏 웃고 힘들 땐 한없이 힘겨워했으면 좋겠다. 늘 괜찮다고만 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허락을 받긴 했지만 너의 이야기를 나의 마음대로 썼기에 미안함을 전한다. 너를 깊게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영원히 변함이 없다. 언니가 돼지 하고 부르면 늘 응하고 답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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