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를 찾아서

거제. 통영 생활밀착형 여행기

by 주부맥가이버

살면서 찢어지는 상처를 갖게 될 확률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모든 게 다 있다는 서울 하늘 아래서도 외과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에서처럼 통영과 거제를 여행하며 외과를 찾아서 헤맸던 기억이 이따금씩 떠오른다.


17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진짜 2박 3일조차 자리를 비우기 힘든 그런 자리에 있었다.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해외여행은커녕 국내로 다니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7년 5월에 3박 4일로 거제와 통영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가본 남쪽 나라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서울에서 떠나오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감정이 올라오는 따뜻한 5월의 장소였다.


하지만 여행을 가기 전 나는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집을 옮기기 위해서 잠시 살았던 오피스텔에서 이삿짐을 빼며 정말 놀랐는데, 처음에 한 달만 살자며 소박하게 챙겨간 짐이 넉 달간 번식능력이 있었던 건지 그 좁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세간살이에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었다. 우리의 승용차로 짐을 서너 번 옮긴 후에야 짐을 다 뺄 수 있었다. 금요일에 퇴근 후 오피스텔의 작은 이사를 하고 토요일에 본격적인 이사에 돌입했다. 넉 달이나 컨테이너에 머물렀던 우리의 짐들이 새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매일 출근을 하고 밤이면 갈 곳을 잃은 짐들을 제자리에 찾아 넣기 바빴다. 그리 몸을 혹사해서인가. 이사한 때부터 시작한 기침이 밤새 잦아들지 않은 채 한 달을 보내고 나서 난 기어이 입원을 하게 되었다. 기침약을 잘 챙겨 먹었는데도 밤새 멈추지 않았던 기침이 결국은 폐렴이 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독감까지 내게 찾아온 것이었다.

3박 4일을 입원하고 퇴원해서는 한 달 전에 벼르고 별러서 잡아둔 남쪽 나라로의 여행이 생각났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거제, 통영으로의 여행이었다. 남편은 콧바람이 절로 날만큼 그 여행에 대해 신나 있었는데 퇴원을 하며 담당의에게 물어보니 여행은 하지 말고 집에서 쉬기를 권고하였다. 그 얘기를 전하자 화를 좀처럼 내지 않던 남편이 불같이 화를 내었다. 아픈 몸을 쉬라는데 여행을 못 가서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는 남편을 결코 이해할 수 없어서 나도 큰 소리를 냈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줄까 싶어 항생제가 들어가 있는 두툼한 약봉지를 고이 챙겨 여행길에 나섰다.


서울에서 서너 시간을 달리면 모든 곳이 평화로운 곳이 나온다. 서울은 어딜 가도 사람이 많고 차가 많고 건물이 많은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런 것들의 존재는 드문드문 머물러 있다. 마음에도 곳곳에 숨구멍이 생긴 듯 여유가 밀려온다. 그러나 일을 한다고 신경 쓰지 못해 미리 예약해두지 못한 숙소가 맘에 걸렸다. 3박 4일 중에 오로지 하루만 풀빌라에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연휴라고 세상에 풀빌라 1박에 거금 50만 원이란다. 따뜻한 물까지 받으면 10만 원 추가. 설마 우리 몸 뉘일 곳 없을까 싶어 신나게 달려 남해에 먼저 도착했다. 숙소도 잡지 못하고 남해에 있는 어느 해수욕장에 짐을 대충 풀고 발을 담갔다. 생각보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아니어서 실망스러웠지만 따스한 바람과 얕은 바다는 내게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바닷가 근처 민박집에 방을 잡고 우리는 맘껏 남쪽 나라의 바다를 만끽하였다.

둘째 날은 통영으로 건너가 케이블카에 몸을 실을 차례였다. 연휴에 따스한 5월 햇살 아래 실로 인파는 대단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줄은 바깥쪽 차들이 세워진 도로가까지 이어져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을 놓칠 순 없다는 다짐 하에 우리는 기나긴 행렬에 몸을 끼워 넣었다. 그 줄이 짧아져 거의 케이블카에 몸을 실을 수 있을 때쯤이었다. 큰 애가 7살 때였다. 지루한 기다림에 끝에 한 손에 몽쉘통통 초콜릿 과자를 쥐어주었는데 언덕배기를 오르내리며 놀던 큰 애가 그만 넘어져버린 것이다. 넘어지고 까지는 것이야 까지 꺼 어린아이의 산물이라지만 문제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몽쉘통통을 지키고자 바닥에 그만 손이 아니라 턱을 짚어버린 것이었다. 턱에서 선홍색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까지고 긁히는 것이야 별것 아니지만 툭 터져버린 턱 끝이 이내 나의 맘도 쓰라리게 만들었다. 우리와 같이 간 친구가 간호사였다. 사형제를 키우는 그 엄마는 피만 보면 얼굴이 새파래지는 나와는 달리 몇 바늘 꿰매는 것쯤이야 놀랄 일도 아닌 세상 대범한 엄마였다. 능숙한 솜씨로 직업 정신을 발휘해 대일밴드를 우리 아이 턱 끝에 붙여주곤 괜찮을 거라고 아이가 아닌 나를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대일밴드 위로 피가 흥건한 아이의 턱을 보곤 난 커다란 고민에 휩싸였다. 이따 숙소로 가서 금송아지 값만큼 큰돈을 낸 풀빌라에서 물놀이를 해야 하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아이 턱에서 툭 터져 삐져나온 노란 지방덩어리가 턱 끝에서 안녕하며 내게 인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간호사인 친구도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소리를 내뱉었다. 친구 부부를 기다리라고 하고 우린 통영 시내에서 외과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정형외과는 널리고 널렸지만 외과는 희한하게도 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통영에 처음 가서 시내를 달려보니 길이 참 미로와도 같았다. 구불구불 꺾고 또 꺾어야 다음 길이 나왔다. 시장 통이 있고 여러 가게들이 즐비한 길을 따라 달리고 달렸다. 관광지가 아니라 시내를 참 많이 달리기도 하였다. 운이 좋게도 몇십 분을 헤매다가 정형외과가 아닌 외과를 발견했다. 외과라고 쓰인 병원 간판이 어찌나 반갑고 좋았던지! 한산한 외과 접수대에서 아이 이름을 적고 이내 진료실로 들어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내 기억엔 흡사 전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인 유시민 작가를 닮은 인상이 좋은 의사 선생님이었다. 아이의 상처는 1~2센티가량으로 크지 않았지만 툭 터져버린 것이 문제였다. 부어오르면서 안에 있던 지방덩어리가 밀려 나와 있었다. 선생님께선 아이들 열에 서너 명은 그 부위의 턱이 찢어진다면서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나는 나의 아픔인양 울상을 지으며 선생님께 안 아프게 꿰매지 않고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물었다.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얇고 길쭉한 3M 의료용 테이프를 짧게 잘라 핀셋으로 아이 턱 끝의 지방덩어리를 밀어 넣으며 테이프를 세로로 붙여보았다. 아이는 핀셋으로 지방을 욱여넣을 때마다 자지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테이프는 이내 붙지 않고 떨어져 버렸다. 틀린 방법이었다. 결국은 아이를 이리 고통스럽게 한 이후에야 꿰매기로 다시 결정이 났다. 처음부터 욕심을 부린 나의 불찰이었다. 두세 바늘이면 꿰맬 수 있으니 아픈 마취주사를 놓느니 그냥 꿰매자고 하신다. 예??? 많이 놀랐지만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아이를 부여잡았다. 이보다는 더 세게 잡을 수 없을 만큼 아이 아빠와 나는 애를 부둥켜안았다. 머리는 남자 간호사가 잡았다. 내가 안은 위치에서 선생님의 손에 든 바늘이 상처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게 보인다. 아이가 워낙 저항해서 꿰매기도 전에 바늘이 빠져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하고 있었다. 진짜 애뿐만 아니라 나도 기절할 지경이었다. 겨우 두 바늘인지 세 바늘을 꿰매는데 난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남편도 다 끝나고 나서야 긴 한숨을 내뱉는다. 망할 놈의 몽쉘통통! 한동안 그 과자를 보면 이가 갈릴 것 같았다.


어쨌든 그 먼 남쪽 나라에까지 가서 평생을 한번 가보지 못한 외과를 찾아 헤매고 아이의 맨 살에 바늘이 들락거리는 걸 보았다. 흡사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멋진 관광지를 본 느낌과 매한가지였다. 우리 아이의 턱에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훈장을 새기고 온 여행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 흉터는 나에게 저 먼 남쪽의 아찔한 기억이다. 나는 그 이후로 돌아다닌 여정은 잘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방이 없어서 조명이 빨갛고 야한 여자가 벽지에 그려있는 후진 여관에서 잔 것 빼곤. 이 흐릿한 기억은 꼭 한번 다시 남쪽으로 여행을 오고 싶은 이유이자 변명이 되었다. 약봉지와 함께 입원했던 아픈 몸을 이끌고 갔던, 우리 큰 아이의 턱에 영원불멸한 흉터가 생겼던 거제와 통영의 추억이 내게는 ‘외과를 찾아서’라는 큰 명제로 떠오른다. 이 한 맺힌 여행의 끝을 거제 비 내리는 바람의 언덕에서의 포효로 나는 끝마침을 하였다. 다시 만날 날까지 안녕. 머나먼 남쪽나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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