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눈

by 주부맥가이버

나는 하늘에서 너희들을 지켜본다. 내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너희를 지켜주기 위해 항상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매번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반복한다. 그런 알량한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너희들은 나의 한숨이자 고뇌다.


물론 모든 인간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안다. 8월의 따가운 햇볕이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 한 노파가 리어카에 폐지를 산처럼 미어지게 실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켜켜이 쌓인 폐지는 좁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다 한 놈이 바닥으로 기어이 탈출했다. 횡단보도를 같이 건너던 한 여성이 뒤에서 보다 못해 그 폐지를 줍고 리어카를 밀기 시작했다. 바라보던 나의 입에 모처럼 웃음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몇몇 인간들은 운전할 때 늘 안전을 기한다. 경찰이 저만치서 딱지를 떼기 위해 잘 안 보이는 곳에 대기하거나, 과속단속장비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서두르지 않을 뿐이다. 나는 가장 어렵고도 쉬운 세상살이의 기본을 지키는 이들을 보면 가슴이 뻐근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너희들에게 쓴 소리를 안 할 수가 없어 오랜 기간 닫혀있던 나의 묵직한 입을 연다. 나의 한숨을 깊게 하는 자들이여. 이제부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다오.


나는 어제 보았다. 사실 그런 장면을 숱하게 보고 또 본다. 세상엔 꼭 지켜할 것들이 있다. 그것을 보통 진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너희는 종종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 그러니 내가 어찌 싫은 소리를 안 할 수 가 있을까.


칠흑같이 깜깜한 밤 한 대의 차가 적색 신호에 멈춰 섰다. 세상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하지만 그 뒤에 달려오는 차는 결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기어코 서있는 앞차를 세차게 들이받고 나서야 질주하던 차는 멈추었다. 정적이 깨지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세상의 안온한 평화가 순간 깨졌다. 달려오는 차의 주인은 만취상태였다. 서있던 차 속의 일가족이 그 자리에 죽었다. 나는 하늘에서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다. 붙박이 같은 나의 손을 아무리 뻗으려고 해봤자 요지부동이었다.


나의 새빨갛고 동그란 눈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차에 있던 아이는 외마디 비명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걸 지켜보는 아이의 부모는 119가 달려오기도 전에 숨이 끊겼다. 자신의 아이가 죽은 모습을 마지막 눈에 담고 죽어간 그들의 마음을 어떤 이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 차를 들이받은 개새끼는 에어백이 터져서 살아남았다. 고작 타박상을 입은 주제에 아파죽겠다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 놈의 아가리를 찢어발겨야했거늘. 이런 새끼에겐 ‘개’라는 말도 아깝다. 개가 무슨 죄가 있더냐?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호래자식에겐 개라는 단어조차 가당치않다. 대체 무슨 쌍욕을 써서 그 놈을 욕보일까? 씨팔놈이라고 하면 분이 좀 풀릴까? 씹새끼라고 하면 열불이 안 날까? 세상의 어떤 욕을 갖다 붙여도 그 놈에게 마땅한 욕이 없다는 게 한탄스러울 뿐이다.


트럭과 버스는 핵폭탄만큼 무서운 존재다. 커다란 몸집을 흔들며 거리를 질주한다. 냅다 속력을 낸 버스가 손 쓸 새도 없이 바로 앞 승용차에 올라탄다. 무게가 1톤이 넘고 네 사람이 너끈히 타고도 남을 차는 장난감처럼 힘없이 찌그러진다. 마치 자신이 본래 휴지조각이었던 것처럼 아주 납작하고 처참하게. 사고 장면이 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다. 그 사고를 보기 전까지 나는 많은 이를 실어 나르는 공익의 버스가 이런 일을 저지르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버스 운전자는 졸음운전을 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운전자의 사정을 봐주기 전에 난 이미 그를 욕하고 있었다. 염병할. 오사랄.


그런 일을 볼 때마다 나는 악몽을 꾼다. 평화로이 녹색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녀를 치어죽인 육시랄 놈이 내 꿈에 나와 나를 비웃는다. 네가 있어도 나는 달릴 것이라고. 한쪽 입 꼬리를 추켜올리며 소름끼치는 웃음을 건넨다.


나는 꿈에서도 피눈물을 쏟는다. 내가 악몽을 꾸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백만 번 천만 번 꾼다한들 꿈인데 어떠랴. 다만 비명횡사하는 수많은 인간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내 마음은 시시때때로 무너지고 주저앉는다.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아빠의 지친 퇴근길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그의 든든한 어깨를 다시 내줄 수 없다는 것이, 부모에게 웃는 아이의 미소를 영원히 건넬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는다.


너희는 왜 모르느냐? 고작 일백년의 삶이 그리 길 줄 알더냐? 한번 살고 두 번 살 줄 아느냔 말이다. 지켜라, 인간들아. 너희들이 앗아간 소중한 이의 목숨과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도 않는 게냐? 2초만 아니 1초만 멈춰서 생각해라. 빨리 간다고 인생이 더 화려한 것도 멋진 것도 아닌데 너희는 왜 늘 바삐 사느냐? 대체 어떤 욕지거리를 뱉어내야 터질 것 같은 나의 한스러움을 풀어낸단 말이냐.


나에겐 세 개의 눈이 있다. 빨강, 주황, 초록. 나는 시종일관 너희를 지켜보며 내 눈알을 요리조리 굴린다. 늘 최선을 다하며 모두의 안전을 기원한다. 맑은, 때론 비바람이 치는 하늘에 둥둥 떠서 너희를 바라보는 일은 나의 숙명이자 의무이고 권리이다. 내 온 몸의 빛을 발산하고 뿜어내어 인간들을 보호하는 일은 때론 숭고하기까지 하다. 제발 내 혼신의 몸부림을 욕보이지 말아다오. 빨간 눈의 피눈물보다 초록 눈의 온화함을 세상에 흩뿌리고 싶다.


인간들아, 동심으로 돌아가라. 길을 건널 때 똘망똘망한 눈으로 운전자를 바라보며 손을 치켜드는 아이들이 되어봐라. 풀잎 같은 초록불이 들어왔을 때만 움직이려는 어린이들의 순수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회귀하라. 그것이 세상의 기본이고 진리이고 사랑이다. 나의 입에서 더럽고 군내 나는 욕지거리보다 가슴이 절절하게 끓어오를 태양 같은 메아리가 나오도록 해다오. 제발, 들어라. 나는 오늘도 여기서 내 몸을 불사르며 너희에게 갈 테니. 인간들이여, 내게 깊은 산속의 계곡물처럼 차고 맑게 오라.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신호등이 깨운 소리에 놀라 그제야 보행자 신호를 보았다. 10이라는 숫자가 순간에도 1초씩 사라지고 있었다, 구, 팔, 칠, 육.......

횡단보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경적이 울렸다. 이미 붉어진 보행자 신호를 다시 기다려야 했다.

며칠 전 기사로 보았던 음주운전자가 온 가족을 몰살시킨 사건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과연 분노하고 슬퍼할 자격이 있는가. 다시 하늘위에 외롭게 떠있는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나는 무엇을 들은 것일까.



* 대문사진 © alexmachad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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