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사주팔자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흔히 사주 보는 일을 무당이 하는 일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무당도 사주팔자 해석을 위한 공부를 해야만 제대로 사주풀이를 할 수 있다. 우리 엄마가 무당이고, 엄마도 여러 선생님을 찾아 오랜 시간 공부를 해왔기에 손님이 오면 사주풀이와 무속의 영점을 결합해서 상담을 해준다.
주역이란 학문이 오랫동안 존재해왔고 이 공부의 끝은 실로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주풀이는 미신이 아니라 통계로 인한 축적의 결과다. 한때 사주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고미숙 선생님의 사주 강의는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 자신만의 고유한 여덟 글자를 갖는다. 그것이 사주팔자이다. 목木, 화化, 토土, 금金, 수水. 다섯 글자가 가진 고유성질의 조합으로 우리의 본성이 탄생한다. 사주팔자 여덟 개의 글자가 자신의 성질대로 상생, 상극하며 하나의 우주를 그린다. 한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이다.
예를 들어 내 사주팔자엔 경금이 두 개다. 쇳덩어리 중에도 아주 강하고 커다랗다. 물은 철철 흘러넘치고 차가워 팡팡 얼어있는 형국이다. 과한 물은 쓸데없거나 칼날 같은 말발로 타인에게 휘둘려진다. 하필 격하게 극하는 자리가 남편 자리이다. 불로 제련이 필요한 나의 쇳덩어리는 기능을 상실하고 차가운 물속에 침잠해있다. 내게 있는 불은 훅 불면 꺼질 촛불처럼 가녀리고 아주 약하다. 얼어붙은 쇳덩어리를 녹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사주풀이를 해준 선생님이 불운한 팔자라며 애석해하셨다. 하지만 난 그분의 해석으로 삶의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내게 닥치는 불운한 일들은 결코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갖지 못한 결핍에서 오는 결과였을 뿐. 잘못이 있다면 내가 부족한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것쯤일 테다.
사주풀이 후 나는 내게 흘러넘치는 것이 무엇이고, 부족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뻗치는 기운을 누르고, 불같이 뜨뜻한 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깨쳤다. 이것은 인생을 살아나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 된다. 심리학을 배우며 상담을 받은 것도 나 자신을 향한 여행이었다. 이것은 사주풀이를 해서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과 결을 같이 한다. 내면으로의 값진 여행을 쌍두마차를 타며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당 엄마는 내게 적극적으로 사주 공부를 할 것을 권했다. 실로 초보들에게 사주 공부는 아주 매력적이다.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그것을 알 때마다 무릎을 치며 감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즐거움은 딱 거기까지다.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어렵고 혼란스럽게 된다. 이제 자신에게서 타인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쓸데없이 피곤해지는 경지에 다다른다. 사주풀이를 자꾸 하고 싶어 지며, 심지어 자신과 잘 맞거나 혹은 맞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게 된다. 사주팔자로 사람을 단정 지으려 한다. 사주 공부의 부작용쯤으로 볼 수 있겠다. 나도 사주 공부가 어려워지고 다른 이에 대한 판단이 앞서게 될까 두려워 공부를 접었다.
심리학에서 시작된 상담과 사주풀이로 하는 상담은 어찌 보면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두 가지의 공통점은 우선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여러 검사를 통해 자신의 기호와 성격을 파악하고, 상담자는 이를 통합하고 분석해서 상담받는 이에게 전달해준다. 사주풀이도 거기까지는 똑같은 과정이다. 다만 심리학에서의 상담은 그 결과를 가지고 함께 심리 상담을 이어간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주풀이를 권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본성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가진 본성은 바위로 계란 치기처럼 변화시키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 가야 할 친구일지도 모른다. 변화라기보다는 순간의 깨어있음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고미숙 선생님과 사주 공부를 하며 깨달은 점은 딱 하나이다. 사주를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점은 사실 어떤 것도 없다. 결론은 자신이 갖고 있는 넘치게 많은 자원을 덜어내고 부족한 것들은 채워 넣으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가진 본성을 어떻게 하면 제 기능에 맞게 세상에서 써낼 수 있는가를 배웠다.
행운과 불운은 동전의 양면처럼 삶에 들락거린다. 아무리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처럼, 불행한 사람도 영원히 그렇지 않다. 운이 좋다는 사람은 하나만큼 일해도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결과물을 얻는다. 반면 불운한 사람은 열 가지 일을 해도 결과는 한 개 혹은 두 개일뿐인 경우가 많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많은 힘과 노력을 들이게 되니 인생이 고달플 수밖에 없다. 운이 좋으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스스로 떠나게 돼 있지만 재수가 없으면 그런 사람이 여럿 달라붙어 나를 괴롭히게 된다. 아쉽지만 내가 가진 팔자가 그려내는 인생살이다.
그러나 불운한 사람에게도 분명 기회는 온다. 세월의 기운이 항상 내리막이거나 오르막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내리막일 땐 바짝 몸을 움츠리고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며 때를 기다린다. 언젠가 다가올 오르막을 위해 칼을 갈고 마음을 수련한다. 그러다보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기운이 솟아오른다.
사주의 대운은 대게 10년 단위로 변한다. 마흔 살부터 나에게 커다란 불덩이의 대운이 다가왔다. 내가 가진 쇳덩이를 제련할 수 있는 절호가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글쓰기라는 파도에 내 몸을 과감히 실었다. 언제 흔들리는 파도가 나를 떨굴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쇳덩이를 달구어 글을 써내는 펜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덧, 어설픈 사주풀이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어긋한 방향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꼭 명망 있는 철학관에 가기를 추천한다. 또한 어떠한 사주풀이의 결과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배포를 가진 이만이 사주풀이를 해볼 자격을 가진다. 무엇이 안 좋다고 듣게 되면, 나는 왜 이럴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 지예작가의 권유에 의해 쓰여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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