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수없는 만취의 계절을 보내버린 지금의 나는 결코 만취하는 일이 없다. 그때의 나를 돌이켜 생각하면 참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아직도 만취를 즐기는 사람 한 명이 우리 집에 현재 살고 있으니... 나와 대학 합격 후에 함께 손잡고 개가 되었던 친구 중에 한 명이다. 우리의 이십 대는 서로 이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조금도 가깝지 않았다. 너도 개가 되고 나도 개가 되었던 그날, 각자의 집으로 누군가에 의해 끌려들어 갔겠지. 그럴 땐 누가 얼마나 취했는가는 내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손잡고 취했던 그 친구가 우리 집에서 함께 거주하고 있는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개똥이 남편과 대학 합격 후에 정말 세트로 술에 취해 거리를 헤맨 적이 많았다. 같은 고향 친구인 우리는 누가 누가 잘 취하나 경쟁하기라도 하는 듯 못 마시는 쓰디쓴 술을 물처럼 들이켰었다. 그때는 결코 몰랐다. 우리 둘이 같은 집에 살게 될 줄은. 나는 점점 술을 줄여갔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서른다섯 살에 그와 잘해보려고 맘을 먹었을 때만 해도 술을 사랑하는 그와의 삶이 이렇게 펼쳐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처음 그에게 수작을 걸 때였다. 우린 역삼역 넓디넓은 차도를 사이에 두고 직장엘 다녔다. 퇴근 후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그가 있었다. 저녁을 먹자는 빌미로 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친구에서 남자로 바라보기 시작한 그는 흥미로웠다. 그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신선한 느낌마저 들었다. 꽤 큰 회사에 다닌다던 그가 내심 탐이 났었다. 서울 하늘 아래 취업 후 자그마치 십 년이란 세월 동안 남자를 찾아 헤맸건만 걸려드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어찌나 별로였던지. 대머리 거나, 정말 심하게 재미가 없거나, 아님 너무 똑 부러지게 내 연봉 따위를 물어오곤 했었다. 그런 생판 모르는 이상한 남정네들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난 그가 백배 천배는 더 편하고 좋았다. 하지만 그의 문제는 술을 너무 좋아하지만 정말 술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남녀가 친해지려면 물리적/심리적 진도를 동시에 빼야 하건만, 나랑 같은 템포로 술을 먹기 시작해도 이내 방금 떡시루에서 꺼낸 시루떡처럼 허리를 꺾으며 늘어져버리는 그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심하게 전의를 상실하고 종국에는 그와 가까워지기를 포기하게 되었다.
몇 개월을 보내고 결국은 그와 나는 다시 만났다. 중고차이긴 했지만 첫 차를 뽑은 그를 그냥 집에 내버려 둘 순 없었다. 해산물이 먹고 싶다는 그와 인천으로 갔다. 친히 술을 잡숫게 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리기사를 자처하였다. 그 대리기사 한 번에 나는 그에게 ‘잘해봅시다’라는 고백을 뽑아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연인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5개월을 뜨겁게 연애하고 첫애를 가지며 우리는 부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는 일은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술자리를 즐겼고 맛있는 안주를 먹으면 행복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술 한 잔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일을 난 그 어떤 일보다도 사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술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었다. 템포를 조절 못하고 꼬꾸라지기 일쑤인 그를 연애할 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학동창들과 만나 함께 술자리를 하다 맥을 못 출 때도 애써 웃음 지으며 폴더처럼 구겨진 그를 택시에 태워 집으로 끌고 온 나였다. 하지만 결혼은 생활이었고 현실이었다. 그런 그의 술주정은 점점 나를 사지로 몰고 가고 있었다.
이렇게 세차게 개똥이 남편을 돌려 깎기로 결심한 것은 그간 쌓인 나의 깊은 ‘한’ 때문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그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 우리 집은 엘사가 울부짖는 겨울왕국이 되었다. 정녕 내 입에선 독기 어린 얼음 조각들이 튀어나왔다. 그에게 따발총으로 공격을 했지만 이미 그는 물먹은 시루떡이었다. 공격해봤자 아무런 대응조차 없는 늘어진 시루떡... 늘 화를 내다가 쓰러져 잠든 그를 보고 혼자 내 얼음을 눈물로 녹여냈다. 그러길 벌써 11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우리 개똥이 남편은 그의 최대 장점인 일관성을 살려 아직 쭉 그대로이다. 사람이 어찌 이리도 일관되는지 나는 두 손 두 발을 들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 그에게 개똥이 남편이란 작위를 내린 명백한 이유가 있다. 어쩌면 이리 집안 모든 대소사에서 비껴갈 수 있는지 놀라워 그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내가 붙이기만 했지 이 작위는 하늘이 내린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늘이 돕지 않고서야 회사일과 그만의 개인사로 집안일을 비껴가는 그의 스케줄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몇 주 전 그는 KTX를 타고 멀기도 먼 거제 출장을 다녀왔다. 서울역에 도착해선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학교 후배와 너무 반가워 술 한잔을 하고 온다기에 그러라고 하였다. 이미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어서 걱정이 되었지만 코로나로 통 외출을 못했기에 못 미더워도 그러라 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택시가 안 잡힌다며 전화한 그는 꽤 멀쩡한 상태처럼 보였다. 대구 출장길을 여러 번 다녀서 서울역을 경험해본 나로서는 그 시간에 거기서 택시잡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택시를 잡겠다며 큰소리쳤지만, 실로 그 시각에 서울역에 택시는 씨가 말라있을게 분명했다. 큰애는 깨있었고 작은애가 잠들어있어서 그를 데리러 가기로 결심했다. 딱 거기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세차게 액셀을 밟았다. 늦은 시각이라 길에 차들이 없어 20여분 만에 서울역에 도착했건만 그는 거기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기다리지도 못하고 움직인 것 때문에 이미 열이 오르기 시작했지만 더 기가 차는 건 술이 취해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거기까지 가서 그를 안 데려올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고막이 터져라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어디 있느냐고. 시루떡처럼 늘어져있음에 틀림없었다. 젠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제발 설명해보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이미 서울역 주변을 서너 바퀴 돌고 있었다. 호텔이 보인다고 했다가(하지만 호텔 이름은 모르고...), 기업은행이 보인다고도 했다. 대체 어느 지점인지 내가 알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텐데. 그 자그마한 글씨를 시루떡이 알아볼 린 없겠지. 너무 답답해 고성을 지르다가 다시 이보단 나긋나긋할 수 없게 그에게 묻는다. 이를 지그시 깨물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거기 어디냐고! 이번에 나온 대답은 스타벅스였다. 제법 큰 단서였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스타벅스를 쳐보았다. 서울역 근처에 스타벅스가 10개 나온다. 털썩 이었다.
나는 그 깊고도 슬픈 밤에 서울역에서 한 시간을 넘게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역주행을 한 것 같기도 했다. 나중에 교통 범칙금이 날아오겠지. 길거리 가게 문은 닫히고 칠흑같이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화가 나서 눈앞에 뵈는 것이 없다는 표현이 맞았을 것이다. 큰 아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전화가 왔다. 왜 안 오느냐고. 아빠를 못 만났고, 이 엄마는 너무 화가 나서 그냥 집에 가버린다고 소리를 쳤더니 큰 애가 울먹인다. 아빠를 데려오란다. 하아... 같은 김 씨 아니랄까 봐. 그래, 다시 한번 단서를 조합해보자. 스타벅스, 숭례문 버스역 나왔고, KT플라자, 기업은행...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듯하기도 하였다. 결국 내비게이션에서 스타벅스를 찾아 하나하나 확대해보기 시작했다. 옆에 기업은행이 있고 KT플라자가 있는... 그러다 무신 로또가 맞은 거 마냥 나는 그곳을 찾아버린 것이 아닌가. 멀지 않은 곳, 버스 정류장 의자에 폴더처럼 접힌 시루떡 하나가 걸쳐있었다. 입에서 쌍욕이 나왔지만 지금은 참기로 하고 늘어진 시루떡을 보조석에 뫼셨다. 오늘은 이걸로 된 거다. 더 이상은 욕심이다. 우선 시루떡을 찾았으니 다른 일은 생각하지 말자고.
집에 돌아온 시루떡은 다음 날이면 사람으로 환생한다. 며칠간은 나에게 석고대죄를 하듯 조용한 행보를 이어간다. 그러면 어김없이 며칠 후면 나는 그를 용서한다. 아니 내 슬픔을, 내 한을 웃음으로 유쾌함으로 승화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어찌 살까. 결혼을 물리고 싶은 적도 많았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몇 번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시루떡이 된 그를 기다리던 밤. 어떤 날은 집 근처 가게 앞에서 신발 한 짝을 다소곳이 벗어놓고 앉아있던 그이의 목 뒷덜미를 잡아끌고 온 적도 있고(정말 그 신발로 등짝을 한 대 내려치고 싶었지만 참았고...) 어찌어찌 집에 들어왔는데 밤새 거실에서 꼬랑내가 진동을 해서 진원지를 찾아보니 그이의 신발 뒤축에 묻은 개똥 때문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개똥이 남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에게 만취의 계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에게 다리몽둥이가 똑 부러지는 큰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다음에야 그의 이런 행보는 멈추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시루떡처럼 늘어져있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놀부가 제비 다리 부러뜨리듯 똑 부러뜨리고 싶지만 그래도 내 서방이 아닌가. 그래, 내 넓디넓은 마음으로 그까짓 거 조금만 더 이해해보자. 그가 되어봐야 시루떡밖에 더 되겠느냔 말이다. 제발 큰 탈 없이 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종교도 없는 나는 하느님, 부처님께 빌고 또 빌어본다.
날이 풀리고, 해가 길어졌다. 다시, 만취의 계절이다. 이제 너는 마시고 나는 헤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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