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합격하고 청주로 떠나기 전 몇 달. 흔들어놓은 콜라병을 따면 뻥하고 터지듯 술로 그동안의 개고생을 날려버리며 가슴속의 답답함과 통쾌함을 쏟아내었다. 언제 술을 배운 적이 있어야 제대로 마실 텐데 우리들은 늘 내일은 없는 것처럼 그놈의 술을 부어라 마셔라 했었다. 집을 떠나가게 된 낯선 도시 청주에서의 처음은 참 외롭고 무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지 못한 나는 백여 명이 넘는 과동기끼리 이미 술친구가 된 다른 아이들과 달리 점심밥을 같이 먹을 친구조차 찾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철저하게 혼자였던 그 뻘쭘함에서 나를 구해준 건 중국어 교양수업에서 만난 영희였다. 강의실에서 뭔가를 묻고 답하다가 만나게 되었는데 우연치 않게도 나와 같은 과 학생이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밥친구가 되기로 했지만 문제는 이 친구가 툭하면 지각을 하거나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희는 참 술을 잘 마셨다. 웬만한 남자 애들도 걔 앞에선 맥을 못 출 정도였다. 둘이 손잡고 동아리 신입생 환영식이란 환영식엔 다 손잡고 찾아갔는데 다들 고만고만한 이십 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대선배님이신 그들이 내주는 소주 한 사발에 우린 거절도 못 하고 원샷을 연거푸 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종이컵에 담긴 말간 소주. 백학소주 1.5리터짜리를 쪼로로 세워놓고 안주라곤 일회용 접시에 담긴 양파깡, 새우깡, 감자깡 따위뿐이었다. 얼마나 그리고 수없이 만취를 했는지 나는 엄마가 구해주신 소중한 하숙집에서 6개월 만에 쫓겨나고 말았다.
지방에서 건축 현장 근무를 하는 남편이 늘 집에 없기에 대여섯 살 남매 둘을 키우고 있는 그 고운 아줌마는 하숙을 난생처음 쳐보는 것이라 했었다. 늘 나에게 새로 지은 밥을 저녁상으로 내어주고 생딸기를 갈아 주스로 후식을 내주었다. 아저씨가 오신 날 고깃집에서 외식을 하는 날에도 나를 데려가 살뜰히 고기를 먹여주던 분이었다. 그렇게 잘해주셨는데 나는 툭하면 만취상태로 늦은 시각에 하숙집에 들어가거나 심지어 버스가 끊겼다며 집에 못 가는 과동기들을 하숙방에 데려가 재우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야 6개월 만에 힘들어서 하숙을 더 이상 못 치겠다는 그 아줌마가 야속했지만 나에게 정말 정성으로 해준 분에게 꽤나 잘못했다는 생각을 한 건 아주 세월이 오래 지난 후였다.
그 이후로도 우리들의 만취는 계속 되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만 마주치면 푸르게 펼쳐진 잔디밭에, 학교 앞 선술집에 레몬소주가 끝없이 나오고 막걸리 병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쌓여갔다. 그때 왜 우리들은 그리 두서없이 취하기를 원했는지. 젊음이 알코올 인양 술 없이는 하루도 보낼 수 없을 것 같은 때였다. 그러다 학교에서 꽤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학교 안 잔디밭에서 술판을 벌인 날이었다. 늘 술을 먹다 보면 모자라기 마련이라 한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뒤에 다른 친구를 태워 술을 사러 갔다. 명백한 음주운전이었다. 하지만 무모한 이십 대들이 무엇이 무서우랴. 결국 술을 사 가지고 학교에 들어오는 길에서 커브를 돌다가 오토바이가 넘어지고 뒤에 앉은 친구가 떨어져 죽은 것이다. 운전을 한 친구도 굉장히 많이 다쳐서 꽤 오랜 기간 학교에 나오질 못했다. 한동안 슬픔은 지속되었지만 우리들의 만취는 결코 끝날 줄을 몰랐다.
대학생활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나는 종종 취했고 먹은 것을 게워냈다. 아찔한 실수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한 여자대학 동기들과 내 생일이라고 레몬소주를 레몬주스처럼 마시곤 노래방에서 그냥 뻗어버렸다. 옆방에 우리 과 동기 남학생들이 있기에 나와 같이 있던 여자 친구들은 나의 운반을 한 녀석에게 맡겨버렸다. 너와 내가 손잡고 개가 되었던 그 시절. 나를 업어준 그 녀석도 만취였거늘. 나를 업어준 것은 너무 고마웠지만 취기에 업고 가다 그만 나를 뒤로 내동댕이쳐버린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머리의 띵함이란 숙취뿐만 아니라 뒤통수에 자리한 왕만한 혹 때문이기도 했었다. 심지어 그날 새벽 자다 일어나 친구 자취방에서 일렬로 자고 있는 내 생일을 겁나게 축하해준 사랑스러운 나의 과동기들에게 토사물 세례를 해버렸다. 그 이야기는 아직도 친구들 사이에서 잊히지 않는 세상에서 젤 더러운 추억이 되었다.
서른이 넘곤 심한 숙취 때문에도 그렇고 이제 그런 만취는 내 인생에선 사라진 지 오래이다. 참으로 셀 수도 없는 만취의 계절을 보냈다. 뒤돌아보면 어찌 큰 사건 사고 없이 그 시절을 지내왔는지 내겐 늘 행운이 함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갑도 잃어버리고 엄마가 차던 고급 시계를 굳이 차고 가서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땐 왜 그리 취하는 게 좋았는지. 다른 이도 함께 취하게 만들어버리는 게 왜 그렇게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쓰디쓴 소주잔이 찡하는 소리를 내며 부딪치고 우리들의 젊음도 서로 부둥켜안으며 크게 울고 웃었던, 잊혀지지 않는 만취의 계절이었다.
<2편이 계속됩니다...>
* 대문사진© niraarin36, 출처 O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