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씨는 나와 5살 차이. 5년이란 시간은 예전 같으면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반토막이지만 요즘 같이 급변하는 시대엔 1년 만에 재개발로 한 동네가 바뀌어버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우리 여자 사람의 삶은 어떨까? 강산이 변한 만큼 여자들의 삶도 급변하고 있을까? 글쎄,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지위가 상승하는 시대에서 과연 우리 어머니보다 우린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게 맞을까?
날씨가 너무 좋아 점심시간에 서점엘 다녀왔다. 원래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1권을 사러 간 것이었는데 눈에 띄는 곳에 있지 않아 엉뚱하게 '82년생 김지영'을 사버렸다. 지인이 읽으며 아버지에게 일독을 권했더니 이래서 안된다고 했다던 책. 난 소설 인지도 몰랐고, 많은 이들에게 관심이 됐다던 책이라 길래 집어 들었다. 나와 5살 차이 동생들 이야기라지만 역시 여권 신장은 내가 태어난 5년 후에도 많이 이루어지진 않았나 보다. 나보다 동생인 주인공 '김지영'씨는 나와 정말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도 30대 중반 늦게 결혼을 하고 바로 출산을 하면서 중소기업에 워킹맘으로 7년을 일하였다. 그간 힘들었던 점을 얘기하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책의 주인공 김지영 씨만큼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워킹맘을 시작했을 때 모자라는 잠과 싸우며 너무 바쁘게 살았기에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시간은 빨리 지나갔던 것 같다. 그러나 순간순간 혼자 울었던 적도 많았고, 열 받았던 어떤 날들은 소심하게 자정이 다 된 시각 가출을 감행하고는 갈 곳이 없어 산책만 열심히 하고 집으로 기어들어갔던 적이 종종 있었다.
난 페미니즘을 갖고 있지도 여권 신장을 위해 핏대를 올리며 요구를 해본 적도 없는 여성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금 우리가 이렇게 많이 차별받았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에 관한 차별은 많았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여성들조차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냥 어쩌면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것들이 너와 나의 다름을 넘어서 차별을 빚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가랑비에 옷 젖듯 우리는 모르며 혹은 그냥 모른 체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의 초반부 김지영 씨가 정신이상증세로 자신의 어머니로 빙의한 듯 시아버지에게 한 말이 너무도 통쾌하게 들렸다.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주셔야죠.
그랬다. 시댁에 가면 불편한 현실. 나와 너의 상황이 조금씩은 다를지언정 그 뭔가 모를 불편함.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은 어떤 며느리에게나 있는 게 분명하다. 나도 명절이면 거기서 일도 많이 안 하고 시부모님이 나를 불편하게 딱히 하시는 게 없어도 언제나 친정에 갈까 눈치를 보았다. 예전처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밥을 하게 하거나, 개울에 얼음을 깨 추운 겨울에 얼어 터질 것 같은 손으로 빨래를 하라고 시키진 않지만 여자들은 시월드에선 아직도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이제 밥은 압력밥솥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돌리는데 무엇이 힘드냐고? 글쎄, 뭔가 변하고 바뀐 것 같은 그 불편함의 본질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우리가 차별받고 있다는 그 본질 말이다. 난 사실 시월드보다도 워킹맘으로의 애환이 더 컸다. 주인공 김지영 씨도 시댁이나 친정이나 애를 돌보는데 도움을 받을 수 없어 퇴사의 수순을 밟는다. 난 그나마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1년 반까지는 집에서 엄마가 아이를 돌봐주셨고, 그 이후로 아이가 7살이 된 지금까지 일하면서 혼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하고 아이를 찾는 생활을 하고 있다. 7년이란 시간. 결코 짧지 않다. 힘들었다고 한마디로 하기엔 속에서 울컥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그렇다고 억울한 것도 아니다. 남들도 이러고 사는데, 더 힘든 상황의 사람들도 있는데 하면서...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어느 날 김지영 씨가 정말 백 년 만에 일을 보러 나갔다가 유모차를 세워놓고 카페에서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주위 앉은 사람들에게 들었다던 말이다. 김지영 씨는 이 말을 듣고 너무 속상했더랬다. 나도 주위 앉은 사람들처럼 그런 적이 있었다. 이 대목을 읽다 보니 여자의 적은 역시 여자인가? 나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나도 지난 7년간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제일로 해보고 싶었던 게 오전에 아이 기관에 맡기고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한잔, 브런치 한번 해보는 게 소원이 되어버린 여자이다. 아침 출근길에 뭐든 느린 아이를 채근하며 아이를 막 빨리 걸리고 있는데, 편의점이나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하는 전업(으로 예상되는 여성) 주부를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이 너무 부러운 나머지 '팔자 좋다'라고 속으로 되뇌며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상황이 있고, 난 나의 상황이 있는 것인데 내가 힘들다고 편협하게 생각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여자들은 이렇게 일을 하나 전업을 하나 왜 맘충이란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내가 워킹맘으로 일해서 내 돈 벌어 내 배를 우선 불릴지언정 난 정당하게 일하고 대가를 받기를 바라는데 우선 남성들과의 차별부터 시작해서 그냥 단지 워킹맘이라는 데서 차별은 시작된다. 아니지. 어찌 보면 워킹맘이라는 것은 우선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낳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엄마의 손길이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 그런 상황이 일하는 엄마를 가장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이미 휴가를 써버렸는데 아이와 함께 하는 행사가 있거나 아이가 어린이집에 너무 가기 싫다고 하면 그땐 어쩌지? 그럼 회사에 다시 반차나 휴가를 내기 위해 몇 번이나 망설이며 말을 꺼내야 하는지? 혹자는 그런 것은 개인적 사유이니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프로다라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그런 걸 다 넘어서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란 존재는 대신 누구에게 맡겨져야 할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직업을 보장받으면서 아이를 돌볼 수는 없냐는 말이다.
나도 작은 회사에서 일하며 공과 사를 구분하게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공적인 일에 사적인 일을 연관 짓고 싶지 않지만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공적인 휴가를 다 써버리면 사적인 감정으로 호소하여 휴가를 부탁해야만 했다. 왜냐면 당장 내 아이가 아프니까. 이렇게 버텨왔던 7년을 끝으로 난 곧 퇴사를 한다. 워킹맘의 자리를 내놓는 것이다. 내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그 많은 휴일과 방학을 무엇으로 때워야 할지 도대체 답이 나오지 않았고, 이런저런 식으로 차별받고 있던 나의 일자리와 내 아이와의 오롯한 시간을 맞바꾸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 간 받았던 나의 피 같던 월급은 이젠 없겠지. 앞으로 신랑 혼자 갚게 될 대출금과 생활비로 신랑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겠지.
나보다 5년이나 늦게 태어난 지영이도 이렇게 힘들다는데 난 뭐 당연한 수순이겠지. 나도 지영이처럼 사회에 비판적이고 투쟁을 하더라도 내 권리를 찾기보단 내가 손해보고 말지라고 참고 두려워하기만 했지. 나도 지영이처럼 누구에 빙의되서라고 하고 싶은 말이라도 했으면 좋았을걸. 용기가 없는 내가 못났다.
82년생 김지영은 너무 진짜 같아서 책이 정말 잘 읽혔다. 길지도 않았고. 얘기는 짧았지만 사회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난 17년째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며 기나긴 잠실 환승 구간을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그 길에 꽉 들어찬 시커먼 머릿수를 보며 늘 콩나물시루가 생각났다. 콩나물은 대가리가 노랗지만 우린 까맣다 뿐이지. 그 콩나물 대가리들 중 하나인 내가 거기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물결치듯 그 통로를 빠르게 혹은 느리게 걸었다. 그 콩나물 대가리들이 모여 우리 사회가 비로소 만들어졌다. 콩나물은 물을 주면 쑥쑥 자란다. 그 물은 바로 사회 제도와도 같다. 우리 개인 특히 여성으로서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살겠지만 그 결과도 응당 개인의 몫이지만 그 물, 바로 사회, 국가가 뒷받침이 될 부분에서 그렇게 되어야만 개인이 바로 설 수 있다. 서로가 그걸 너무 잘 아는데 개인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크고 사회는 각 개인의 자질을 탓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난제다. 분명 사회적 차원에서도 차별을 없애기 위한 일들이 행해져야 한다.
갈 길이 멀다고 길을 아니 갈 수는 없는 법. 이제는 갔던 길 말고 새로운 길을 기웃거려봐야겠다. 82년생 김지영처럼 77년생도 역시 정신이 혼미한 시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