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부맥가이버 Sep 18. 2023

[시] 여자 이야기

첫아들의 죽음으로 굽어진 여자의 인생은,     

돌연 막내딸에서 장녀로 탈바꿈한      

아이의 손가락으로 좌절된다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말을 남기며 떠나려 하자,     

아이는 필사적으로      

검지와 중지로      

엄마의 치맛자락을 돌돌 말아서 꼬아버린다     

여자 어른의 힘으로도 풀어내지 못한      

아이의 두 손가락 아귀힘     

아이는 엄마를 그렇게 다시,      

영원히 쟁취해 버린다     

여자를 生의 쳇바퀴 속에      

도로 들어앉히고 가둔다     

     

여자는 다시      

절절 끓는 삶의 부뚜막에 내려앉는다     

아이들이 거듭 엄마의 뱃속에 하나 둘 들어차고,     

여자는 자주 남산만 한 배를 세상에 내놓는다     

둘째 딸은 여자의 뻗어나갈 인생을 베어버린다     

셋째 딸은 여자의 하얗고 푸른 빛발이 촘촘하게      

들어선 다리를 땅에 말뚝으로 박아 넣는다     

기어코,     

첫아들의 상실로 말미암아 생성된      

마지막 남근의 아이는     

우뚝 서며 여자를 영원히 거세시켜 버린다     

     

여자는, 자꾸자꾸, 자주자주,      

주저앉고 기어 다니다가,     

쪼르르 누워있는 아이들 넷 옆에      

살포시 머리를 누인다

여자는 이제 더 이상 여자가 아니다     

무당이기 전에,     

인간이기 전에,     

오롯이 엄마가 된다     

     

이 여자는 바로 나의 엄마,     

하늘도 되었다가 땅도 되는,     

한낮이었다가 검은 밤도 되는,     

한량없는 환희였다가      

꺼져버릴 것 같은 나락이 되는,     

내 삶의 어긋난 이중주     

     

그 여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든 것이었다     


by 캘리하는 지니작가


이전 01화 여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