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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JA Feb 12. 2023

장국영, 그가 연기한 악(惡)의 형태

영화 <창왕: 스피드 4초> (Double Tap, 鎗王, 2000)

창왕(鎗王), 매력적인 사이코패스 살인마


팽아리(장국영 분)에 사격을 배우러 온 양 사장이 생닭을 표적으로 삼아 총알을 박아넣을 때 아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움찔거리는 몸은 숨길 수 없다. 직접 사격하지도 않았으면서 종이로 만들어진 타깃이 아니라 동물의 근육에 총알이 박히는 모양에 더불어 이리저리 살점이 튀기는 선뜩함과 새로움에 순간 매료된 듯 보인다. 아리는 살아있는 닭을 맞추려는 사장에게 총은 죽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 심장이 박동하는 새로운 타깃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마음의 소리를 애써 모른척한다. 수많은 타인과 그들로 구성된 세상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의해야 하는 도덕과 윤리를 족쇄처럼 지워 놓아 내면의 폭력성을 감추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본성은 사격 대회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총기 난사범을 망설임 없이 즉사시키는 순간 똬리를 풀기 시작한다.


이후 아리는 희열을 느끼고 살인을 일삼는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중 냄새를 맡은 경찰이 아리를 추궁하지만, 아리의 연인인 콜린(황탁령 분)의 거짓된 진술과 불충분한 증거로 풀려난다. 물증은 없으나 심증이 있었던 경찰은 콜린을 억지로 구금하고, 아리를 도발한다. 아리는 콜린을 가둬두고 자신을 추격하는 경찰 무리를 한 곳에 몰아넣은 뒤, 빠르고 정확한 사격으로 전부 몰살한다. 그 뒤 아리는 주요한 경찰 인력을 차례로 제거하는 행적을 보이며 꾸준히 그와 대립했던 경관 묘지순(방중신 분)을 자극한다. 아리는 콜린을 구하기 위해 묘지순을 인적이 많은 곳으로 불러내고, 둘은 서로에게 총을 난사하는 것으로 마지막 결전을 치른다. 이후 묘지순은 가까스로 생존하고, 아리가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난다.

<창왕: 스피드 4초>는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다소 부족한 개연성과 부자연스러운 전개, 그리고 불충분한 인물 심리에 대한 설명 때문에 관객은 어리둥절한 채로 사건 진행을 좇아가게 된다. 이에 더불어 경찰과 아리 간의 대립 구도, 아리와 콜린과의 관계 등 아리를 둘러싼 갈등 구조의 임팩트가 부족해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결점은 장국영의 연기 하나로 상쇄된다. 항상 선역을 맡던 그는 처음으로 사이코패스 살인마 역을 맡아 악역을 연기했고,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애매모호함을 바로잡는 장국영의 연기 


아리가 거울을 보며 총 쏘는 시늉을 하는 장면에서, 아리는 상상 속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며 상황극을 펼친다. 아리는 인물에게 총을 들이밀며 협박하는 것으로 당장에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공포감을 안기는 데 희열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내 아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아리 자신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으며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아리가 사람을 총으로 쏴서 죽이는 쾌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죄책감 또한 느끼는 것으로 상당한 혼란 상태에 있고 불안정한 정신을 가진 인물임이 확실해진다.


또한, 묘지순과의 마지막 결전 이후 아리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를 회상한다.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소리치는 자신과 공포에 떨며 우는 콜린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고, 허름한 방 안에 앉아있는 자기 뒤통수에 총을 겨누는 콜린에게 지은 은은한 미소를 떠올린다. 콜린이 총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태연히 죽음을 기다리는 아리는 사랑까지는 아니었어도 유일하게 콜린만큼은 아꼈으며 그녀로부터 살해당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물의 심리도 모호하고 개연성도 떨어지는 작품이나, 장국영이 연기한 아리의 양면적인 심리 상태로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아리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들은 여타 연쇄 살인범을 좇는 경찰 수사물과 다를 바가 없다. 일반적인 수사물보다도 특색이 없어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장국영이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작품은 활기를 띠며, 관객은 작품이 그의 연기로 좌우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을 죽이는 데 쾌감을 느끼지만, 가슴 한구석에 죄책감으로 인한 불안과 혼란을 겪는 아리의 심리 상태를 양면적인 행동으로 연기하는 장국영은 어물쩍 전개되는 비논리적 서사와 인물 심리 묘사에 한 줄기 개연성이 되어준다. 극 중 이해되지 않던 아리의 행적이 장국영의 연기로 힘을 갖게 되고, 작품은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사이코패스 덕분에 흥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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