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의 땅, 식민자의 땅, 이민자의 땅
오클랜드 서쪽의 무리와이비치에 다녀온 뒤, 나는 이 도시의 남쪽과 북쪽도 궁금해졌다. 무리와이비치에서 본 수백 마리의 가넷 서식지가 무척 인상적이어서 다른 곳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 상태였다. 숙소 예약 앱을 켜고 오클랜드의 남쪽, 카라카 호수 인근 숙소를 예약하였다. 뉴질랜드의 호수는 얼마나 방대하고 아름다울까. 마음이 부푼 채 정든 한인민박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파파쿠라(PAPAKURA) 역에 도착했을 때, 창밖을 보던 우리 부부는 걱정스럽게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하차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재차 흘러나오는 방송에 등을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간간이 보이는 폐가, 낡은 붉은색 간판을 달고 있는 상점, 터번을 두르고 수염을 기른 남자들, 그리고 갈색 피부에 흰 이를 드러낸 여자와 아이들이 보였다. 중국 소도시로 보이는 거리에 인도인이 살고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긴장과 실망이 미간에 모였다.
'여기가 뉴질랜드가 맞아?'
오클랜드의 남쪽, 파파쿠라역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이 의문문으로 대신한다.
버스를 타고 20분쯤 달리자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새로 깐 듯한 아스팔트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비슷하게 생긴 주택들이 마주 보고 늘어서 있었다. '복사-붙여 넣기'를 한 것 마냥 주택가가 이어졌다. 핸드폰을 두고 외출했다간 길을 잃기 십상인 마을이었다. 집집마다 앞마당엔 연둣빛 잔디가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어, 마치 영화 '트루먼쇼' 촬영 세트장 속에 들어온 느낌도 받았다.
그중 한 주택 앞에 도착하였다. 문을 열어준 우리 숙소의 호스트도 인도인이었는데, 어린 시절 이주해 이곳에서 자랐다고 했다. 쾌활하고 배려가 깊은 호스트라 있는 내내 편하게 지낼 수 있었고, 종종 마주칠 때마다 우린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사소하고 가벼운 이야기였지만, 그녀와의 대화 중 한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 동네엔 마오리(원주민), 백인, 인도인이 1/3씩 살아요."
뉴질랜드는 오래전 마오리족의 땅이었다. 그 위에 유럽인이 도착했고, 최근 그 위에 다시 아시아 이민자들이 정착했다.
한인민박에 있을 때, 민박집에 놀러 온 사장님 친구분 말씀에 따르면, 한 때는 이곳에 중국인 이민자가 엄청 들어오더니 몇 년 전부턴 인도인들이 무지하게 오고 있다고 하였다.
한 땅 위에 여러 겹의 시간이 포개진다. 땅은 그대로인데 그 위에 살아가고, 그 땅의 주인행사를 하는 사람들의 피부색이 계속 바뀌고 있는 것이다. 처음 보았던 파파쿠라역은 시간의 흐름이 덧대어 기워진 곳이었다. 집을 버리고 떠난 과거의 사람과 중국 느낌의 간판, 그리고 그곳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인도인까지.
남쪽에서 기대했던 카라카 호수는 기대보다 그 규모가 훨씬 작았다. 크기는 작았지만, 세트장 같은 거리가 지겨워질 때면 우린 호수로 나갔다. 빵 한쪽을 들고 가면 주변의 온갖 조류들이 모여들어 사람을 에워싸 겁이 날 정도였다.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를 체험하기엔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오클랜드 남쪽에서, 원했던 대자연 경험은 못하고 3박 4일간 호수의 오리와 백조들만 살찌워 놓고 떠나게 되었다.
떠나던 날, 파파쿠라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이곳에 도착했던 날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처음에는 낯설어 긴장했던 곳이 마지막 날엔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난 이곳을 '이상한 곳'으로 보지 않고, '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로 받아들였다. 엽서 속에서나 볼 것 같은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기대하고 왔다가 민낯의 오클랜드를 만났다.
옆 벤치의 인도인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먼저 미소를 지으며 살짝 목례를 하였다.
그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