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숨겼던 이름을 이제는 당당히 내세운다.

나는 한국인입니다

by 윤슬

11월의 오클랜드는 여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10월의 여행지였던 시드니나 브리즈번에 비해 기온이 낮아, 낮에 돌아다녀도 더위에 지치지 않았고 아침과 밤에는 오히려 쌀쌀하게 느껴졌다. 한국의 5월 말과 비슷한 기후였지만 햇살은 더 강하고 일교차는 컸다.


기후는 온화한데 하늘은 맑고 푸르러, 집돌이 집순이마저 밖으로 불러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늘이 사파이어 블루색 물감으로 칠한 듯 청명했던 어느 날, 남편과 나는 데본포트(Devonport)에 가기로 했다. 든든히 아침을 먹고, 민박 사장님이 준비해 주신 간식과 생수를 챙겨 숙소를 나섰다. WX1 이층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까지 이동한 뒤, 페리를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데본포트에 내려 고개를 들어보니 마을 가운데 작은 언덕이 보였다. 저곳에 오르면 이 아름다운 항구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것 같아,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착장 인근 도서관

작은 어촌 마을이 어쩜 이렇게 고급지고 예쁠까 감탄하며 천천히 길을 오르는데, 맞은편에서 80대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내려오고 계셨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데본포트 언덕 오르는 길에

"Are you visitors?"

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우리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어디서 왔느냐고 다시 물으셨다. 난 "Korea"라고 답하다 속으로 아차 싶었다. 이 정도 연세의 외국인이 '한국'하면 떠올리는 건 남한과 북한 정도일 텐데 "South or North?" 질문 나오기 전에 내가 미리 South를 붙여 대답할 걸 싶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의외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혹시 서울에서 왔냐고 묻더니, "서울은 정말 거대한 도시잖아, 너희에겐 오클랜드가 시골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거긴 아주 발전했지? 내가 얼마 전에 잡지에서 읽은 건데..." 하시며 본인이 아는 한국에 관한 지식을 곱게 싼 보자기 속 꿀단지를 꺼내듯 풀어놓기 시작하셨다.



2000년 대 초반, 나는 교환학생으로 이탈리아에서 1년을 보냈다.

당시 두오모 성당이 있는 시내에 나갈 때, 신경 써서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하고 나가면 사람들은 나를 "자포네제(이탈리아어로 일본인)"라 부르며, 어색한 발음으로 "곤니찌와"하고 인사를 건넸다. 반대로 편한 차림에 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가면 "치네제(중국인)"라고 하였다. "코레아나(한국인 여성)"라고 말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니야, 난 한국인이야."

그렇게 말해 줘 봤자, 돌아오는 다음번 질문은 기껏해야 "Sud o Nord(남한이야 북한이야)?"가 다였다. 남한이라는 대답 이후로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진 않았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잘 모르거나 별로 관심이 없었고, 나의 이탈리아어는 한국을 알리고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인과 일본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난 일본인 쪽을 택했다. 일본을 동경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나를 일본인으로 오해할 때 더 친절했기 때문이다. 자포네제로 보이는 날에는 상점 여직원들이 유난히 상냥했고, 거리의 남자들은 윙크를 하거나 손으로 키스를 날렸다. 다짜고짜 길에서 청혼을 하는 남자도 있었다. 하지만 치네제로 보이는 날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난, 바보 같고 슬프게도, 일본 또래 여성들의 말투와 리액션을 일부러 흉내 냈다. 그들의 스모키 화장을 따라 눈을 칠하고 루주 삭스를 신었다. 현지인들이 나를 더 자포네제로 오해하도록.


미래의 직업을 고민하고 결심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웃나라 여자들을 따라 하다 기숙사로 돌아오던 길엔 마음이 허탈해지곤 했다.

'졸업하면, 난 대한민국을 알리는 일을 할 거야.'

그렇게 다짐하며 헛헛한 속을 달랬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나라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처럼, 다른 나라 사람인 척 흉내내는 후배가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오클랜드 데본포트에서 만난 할머니와의 대화는 그래서 더욱 뜻밖이었다. 우리는 길에 서서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화제는, 크고 발전한 도시 서울과 아름다운 섬 제주, 그리고 해녀 이야기로 이어졌다. 할머니는 잡지에서 읽은 한국에 관한 기사를 내게 들려주며, 정말 그러한지 확인하고 싶어 하셨다. 특히 제주의 해녀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며 본인의 감상을 진지하게 나누셨다. 언젠가 꼭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들었을 땐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몽글몽글하게 올라왔다.


언덕 넘어 가볼 만한 카페 추천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할머니와 헤어져 15분쯤 더 올라 언덕 정상의 벤치에 앉았다. 예상대로 마을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날씨는 끝내줬고, 풍경은 아름다웠다. 벤치에 앉아 숙소 사장님이 싸준 간식을 먹으며 방금 전 할머니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와, 너무 좋다."

연신 헤실거리며 감탄만 수차례 내뱉었다. 마음이 꽉 차게 부풀어 올랐다.


장기 해외여행을 시작한 지 6개월째다. 요즘 우리는 종종 "Korean?"이라고 묻는 질문을 받는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냐는 질문이 먼저 나올 때, 난 그게 참 반갑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같은 인사말을 건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나 아이돌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한국 문화가 K-pop과 K-드라마를 통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뉴질랜드에서도 예상보다 자주 익숙한 것들을 만나게 된다. 우연히 들어간 브런치 카페 메뉴판에는 "Korean Style Chicken"이 있었고(한국에선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었지만), 마트에서는 한국 과자나 라면, 화장품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디서 왔냐는 외국인 질문에 한국인이라 답하면, 남한이냐 북한이냐로 이어지던 질문도 예전에 비해 줄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알고 있다. 드라마를 챙겨 보지 않고, 아이돌 소식에 밝지 않은 우리 부부는, 오히려 외국인들을 통해 한국 연예계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한국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남편의 백팩 앞면에는 'KOREA'라고 적힌 자수 패치가 붙어 있고, 나는 한국에서의 평소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한다.

혹시라도 누군가 우리를 이웃 나라 사람과 헷갈려한다면 웃으며 말할 것이다.

"아니요,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그다음 대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어쩌면 나도 잘 모르는 한국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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