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만족도를 결정짓는 것
오클랜드에서의 첫날밤은 깜깜했다.
숙소 거실의 창밖엔 야경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 가로등은 드믄드믄 서 있었고, 주택들은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 불빛도 성글었다. 뉴질랜드 최대 도시라더니, 시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을 위하여 ↓)
01화 뉴질랜드에서의 첫날, 지상낙원에도 시궁창은 있다
창 밖이나 내 속이나 깜깜하긴 마찬가지였다.
내일 아침 이곳을 탈출하더라도 당장 갈 곳이 없었다. 에어비앤비 앱과 호텔 예약 사이트를 들락거리다 문득, 열흘 뒤 3박을 예약해 둔 한인 민박이 생각났다. 사실 이 낯선 땅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연락처는 그곳밖에 없었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염치와 예의를 내려놓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카톡을 보냈다. 사장님은 내일부터 입실이 가능하고, 아침 10시 이후로 체크인해도 된다는 답을 주셨다. 진정, 환난 중에 만난 피할 길 같은 메시지였다.
'보니민박'은 오클랜드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밥 냄새가 훅 풍겼고, 인상 좋은 사장님이 친근한 한국말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후각, 시각, 청각이 동시에 안도하는 순간이었다. 전날 숙소에서 받은 충격과 그로 인해 놓지 못했던 마음의 긴장이 사르르 풀렸다.
"아침 못 먹었을 텐데, 식사부터 하세요."
직접 담근 김치에 큼직한 감자가 들어간 카레, 그리고 국을 데워 식탁을 차려주셨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전날 저녁부터 제대로 못 먹어 배가 고팠던 우리는 예의상 거절도 잊은 채, 카레에 밥을 비벼 김치를 얹어 맛있게 먹었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집에서 만든 김치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참으로 감사하고, 반갑고, 귀한 한 끼였다.
식사를 마치자 사장님은 마누카 꿀티를 내주시며 오클랜드에서 가볼 만한 곳과 가는 법을 상세히 알려주셨다. 우리가 아무 계획 없이 이곳에 온 걸 어떻게 아셨을까. 추천해 주신 곳만 가더라도 오클랜드에서의 3주를 알차게 보낼 것 같았다.
그곳은 원래는 아침 식사만 제공되는 숙소였지만, 사장님은 우리가 먹는 양이 적으니 음식 남으면 점심이나 저녁도 집에서 먹으라고 하셨다. 손 크고 인정 많은 사장님 덕분에 외식비 비싼 나라에서 식비도 아낄 수 있겠다. 보니민박에 들어선 후로 5분에 한 번씩, '여기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자, 사장님은 "저 슈퍼 가는데, 혹시 살 거 있으면 제 차로 같이 갈래요?" 물어주셨다.
'아니, 사장님~ 어째서 이렇게 내 필요를 미리 알고 제안해 주시는 거예요?'
이른 체크인, 체크인 당일 아침 식사, 여행지 추천에 슈퍼 동행까지.
내적 친밀감이 급상승한 나는, 하마터면 슈퍼 가는 길에 사장님 팔짱을 자연스럽게 낄 뻔했다. 히잉.
첫날의 오클랜드는 깜깜하고, 무섭고, 불편한 시골이었는데, 둘째 날부터는 맑고, 푸르고, 평온한 나의 최애 여행지가 되었다.
'여기 오기 잘했다, 정말 잘 왔다!'
오클랜드에서 지낸 20일 중 19일 동안 되뇌던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달랏에서도 그랬다.
놀라울 정도로 더러운 숙소를 탈출하여 찾아간 곳이 PINKY HOMESTAY였다. 그곳에서 Su와 Han부부를 만났다. 사실 불편한 게 많은 달랏이었지만, 좋은 사람들 덕분에 예쁜 추억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Su이모와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게스트로 만나 지금은 서로의 가족 근황과 속 이야기를 나누는, 세대와 국적을 초월한 친구가 되었다.
(달랏 이야기는 아래 링크 클릭)
오클랜드에서도 이러려고 첫날 그런 곳으로 갔던 모양이다.
첫날엔 싫어서 눈물이 날 것 같더니, 그 이후로는 좋아서, 황홀해서, 감동적이라 눈물 나는 날들이 이어졌다.
사람 좋아하는 사람에겐 어쩌면 사람이 전부다.
사람 때문에 울고, 사람 덕분에 웃는다. 맞지 않는 사람과 엮이면 그곳이 어디든 시궁창인 것이고, 좋은 사람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면 거기가 바로 지상낙원이고 천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