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이 외국에서 일식집을 해요?
오클랜드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은 롱베이(Long Bay)에서 보내기로 했다.
전에 한인민박 사장님과 이곳에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날 나와 남편은 롱베이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바닷가 주변으로 넓은 공원이 있어, 사람들은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야를 막는 것 없이 길게 뻗은 모래사장과 바다 덕분에 눈과 마음이 동시에 시원해졌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변 마을에 매료되어, 마지막 주는 무조건 롱베이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오클랜드 하버 브리지 북쪽, 노스쇼어에 위치한 롱베이는 새로 지은 주택들이 단정하게 늘어서 있고, 해변과 대형마트가 가까워 한적하면서도 편리한 동네였다. 아침저녁으로 바닷가를 산책하고, 낮에는 숙소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감상에 빠지곤 했다. 오후가 되면 해가 지는 것이 아쉽고, 밤이 되면 하루를 보내는 게 아까울 정도로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소에서 동양인 소녀를 보았다. 호스트에게 물으니, 일본에서 온 교환학생인데 홈스테이 중이라 하였다.
다갈색 단발머리에 작고 하얀 얼굴. 오밀조밀 이목구비가 앳되었으며 체구가 무척 작았다. 일본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모였다.
잠깐 마주쳤을 뿐인데 이상하게 그녀에게 마음이 쓰였다.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식사를 하다가 호스트가 말을 걸면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방긋 웃었는데, 그 웃음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며칠 뒤, 테라스에서 우린 다시 마주쳤다. 내가 더듬더듬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인내심 있게 듣다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아야카예요. 일본에서 온 지 두 달 됐고, 스물한 살이에요."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식사 전이면, 우리랑 함께 밥 먹으러 나갈래요?"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는 아야카와 함께 오클랜드의 한식당으로 갔다. 불고기 전골과 냉면을 나누어 먹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는 블랙핑크 콘서트에 갔던 이야기, 이곳 학교 생활과 남자친구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매우 조용한 학생이라는 호스트의 말과 달리, 식사 내내 수다를 떠는 모습이 귀여워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대화 도중 숙소 동네의 작은 일식당 이야기가 나왔다. 초밥과 튀김을 파는 그 가게는 젊은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런데요, 왜 한국인이 외국에서 일식당을 해요?"
아야카의 해맑은 질문에 잠시 말이 막혔다. 하긴 그랬다.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 중 일식당 사장님이 한국인인 경우를 종종 보았다. 여러 생각이 스쳐 갔지만,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며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렸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그녀의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예전엔 해외에서 만나는 아시아 관광객 중 일본인 비율이 높았는데, 요즘은 그 수가 많이 준 것 같다. '그 많던 일본인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여행 중 자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떠났어도 일본 문화는 세계 곳곳에 남아있다. 특히 일본 음식은 인기가 많아 어디를 가던 일식당을 만나게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식이 해외 대중에게 사랑받는 음식이 된다면, 그래서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이웃나라 사람이 외국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본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심통이 나기보단 반갑고 고마울 것 같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져 이내 잠이 들었다.
다음날, 호스트 아주머니가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야카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면서. 가족을 떠나 타국에서 지내는 어린 학생이라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의 그녀는 아주 밝아 보였다고 했다.
호스트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했냐며 내 손을 잡고 손등을 다독여주셨다.
한번 스쳤던 그녀가 왜 계속 마음이 쓰였는지 알 것 같았다. '교환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물한 살의 나도 타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새로운 환경이 설레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외로웠고, 언어 때문에 항상 긴장했었다.
고개를 숙이고 식사하던 그녀에게, 활짝 웃으며 먹을 수 있는 밥을 사주고 싶었다. 그나마 정서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 마음 편한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어쩌면 난 아야카가 아니라, 스물한 살의 나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사 먹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아야카가 행복해했다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내가 고마워졌다.
훗날 그녀가 뉴질랜드에서의 시간을 떠올릴 때, '인생에서 가장 반짝거렸던 1년'으로 기억하기를,
낯선 한국인 부부와 먹었던 불고기와 냉면, 그리고 마음 놓고 웃었던 하루가 그녀의 스물한 살에 윤기를 더하는 한 방울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