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파헤치기. 당신의 판결은?
롱베이(Long Bay)로 숙소를 옮기기 하루 전날의 일이다. 그날은 뉴질랜드 여행이 정확히 8일 남은 시점이기도 했다.
북쪽에 위치한 롱베이로 가면 시내와 거리가 멀어질 테니, 한인민박에서의 마지막 날 시내 근처 공원에 가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며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기분 좋게 공원으로 향했다. 날씨마저 화창하여 공원 테이블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도시락 뚜껑을 여니 참새와 비둘기,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이 우리 테이블 근처에 몰려들었다. 나 한 입 먹고, 밥알과 빵 조각을 새들에게 뿌리고, 다시 나 한 입 먹는 일을 반복하며 사이좋게 식사를 마쳤다. 공원을 한 바퀴 걷고 나니 어느새 소화도 됐다.
이까지는 참 좋았다. 오클랜드답게 평화롭고, 뉴질랜드답게 자연친화적인 완벽한 나들이었다.
문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정류장에서 터졌다. 교통카드 때문이었다.
오클랜드의 AT Hop 교통카드는 주당 상한제가 있어, 50 NZD(1 NZD≈870원)를 충전하면 일주일 동안 교통수단을 무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한 주는 이렇게 계산된다. 예를 들어 월요일에 카드를 개시하면 다음 주 일요일 밤 11시 59분까지 쓸 수 있다.
우리가 묵었던 한인민박에선 손님용 교통카드를 빌려주어, 우린 각자 50달러씩 충전해 잘 사용하고 있었다. 체크아웃 전에 카드를 반납해야 하니 롱베이에서 사용할 카드는 미리 구입하여 충전해 둔 상태였다. 롱베이 일정이 7일이라 새 카드를 다음날 시작하면 딱 맞게 쓰고 오클랜드를 떠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돌아가는 버스에서 숙소 카드 대신 새 카드를 쓰겠다고 했다.
"충전금액을 다 쓴 거야?"
물었더니 아니란다. 13달러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굳이?
사정은 이랬다. 민박에서 받은 카드 중 내 것은 빈 카드였지만, 남편 것에는 이전 사람이 다 쓰지 못하고 남긴 10달러가 들어 있었다. 남편은 전 사람이 남긴 10달러를 받았으니, 다음 사람에게도 10달러 이상 남겨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 이 카드를 찍으면 10달러 보다 적게 남는다며(기억으로 숙소까지의 버스비는 3.4달러였다. 즉, 9.6달러가 남는다.) 숙소 카드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본인 돈이 아닌데 손댈 수 없다는 논리였다.
내 생각은 달랐다.
10달러는 이전 여행자가 남기고 떠난 것으로, 우리에게 온 작은 행운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상황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도 '10달러의 행운 바통'을 건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지금 숙소 카드를 써도 다음 사람에게 9.6달러를 남겨 줄 수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덧붙여, 남편이 새 카드를 오늘 개시하면 7일 뒤에 주간 한도가 끝난다. 그러면 마지막 날인 8일째 하루를 위해 또 한 번 충전을 해야 한다. 오클랜드 교통카드는 잔액 환불이 되지 않아 남는 돈은 고스란히 버리게 될 것이다.
게다가 롱베이에서 충전소를 찾아야 할 것이며, 근처에서 못 찾으면 버스로 2~30분쯤 걸리는 큰 정류장까지 가야 할 것이다. 시내에서 떨어진 지역에선 충전소를 찾는 게 일이라는 걸 남쪽 지역을 여행할 때 이미 경험한 바 있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우리가 희생할 필요는 없다며 그를 설득했다.
그러나 남편은 10달러를 받았는데 어떻게 10달러보다 적게 남겨줄 수 있느냐, 내 것이 아닌 돈을 어떻게 쓸 수가 있느냐에 더 무게를 두었다.
나는, 우리가 때로 조건 없이 타인을 위해 베풀 듯, 우리 역시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0.4달러만큼 마음이 불편한 것과 당신의 양심을 지키되 감수해야 할 우리의 비용과 시간의 경중을 따져보자고 반박했다.
초록빛이 싱그러웠던 오클랜드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부부는 1시간이 넘도록 언쟁을 벌였다. 그 사이 타야 할 버스가 몇 대나 그냥 지나갔다.
이 일은 끝내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우리 사이에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일명 ‘뉴질랜드 홉카드 사건’이다.
남편은 나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양심적이지 않다”라고 했고, 나는 "융통성이 없다"라고 받아쳤다.
남편이 도덕과 양심을 언급했을 때, 난 조금 억울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들려주어 의견을 묻고, 언젠가 반드시 글로 써서 독자 반응을 남편에게 알려주리라 마음먹었다. (히히)
물론,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선하고 바른 인성이다. 사회에 만연한 비양심적 행동 앞에서 "우리는 그러지 말자" 하며 붙잡아 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 유혹에 덜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 점이 진심으로 고맙다.
다만 그의 기준이 때론 과하게 높다. 살다 보면 '왜 우리만 이렇게까지?'라는 의문이 든다. 또한 그가 '줄 때는 기쁘게, 받을 때는 감사하게' 누리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다. 선의는 돌고 돌아 언젠가 우리에게도 닿는 법이니까. 그러니 0.4달러 때문에 써야 할 에너지를 모았다가 다음에 다른 이에게 더 많이 돌려주면 되지 않을까.
착한 남자와 사는 것, 그런 남자와 여행을 하는 게 가끔은 쉽지 않다.
* 뉴질랜드 홉카드 사건에 대한 당신의 판결이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