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개월 동안 2번의 커트를 했다.
그 덕분에 살면서 가장 짧은 머리를 갖게 되었고, 이전에 겪지 않았던 일들을 겪었다.
머리에 대한 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긴 머리만 고수했었다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어깨 위로 머리를 짧게 잘라본 적이 없다. 아. 한번 있었다. 고등학생 때 머리 검사가 유독 심했던 학교를 다녔기에 억지로 머리를 귀밑 5센티로 자른 적이 있다. 머리숱도 많고, 곱슬이었는데 헤어 스타일링도 안되어서 내 모습이 나는 너무 싫었다. 그 기억으로 꽤 오래 나는 긴 머리를 고수하며 내가 짧은 머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나는 매일 1시간 넘게 머리 말리며 살고 있었다. 긴 머리의 모습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파마도 하고 염색도 했지만, 머리 길이는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에는 쇼트커트이나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저렇게 짧은 머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러나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를 가야 하는 상황에서 짧은 머리를 시도하는 것은 나에게 도전이었다. 못나보였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괜한 도전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안정적인 선택만 하며 긴 머리를 고수했었다.
짧은 머리가 이상하면 어때?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회사를 다녔다. 그리고 두 번째 회사를 다니다가 나는 권고사직을 받았다. 말로만 듣던 권고사직을 받으니 충격이 꽤나 심했다. 내가 패배자가 된 거 같았고, 자존감이 무너졌다. 갑작스레 갈곳 없이 집에 있게 되었다. 매일 가던 회사를 안 가니 마음속에 묵혀둔 짧은 머리가 생각났다. '짧은 머리가 이상하면 어때? 회사도 안 가는데' 이 마음으로 다음 날 바로 미용실에 갔다.
머리를 자르니 바닥에 수북이 검은 머리들이 널려있었고, 그만큼 내 머리는 가벼워졌다. 단발머리에, 새로운 내 모습을 보니 기분도 좋아졌다.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오던 머리가 나에게 잘 어울렸고, 가족과 친구들도 짧은 머리가 낫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 덕분에 무너졌던 마음을 추스르고, 이 시기가 기회라고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단발머리는 생활도 바꾸었다. 매일 머리 감고 말리는 시간이 30분 이내로 짧아졌다. 머리를 대충만 말려도 자연스레 마르기도 했다. 숱이 많은 긴 머리일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험이다. 그리고 머리가 가벼워졌다. 숱 많은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숱이 많으면 그 머리카락 무게도 꽤 나간다. 그것들을 잘라내고 나니, 머리도 가볍고 몸도 가벼운 느낌이었다.
잘 쉬고 싶은 마음으로 짧게 자른 머리
두 번째 회사를 나오고 지금까지 구직을 열심히 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구직이 쉬웠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 구직은 매번 어려웠다. 할수록 쉬워지는 게 있는 반면, 구직을 할수록 어렵다. 원하는 자리가 매번 있는 것도 아니고, 짧은 경력에 스스로 위축되기도 한다. 이러다가 회사를 못 다니는 건 아닌지, 부정적인 생각을 덧붙이기도 한다.
하루 일과를 구직 사이트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나하나 살펴보고, 찾다 보면 2~3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리고 회사에 대해 조사를 하고, 지원을 한다. 기대를 하다가 면접을 보고는 다음 달에는 그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한다. 그리고 떨어진다. 떨어진 줄도 모르다가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사이클을 10바퀴 이상 돌고 나니 내가 지쳤구나 생각이 들었다.
백수에게는 평일은 일하는 날이 아니고, 주말이 쉬는 날도 아니다. 구직자에게 휴일이 없다. 그래도 지친 나를 방치하고 싶지 않았고,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그 여행을 잘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단발머리를 더 짧게 잘랐다.
낯선 나의 짧은 머리,
낯설지 않은 짧은 머리
더 짧게 자른 이유를 덧붙이자면, 익숙했던 일상을 조금씩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자이기에 해왔던 일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덜어내는 과정을 가지고 있다. 집 밖을 나서기 위해서 매일 했던 화장을 조금씩을 줄이고 있다. 파운데이션 대신 선크림으로만 마무리하고, 속눈썹을 올리지 않는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 부끄러워야 할 얼굴이 아닌데, 습관적으로 화장을 했다. 화장하지 않은 내 얼굴을 민낯, 쌩얼이라고 불렀다. 이를 바꾸기 위해 일상적으로 했던 화장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옷도 전보다 많이 사지 않고, 있는 옷을 활용하고 있다. 딱 붙는 옷, 짧은 치마보다는 내가 편히 움직일 수 있는 깔끔한 바지, 긴치마를 주로 입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긴 머리를 유지할 이유는 없었다. 단발머리가 조금 길어지니 더욱 짧게 자르고 편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짧게 자른 머리가 너무나 어색했다. 난생처음으로 짧게 잘라서인지 나도 내가 낯설었다. 쇼트커트까지도 아니었는데, 내가 남자처럼 보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미용실에 다녀와서 하루 종일 머리가 신경이 쓰였다. 가족들의 반응도 애매하고, 왜 이렇게 짧게 잘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스로도 어색한데,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짧게 자른 머리가 후회되었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 힘을 준 것은 역시 여자들이었다. 긴 머리에서 쇼트커트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 짧은 머리를 한 여자이기에 들었던 말들을 같이 나눠준 사람들, 서로에게 괜한 간섭을 하지 말고 각자 원하는 대로 살자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 덕분에 짧은 머리를 걱정하는 바보 같은 나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짧은 머리가 낯설지 않다.
긴 머리에서 짧은 머리로 바꿨다는 한 줄로 끝날 일에 많은 이야기가 엮여 있다. 나에게 짧은 머리는 단순히 머리카락이 짧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인생에서 제일 짧은 머리를 하고 잘 지내고 있다.
인생은 내 맘대로 안되지만,
머리는 내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