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노을, 택시, 을지로 잔
이사 간 집 근처에 동네 작은 산을 끼고 산책로가 있다. 가깝지만,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었다. 이 날은 주말이고, 약속도 없어서 어슬렁어슬렁 그 산책로를 걸어갔다. 잘 몰랐는데, 이 길에는 길고양이가 참 많았다. 한 10분을 걸으면 길고양이를 4마리는 볼 수 있다.
나는 동물을 조금 무서워하지만, 매우 좋아한다. 마음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아 어색한 편이다. 그래서 동물을 보면 가만히 멈춰 서서 바라보곤 한다. 지나가다 고양이가 있으면 바라보다가 또 걸어갔다. 그러다 이 흰 고양이를 만났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니, 곧장 나에게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당황했다. 길고양이들은 보통 사람을 경계하거나 피하기 바쁜데 나에게 걸어오다니,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성큼성큼 다가온 흰 고양이는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친해지고 싶어 했다. 나도 어느새 마음이 사르르 녹아 털을 빗어주면 놀았다. 잠깐만 만져도 손에, 옷에 흰 털이 묻어나는 걸 보며 동물과 한 번도 같이 살아본 적 없는 나는 신기하기도 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생존 경쟁을 하는지 할퀸 상처가 있었다. 아직 아물지 못한 빨간 상처. 이 고양이는 길 고양이지 라는 생각과 함께 안쓰러운 마음이 몰려왔다. 한쪽 귀를 보니 중성화 수술도 한 고양이었다. 사람을 손을 탄 고양이였기에 사람을 이리 좋아하고 따르는구나 싶어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가던 길에서 주저앉아 한참을 놀아주다가 흰 고양이가 나를 할퀴었다. 손을 잠시 스친 거 같은데 피가 났다. 돌아보면 고양이의 노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놀랐다. 고양이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몰랐으니까 내가 혹시 갑자기 무서워지거나 싫어져서 할퀸 건가 싶어서 바로 일어났다. 따끔한 손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데 흰 고양이가 나를 졸졸 따라왔다. 한 번에 뿌리치지도 못하고 뒤를 쳐다보면 조금씩 멀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는데... 나를 돌아보게 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겨운 흰 고양이에게 사람의 손길을 다시 느끼게 해주지 말았어야 했었다. 그리고 놀다가 갑자기 휙 사라지는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유기견, 유기묘를 보면 마음이 아파온다. 그렇게 버려짐에도 사람을 따르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나도 그렇지만, 정말 사람은 죄를 많이 짓고 사는 거 같다.
평일은 출근과 퇴근의 반복이다. 요즘은 해가 점점 길어서 7시에 퇴근을 해도 밤이 되진 않았다. 낮에서 밤으로 가는 시간, 매직 아워, 노을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퇴근 후 문 밖으로 나가면 보이는 이 풍경이 참 좋다. 매번 같은 자리에 멈춰서 사진 혹은 영상을 찍는다. 노을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될 때는 사진보다 영상을 찍게 된다. 영상이 더욱 이 순간을 잘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지친 하루라도 퇴근길 노을과 나무, 가로등이면
그래도 수고했다고 스스로 다독일 여유가 생긴다.
일주일은 7일이고, 7일 중에 5일은 회사에 나가니 즐거운 것보다 지치고 힘든 것이 많다. 이 날은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타고 오는 길이었다. 택시를 타도 집이 멀기에 한참을 달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서울을 다 훑으며 지나가는 기분이 드는데, 특히 한강을 볼 때 그렇다.
한강과 회사 건물의 야근 불빛, 국회의사당, 함께 지나가는 자동차
이곳을 지나면 넋 놓고 바라보게 되는데, 이날은 조금 힘이 있어서 영상을 찍었다. 기사님의 취향인 기독교 라디오를 BGM 삼아 한강 야경을 바라본다. 가끔은 이런 소소한 것으로 위로받기도 한다.
택시를 내리면서 잠시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기사님은 택시 운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난생처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긴장되는 일인지 잘 알기에 나는 편안히 운전을 잘하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기사님은 고개를 옆으로 하고는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그 모습이 나는 또 괜히 찡-한지, 나는 정말 울보가 맞는 거 같다.
금요일 저녁. 직장인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전 직장 동료였지만, 지금은 친구라고 말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을 만났다. 을지로로 회사가 이사 간 그 친구를 따라 을지로 동네에서 금요일 저녁을 보냈다. 음식은 을지로스럽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을지로스러운 을지 식당도 가보고 2차로 이름만 들어봤던 잔에 왔다.
자신이 원하는 잔을 골라 음료를 주문하는 이곳,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아쉽긴 했지만, 레트로 한 분위기에 특색 있는 오브제, 신기한 꽃이 있어 좋았다. 특히 기억에 남은 건 뚫린 벽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말하면서 움직이는 손과 팔이 보이고, 잔들이 보였다. 이 모습이 왠지 영화 같아서 영상을 찍었다. 생각보다 잘 담기진 않았다. 뭔가 젊은이들을 주제로 독립영화를 찍는다면 이 장면이 한 컷 정도는 들어가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