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지 않는 하루>
비건에게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 아는 거 같다. 허나 이 유형이 무엇이 무엇보다 위에 있거나 더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비건의 유형이 나눠진 역사적인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편리함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식당을 갔을 때 '저는 과일, 채소, 우유, 계란, 해산물만 먹어요.'라고 하는 것보다 '저는 페스코 베지테리안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 쉽고 간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종종 비건의 유형을 도덕성이나 윤리성 등이 높고 낮음으로 비교하거나 비건을 검증하려는 잣대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 거 같다. 이에 의식적으로 나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그 유형으로 빗대어 말하는 것을 피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비건 대신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혹은 요즘은 비건 지향이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순히 어떤 음식을 먹고 안 먹고로 분류될 수 있지만, 비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음식을 그냥 먹고 먹지 않고는 취향의 문제이다. 가령 맛이 없다거나 소화가 안된다거나. 비건은 그것보다 더 나아가 공장식 축산을 거부하며 동물 착취, 환경파괴 등을 반대하는 적극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비건을 그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어떤 사람을 비판하고 폄하할 때 일반화가 선행되는 것을 종종 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실수한 것을 가지고 '이래서 여자는 안돼.'라고 말한다거나 제시간에 퇴근하는 신입사원을 보고 '요즘 젊은 애들은 열정이 없어'라고 평가하는 경우들이다. 이는 비건에게도 적용이 된다. 비건인데 동물실험을 하는 제품을 쓴다고? 혹은 건강하기 위해서 비건을 한다고? 하는 등의 말들이다. 비건은 한 사람이 아니다. 비건이 된 이유는 복합적이며 개인마다 차이도 있다. 또 비건, 비건 지향으로 자신을 정체화한 사람은 많으며 제각기 다른 사람이다. 이에 다양한 사람을 한 사람인 양 퉁치거나 몇 가지 단계로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포유류 및 가금류의 고기를 모두 먹지 않고 해산물, 과일, 채소 등을 먹는다. 그렇다면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우유도 먹지 않는다. 우유 대신 아몬드 우유나 검은콩 우유를 먹는다. 그리고 동물실험을 하는 제품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바디워시나 세안용으로 닥터브로너스 제품과 러쉬 제품을 쓴다. 장을 볼 때면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가죽으로 된 제품을 사지 않는다. 텀블러를 점점 생활화하고 있다. 이외 일련의 행동들을 단순히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좋아하는 친구가 고기가 든 음식을 너무 먹고 싶어 한다면 완전 고깃집이 아닌 이상 함께 가기도 하고 고기가 든 음식을 먹기도 한다. 주문한 메뉴에 메인 재료가 고기가 아닌 경우에도 잘게 들어간 고기들이 있기에 가끔 먹게 되기도 한다. 우유는 안 먹지만 치즈는 먹는다. 텀블러를 깜빡해서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를 들고 나올 때도 있다. 또 들고 간 장바구니가 가득 차서 종량제 비닐봉지를 구매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비건 지향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가장 불편한 지점부터 하나씩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그 범위나 가짓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내 행동들이 어떨 때는 복잡하기도 모순적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런 방향이 내 가치관과 신념을 오래오래 지켜나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제보다 오늘이 그렇듯 나는 내일 더욱 확장되어 비건 지향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 부끄럽지 않다.
그러니 고리타분하게 유형을 따지거나 누군가를 검증하려고 하지 않아 보자. 그리고 내가 가장 불편한 것을 찾아 바꿔보는 건 어떨까? 그런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당신 역시 비건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