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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Dec 01. 2019

02. 이 작은 샌드위치 안에 햄을 어떻게 해야 하지

<고기를 먹지 않는 하루>


샌드위치 안에 슬라이스 햄을 보며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의 가성비를 생각했다.






금요일 퇴근길, 그냥 집에 들어가긴 아쉽고 누굴 만나기는 지쳐 심야 영화를 예매했다. 독립 영화를 즐겨봐서 자주 이수 아트나인을 가는데 이번에 '윤희에게'를 보러 갔다. 영화는 9시 20분 시작이었고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아트나인에서 함께 운영하는 잇나인에서 간단히 먹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메뉴를 살펴보았다. 파스타, 튀김류, 베이커리들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이것저것 먹고 나온 터라 간단하고 든든한 샌드위치가 나아 보였다. 크루아상 샌드위치. 근데 메뉴 사진은 없고 재료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리 알려주면 좋으련만. 그래서 주문할 때 물어보고 햄이 있다면 빼 달라고 하려다가 깜빡하고 그냥 주문해버렸다.


 앞에 놓인 크루아상 샌드위치. 5,900원이라는 가격과 잇나인의 분위기와 다르게 작고 별게 들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다. 차가운  보니 미리 만들어 놓고 보관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크루아상 안에 당연하게 얇은 슬라이스 햄이 들어있었다. 햄뿐 아니라 양상추  두장, 치즈  , 토마토   등이 헐겁게 겹쳐있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루아상 샌드위치를 살피며  햄을 빼서 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햄을 먹고 싶지 않지만, 지불한 가격에 비해 아쉬운  샌드위치에서 햄까지 뺀다면 억울한 마음이   같았다. 햄을 뺀다고 그만큼 가격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고 남겨진 햄은 음식쓰레기가 돼서 환경에 좋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가슴  구석 웅크린 마음에는 햄만 남아있는 접시를 돌려줬을  사람들이 나를 유난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분간 고민하다가 햄을 빼놓지 않고   베어 물었다.



그러면서 '가성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품질이 좋은 제품을 사거나 양이 많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성비가 좋다'는 표현을 하는데,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은 그 가성비를 누리기 힘들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어떤 이는 햄을 빼도 달라지지 않는 샌드위치 가격을 지불할 것이고 무항생제 동물복지가 써져 있는 비싼 달걀을 사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기를 먹는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고기를 빼도, 햄을 빼도 치즈를 빼도 아깝지 않고 마땅히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고.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영화를 보러 들어갔고 샌드위치와 함께 주문한 꽤 많은 양의 딸기 스무디를 끝까지 먹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남기지 않는 것이 지금 나의 '가성비'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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