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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Feb 14. 2020

두 번째로 쓰는 식물일기 #4

식물 없는 화분에 물 주기, 이 무의미한 행동을 해보려 한다

3주라는 꽤 긴 시간 집을 비웠다. 집을 떠나면서 같이 살고 있는 동생에게 부탁했었다. 일주일 한 번은 식물 물을 주라고, 물론 다 일주일의 한 번은 아니었다. 흙에 수분도 체크하고 그 날의 습도도 고려해서 줘야 했지만, 부탁하는 마당에 번거롭게 할 수 없기에 그렇게만 말했다. 그리곤 여기저기 흩어진 식물이 잘 안 보일까 봐 가운데 책상 위에 올려두기도 했다.



돌아와 보니 어쩔 수 없이 식물들이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제일 심각한 아이는 스파티필름이었다. 처음 식물을 기르기 시작할 때쯤 데려왔었던 그것이었다. 잘 자라서 분갈이도 해주고 식물을 2개로 나눠서 심기도 했었다. 그중 하나가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게 시들어있었다. 흙을 만져보니 동생이 급하게 물을 줬는지 촉촉한데도 그 상태였다. 과습으로 지친 것일까 생각이 들었고, 며칠이 지나면 또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마음으로 관찰했다. 가끔 식물의 생명력에 놀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시든 스파티필름은 변화가 없었고 잎이 더 갈변하는 거 같기도 했다. 고개는 떨어지다 못해 흙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이 스파티필름을 흙 속에서 뜯어냈다. 흙 위는 그렇게 힘겨워보였는데 뿌리는 또 어찌나 깊고 튼튼한지 자신의 숨과 같던 흙을 놓지도 않았다. 그 모습에 내가 섣부르게 행동한 건 아닐까 싶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내 마음속에 뜯어내고 싶은 것들도 이렇게 확 뽑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쾌감을 조금 느끼기도 했다.



그 식물을 휴지통에 버리고 또 일주일이 지났다. 식물들을 상태를 보니 물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어서 하나씩 물을 줬다. 그러고 시든 스파티필름이 뽑힌 빈 화분에도 물을 주었다. 흙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 물을 주니 옅은 시골냄새가 났다. 촉촉한 땅 냄새가 느껴졌다. 그렇게 빈 화분에 물을 주고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ㅡ 빈 화분을 버리지 못하고, 물을 준다.
ㅡ 뜯어서 버렸지만 흙 속에 스파티필름의 뿌리가 조금 남아 이 물을 먹고 다시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ㅡ 이 무의미한 거 같은 행동을 하는데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내 마음이 무의미한 것에도 가닿을 수 있게 되었기에


그리고 그 빈 화분에 나를 이입했다. 유독 잘하는 것이 감정이입 그리고 공감이었기 때문에. 화분도 그렇게 잠시 내가 되었다. 빈 화분같이 홀연하고 싶은 지금 상태와 그 빈 화분과 같은 나에게 꾸준히 물을 주며 뭐라도 나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피어났다.



그래서 당분간 이 무의미한 행동을 해보려고 한다.

식물도 없는  화분에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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