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엔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코로나19로 갑작스레 불편해진 일상
얼굴의 3분의 2를 가린 마스크를 낀다. 눈꺼풀을 껌뻑이며 걸어간다.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반복해서 지나간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마주하는 풍경이다. 바이러스를 마주한 일상에서 나는 갑작스레 불편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밖을 나가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전처럼 편하지 않았다. 가끔 집 밖을 나서기 전 핸드폰 다음으로 마스크를 챙겨야 한다는 것이 어색했다. 깜빡해서 1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것을 반복하기도 했다.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버리는 것도 면 마스크를 매일 빨아서 쓰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 게다가 안경을 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하니 눈앞이 뿌옇게 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마스크 위에 안경 등을 올려도 사방에서 숨이 새어 나온다. 새삼 숨을 쉰다는 감각을 느끼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눈이 녹고 겉옷이 얇아져 꽃이 피어났지만, 마스크를 끼고 계절의 향기를 맡기는 어려웠다.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마스크가 좋은 날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심리상담센터를 가는 날이다. 직장 상사의 폭언과 가스라이팅으로 힘겨웠고 잘 살기 위한 마음으로 지난 2월부터 상담센터를 다니고 있다. 상담 선생님과 마주하고 '이번 주는 어땠냐'는 질문부터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인사를 하고 나오기 직전까지 울면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면 내 앞엔 눈물과 콧물을 닦은 휴지가 한가득하고 얼굴이 울긋불긋해져 부어있다. 잠시 어쩌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 옆에 놓인 마스크를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내 모습을 무차별적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안도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끼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도착하면 울기 전에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이 시간을 몇 번을 더 보내야 하겠지만, 이런 날엔 마스크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주변에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화장실에서 숨어서 울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하루 종일 감정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카페 직원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싶지만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얼굴이 알려져서 가리지 않으면 불편한 유명인에게
마스크가 보호장치처럼 느껴지는 사람에게
마음이 아픈데도 정신과나 심리상담센터를 가는 것이 두려운 사람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유해물질을 직면해야 하는 사람에게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이다.
마스크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상담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산과 합정 사이 출렁이는 한강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