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엔 내게 그렇게 살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다.
인정한다. 나는 지금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고 있다. '회사 밖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손에 쥐고 열 갈래로 갈라진 길에서 서성인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게 없다기보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문제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하나라도 손에 놓지 않으려고 하니 동시에 여러 마음이 생겨난다. 내 안에서 상충되는 목소리들이 종종 부딪친다.
회사를 나오고 가장 많이, 자주 하는 생각이다. 돈, 돈, 돈. 모아둔 돈을 까먹고 있자니 간이 점점 작아진다. 최근에는 커피 믹스 대신 커피 원두만 따로 담긴 큰 통을 샀다. 하루 한두 잔, 집에서 마시는 커피의 값도 커 보인다.
그래서 수시로 아르바이트를 찾아본다. 근데 입맛에 맞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는 어렵다. 이동시간과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집 근처 동네여야 했고 프리랜서 일과 개인 작업을 위해 주 3일 정도 오전에 4-5시간 정도 일하고 싶었다. 근데 대부분 아르바이트는 주 5일 8시간 근무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거면 정규직으로 사람을 제대로 뽑지 싶은 것들도 아르바이트로 올라와있다. 최근엔 코로나 19로 늘어난 택배 물량을 담당해줄 택배기사를 찾는 공고가 정말 많고 시급이 높은 건 야간에 일하는 것들이었다.
노동자는 자신의 시간을 돈과 바꿔서 살아간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포기해야 하고, 시간을 얻기 위해서는 돈을 놓아야 한다. 입맛대로 내 시간을 확보하면서 돈을 벌기란 쉽지 않다.
성공이란 뭘까. 성공에 대한 상상력이 그리 넓지도 높지도 않다. 지금 내게 성공이란 내 일을 한다는 감각으로 흥미로운 작업을 지속해내는 것. 그리고 한 달을 살아가고 그다음 달을 그려볼 수 있는 정도의 수익을 얻는 것. 사실 이게 큰 꿈은 아니지만, 이루려면 어렵다.
이 어려운 것을 해내려면 무언가에 올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잘되는 것보다 실패가 쉽게 그려져 시간과 에너지를 한 곳에 쏟는 게 두렵다. 게다가 하고 싶은 게 많은 이 상황에서 어떤 것에 몸을 던져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를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일례로 영화 <벌새>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쉬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올인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을 하지 않으면 어떨까 하며 다른 길을 찾는 이 겁쟁이 같은 나를 마주하게 되는 요즘이다.
회사를 다닐 때, 소속감은 내게 안정감 같은 것이었다. 계약서를 찢으면 사라질 허상 같은 안정감이었지만 그게 자연스럽고 편했다. 스타트업에서 풍기는 으쌰 으쌰 하는 분위기에 취하기도 했고, 한 배를 탄 동료들이 나와 비슷하다고도 생각했다. 서로 직군이 다르더라도 회사가 잘되길 바라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소속감을 느꼈다. 그러나 회사를 나오니 어디서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다. 언덕 위에 오로지 혼자 서있는 기분이었다. 잠깐이면 괜찮지만, 이 상태로 긴 시간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 들어갔다.
먼저 지난 3월부터 명상 커뮤니티 <왈이의 마음단련장>에서 온라인 모닝멍상을 지속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맞아 화상미팅 앱 줌(Zoom)으로 내 방 침대 위해서 함께 명상을 한다. 메신저 기능의 슬랙으로 마음을 공유하기도 하고 3시의 홈 미션을 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함께 명상을 하고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매일 잠깐이라도 누군가와 연결되어있음을 느낀다. 자주 이 작은 연결이 참 힘이 된다.
이번 4월부터는 밀레니얼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인 <빌라선샤인> 시즌 4에 참여한다. 한 푼이 아쉬운 마당이지만 모아놓은 돈으로 참가비를 냈다. 이곳엔 왠지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거 같았다. 이곳에서 일로 자아실현을 꿈꾸고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이 세상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을 보며 자극도 받고 재밌는 작당도 해보고 싶다. 아직 첫 온라인 모임이 시작하지 않았지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미 소속감 충만한 뉴먼이 되었다.
이번 달에 글쓰기 모임도 하게 되었다. 너무 막연하게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근데 혼자 쓰니 자꾸 지우고 바꾸고 포기하기 일쑤였다. 어떤 쓰레기를 적으려고 이렇게 고민하는지 한심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한 번은 소설을 완성해보고 싶었다. 그 소설이 엄청 좋거나 훌륭하지 않아도. 이를 위해 글쓰기 동지들이 간절했고 마침 트위터에서 글쓰기 모임에 대한 트윗을 보고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고, 쓰고 싶어 하는 6명이 모인 카톡방이 만들어졌다. 어떤 사람은 시나리오를, 누군가는 소설을, 또 누군가는 에세이를 써가겠지. 글을 써보겠다고 고군분투할 나와 같은 사람들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
나를 움직이는 건 불안한 미래일 때가 많다. 오늘은 일이 있지만 내일은 없다면, 언젠가 내 자리를 누군가로 대체한다면, 내가 아프고 병이 든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자꾸만 오늘을 희생해서 미래를 준비했다. 그렇게 수능에 나를 갈아 넣고, 취업 준비로 또 희생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만의 오늘이 사라졌다. 오늘을 버티면 내일은 덜 불안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내일이 다시 오늘이 되고 그다음 날이 또다시 오늘이 되었다. 오늘을 희생하면 미래도 희생하게 되는 것을 경험했다. 여전히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머나먼 미래에 가있는 생각을 자꾸 지금 여기로 돌아오도록 노력하고 있다. 바쁘더라도 아침 햇살이 눈부신 요즘엔 30-40분은 산책 겸 운동을 해준다. 무기력해도 하루 세 번 끼니를 잘 챙긴다. 그리고 수시로 내가 여기 이곳에 존재함을 느끼려고 한다. 잘 안되지만 계속해본다. 여기서 포인트는 포기하지 않는 것! 자꾸 지금의 나, 오늘의 나를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맞다. 나는 혼란스럽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마치 사춘기 시절 같기도 하다. 그때와 다른 점은 명확하게 정해도 경험하면서 생각은 또 바뀌고 세상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시기에 차근히 내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다. 그럴 듯 해 보이는 거 말고, 사회가 바라는 모습 말고 내가 정말 살아가고 싶은 하루가 무엇인지. 어떤 길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싶은지 생각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그렇게 살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다. 그 하루를 감당할 용기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