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회사가 아니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주머니 속에 당분간 넣어두고.
정말 회사가 아니어도 괜찮아?
회사 밖에서 살아간 지 2개월 차이다. 한 달은 모아둔 돈으로 생활하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2개월 차가 된 4월에는 지인의 소개로 펀딩 프로젝트 기획 및 내용 구성 작업을 진행했고 소소하게 가지고 있는 책을 중고책으로 판매하면서 살았다. 아직 정산은 안되었지만 5월 초쯤이면 소박한 한 달 생활비 정도는 들어올 예정이다. 그래 봤자 아직은 카드값과 한 달 관리비는 충당이 안된다. 날이 풀렸는데 기분 좀 내볼까에 대한 선택지는 친구를 만나서 맛있지만 비싸지 않은 음식 먹고 카페를 가는 정도.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기도 부담스럽고 사고 싶었던 그 향수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치스럽다. 다음 달을 위한 저축은 정말 꿈에도 꿀 수가 없다. 이렇다 보니 자꾸 내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 다달이 돈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힘들어도 미래를 계획해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게 내게 안정감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회사 밖에 있으면서도 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해보고 안되면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지 라고 가벼운 척 허풍을 부리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이전보다 더 큰 조직에서 정시퇴근을 하면서 일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고민한다. 혹은 회사에서 일하는 건 정말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철저하게 구분 짓는 하루도 그려본다. 그럼에도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다.
매니저십을 고민하며
그냥 리더가 돼 보기로 해
그러던 중 지난 주말에 참여한 빌라선샤인에서 '매니저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스피커(강연자)인 10년 차 매니저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간 '매니저십' 이야기가 꽤 흥미로웠다. 스피커는 세상엔 리더십에 대한 논의나 이야기는 많은데 매니저십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고 나도 매니저, 너도 매니저, 모두가 매니저라면 그 매니저 라는 것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매니저의 책임감은 주인의식이 아니라며 회사 안에서 내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만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내가 성장시키는 내 회사'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높지 않은 월급에 좋은 복지도 안정성도 없는 곳에서 내 일을 주체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것에 엄청난 점수를 줬던 것 같다. 그래서 일을 주체적으로 하는 것을 너머 회사의 미래를 그리며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스타트업을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 왜 이렇게 야근이 많냐, 초과 근로 수당은 주는 거냐 라는 말을 해도 그 고생이 내 성장이 되고 회사의 성장이 될 거라 믿었다. 결국 회사의 성공이 나의 성공인 양 생각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여러 회사를 다니고 나서야 그때의 내가 얼마나 순수했는지 알게 되었다. 스피커가 한 그 말은 되새기며 누군가 진심으로 내게 이 말을 해줬다면 어땠을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리더가 리더의 역할을 잘하고 매니저가 매니저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며 리더가 못하는 일을 매니저인 내가 했다는 것이 잘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고 말했다. 매니저가 할 일은 리더의 모호하고 애매한 비전이라도 실제로 일이 되게끔 만들어내는 대응력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초반에 나눠준 문장이 떠올랐다.
매니저십 강연을 들으며 리더에 대한 생각을 했다. 매니저십을 키우고 좋은 매니저가 된다면 그다음은 무엇일지 생각했다. 매니저십을 잘 키운 매니저가 되는 것도 정말 좋지만 그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고 그다음이 뭘까 생각했을 때 '리더'가 떠올랐다. 근데 좋은 리더가 되려면 먼저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겪어봤지만 완벽하게 준비된 리더는 없었다. 그들도 리더가 되고 나서야 하나씩 터득하게 된 것들이 많아 보였다. 그렇다면 '나도 리더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로또에 당첨되면 하고 싶었던 걸 해보자.
아직 당첨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친구와 유치한 장난을 치며 로또에 당첨되면 뭐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대답에 책방을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로또에 당첨된다'는 말은 네가 앞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롭다면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과 같다. 내 중심엔 책이 있었다.
시간이 나면 좋아하는 작은 책방에 가서 책을 사는 것이 내게 만족감 높은 경험이었고 홀로 방에서 책을 볼 때 안정감을 느낀다. 소설가를 꿈꾸고 또 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책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받으며 나에게 중요한 가치관들을 형성했다. 뭔가 돌고 돌아온 거 같은 기분이 들지만 책과 관련된 내 일을 해나간다면 어떤 일보다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벌고 싶다면, 그런데 매니저십으론 충분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내가 리더가 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졌다. 여전히 한쪽 주머니 꼬깃꼬깃한 쪽지에 '회사가 아니어도 나는 정말 괜찮을까'라는 말이 적혀있다. 근데 일단 그건 주머니에 당분간 넣어놓으려고 한다. 그리고 거창하지 않은 나다운 브랜드를 조금씩 준비해보려 한다. 그게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 중심엔 책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