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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Jan 23. 2021

내리막 세상에서 영원히 청년일지 모르지만

조직 밖 노동자가 읽은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말이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직장에 들어서고도,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으로 옮겨가서도 '내 자리를 찾았다'는 감각은 생겨나지 않는다. 나이가 얼마든 간에 여전히 청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책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중



얼마 전, 도서관에 갔다가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라는 책을 빌렸다. 이 책은 초반부터 주옥같은 문장이 가득했다. '이 사람,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가 나갔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말이 빼곡히 적혀있었고 이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전, 졸음이 덕지덕지 붙은 눈을 붙잡고 몇 분이라도 읽었고 눈을 뜨면 침대 맡 조명을 켜고 또다시 책을 집어 아침 먹기 전까지 읽었다. 공감되는 문장을 보면 인덱스 포스트잇을 붙이곤 하는데 이 책은 표지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글을 읽으며 안도감이 들기도 했고 한여름 땀이 나던 어느 날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같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말이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4곳의 직장을 다녀도 '여기가 내 자리구나'하는 감각은 오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번듯한 직업을 가지는 나를 그려왔었다. 학생 때는 좋은 대학이 인생의 만능열쇠인 것처럼 공부했고 대학을 다닐 때는 경제학 전공 공부가 재밌어서 이게 내 적성이라 생각했다. 학교 다니는 내내 학술학회에 참여했고 방학마다 금융 자격증을 따고 학술대회도 나갔다. 그러면서 그리 괴롭지도 않았다. 다 나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 즐기기도 했다. 졸업 후 금융회사에 다니는 그럴듯한 나를 곧 다가올 현실인 양 받아들였다. 그런데 웬걸 겨우 합격해서 들어간 은행 인턴의 시선으로 본 금융회사는 생각해왔던 곳이 아니었다. 조직 내에서 성별로 인한 차별이 뿌리 깊었고 매일 아침 회의로는 '카드를 몇 개 팔아야 하네, 계좌를 몇 개 열어야 하네' 하며 영업 압박이 일상이었다. 대출 성과를 위해 협력 직원에게 대출을 받으라고 종용하는 모습을 보며 내 미래는 여기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방향을 틀어 금융 스타트업에서 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기존의 금융회사와는 전혀 다른 조직 성격과 혁신적인 상품으로 이 회사가 언젠가 금융업을 변화시키고 선두를 서리라 여겼다. 그런 자부심으로 첫 회사를 내 전부처럼 다녔다. 회사의 성장이 내 성장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스타트업을 다니는 사회초년생의 순진한 모습이지만, 돌아봐도 그때처럼 일이 즐거웠던 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자연히 확고했던 생각이 여기저기 부서졌다. 내가 하는 일이 전처럼 재미있지 않았고 회사 성장이 내 월급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직 내에서 의견을 낼수록 미운털이 박히고 변하는 것은 없었다. 변하는 것이 없으니 나 역시 아무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4곳의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여기가 내 자리구나'하는 감각은 오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찾아 헤맸는데 여태껏 느끼지 못하고 난 여전히 청년이다. 그리고 이건 나만 느끼는 감각이 아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모든 순간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



윗세대처럼 밥벌이 하나로 버티면서 10~20년을 한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맑은 얼굴로 호기롭게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말하는 사람을 좇아갈 정도로 순수하지도 않다. 돈을 벌어 생활하는 것에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하루의 대부분 시간에 무언가를 누르면서 지내고 싶지도 않았다. 때문에 직무도 바꾸고 여러 번 이직도 하며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 나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엄마는 '너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 라고 말한다. 그럼 매번 할 말이 없어진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좋아하는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는 일 중에 어떤 건 재밌기도 하지만 어떤 건 돈을 벌어야 하니까 참는 것도 있다. 마음에 끌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하던 일이다 보니 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일을 하는 모든 순간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의 결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가만히 있다가 발이 밟힌 듯 아니라고 움찔하게 된다.


'일'이 뭐라고. 그 일 때문에 매번 불안하고 고민하고 만족했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런 내가 유난스러운 건가, 진득하지 못한 걸까, 만족을 못 하는 건가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찰 때도 있다. 그러나 '일'이라는 단어 하나 안에 복잡다단한 결을 하나씩 집어주는 이 책 덕분에 내 고민이 괜한 것이 아니고 이 시대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때문에 명확한 해결책이 없는 내용임에도 속이 시원했다. 생각해보면 '일'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이렇게 하라고 소리치는 말이 많을 뿐 일에 대한 고민은 왜 끝이 없고 안정감을 느낄 수 없는지 말해주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물론', '사실', '그렇지만', '어쩌면'. 수많은 부사로 이어지는 문단을 보며 내가, 네가, 우리가, 인간이 이렇게도 복잡한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내리막 세상에서 영원히 청년일지 모르지만


그리고 나의 지금을 설명할 문장을 얻었다.


"자신에게 좋은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그것이 일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책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중



결국엔 지금 나는 일로 생활도 꾸리고 만족감도 채우며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든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 일이 나와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찾아 나서는 상황이며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일과 그 방식을 시도해보는 시간이 내겐 지금이다. 책 구절처럼 일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면 내리막 세상에서 어쩌면 영원히 청년일지 모르는 우리가 좋은 일을 찾는 과정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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