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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소한

말할 수 있다면 비밀이 아니지

마음속 깊숙이 묻어둔 이야기

by 홍슬기


요즘 나의 온 신경을 건드리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걸 한 가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지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말할 수 없다.



나는 너무 화가 날 때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

감정이 사그라들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 말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아픔의 그 순간에는 오로지 혼자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아끼는 건 나뿐이기에,

홀로 그 시간을 견뎌내고 훗날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없다.

이건 지금 나의 비밀이니까


비밀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



현재의 비밀을 껴안고 있다 보니 과거의 비밀이 떠오른다.

과거의 비밀은 지금 생각하면 눈썹 한가닥도 움직이지 않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었고, 친하게 지내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 속에서 나 혼자만 떨어져 몇 개월을 지낸 적이 있다.


당시 친했던 무리는 7-8명쯤 되는데, 사실 4명 이상이 무리 지어 다니면 그 속에서 또 진짜 친한 친구와 덜 친한 친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그 무리 중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자주 다퉜고 또 자주 화해하곤 했다. 문제는 그 다툰 시점마다 나 혼자만 무리 속에서 덩그러니 혼자가 되었다. 갑자기 급식을 같이 안 먹거나 하는 건 아니었는데, 내가 그 속에 있어도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랄까.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나랑 다툰 그 친구가 의도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만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 자주 반복되었고 나는 2학년으로 올라가던 그 시점 그 친구와 아예 단절하기를 원했다. 그게 나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내 기억으로는 1-2개월은 급식을 거의 먹지 않고 쉬는 시간이나 다른 시간에 매점에서 빵을 사 먹곤 했던 거 같다. 혼자 내려가서 급식을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당시 고등학교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그건 누가 봐도 내가 왕따요. 나는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숨어서 밥을 먹었다. 아무도 내가 혼자인지 모르게. 그래도 티가 났겠지만


그리곤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어떻게 다시 친구들을 사귀게 됐는지. 그냥 자연스럽게 나는 친한 친구들이 생겼고 지금까지도 나의 인간관계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든 내 곁에 있어줄 사람 1-2명쯤은 있으니까 그거면 된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나 덤덤하게 또 공공연하게 왕따를 당했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또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이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글썽였다.

꽤 오랫동안 아파했었다.


과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 이제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졸업했지'와 같은 일이 되었다.


지금의 이 비밀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만약 그때가 되면 또 이곳에 과거가 된 비밀을 털어놓을까 한다.


덤덤하게 아주 사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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