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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소한

모순덩어리 세상을 그린 영화

영화 '옥자'를 본 후 떠오른 수많은 생각들

by 홍슬기
한 명의 관람객으로서 봉준호 감독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하 글에는 영화의 상세 내용이 서술되니 스포를 원치 않는다면 글을 읽지 말아 주세요.



모순이란,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모순되다


낸시 미란도는 모순덩어리다. 아버지가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며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을 만들고 억지로 교배시키며 대량으로 그 동물들을 죽였다. 그녀는 그것을 친환경, 친자연적이라고 속이며 사업을 키워나갈 야망을 품고 있다. 그렇게 비난했던 아버지와 그녀는 다를 바 없는 존재이다.


제이도 모순덩어리다. 그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의 일원으로서 생명의 존엄함을 실천해왔다. 실험실, 공장 등에서 학대를 당하는 동물들을 해방시켜주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 그 과정에서 대치되는 적들을 공격하면서도 해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ALF의 40년 전통을 해쳤다는 이유로 그의 동료를 무참히 폭행했다.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며 동료를 발로 밟은 그 역시 모순되다.


미자도 모순덩어리다. 미자는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원리로 가족처럼 아끼던 옥자를 잃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옥자를 구해냈지만 그 원리 역시 자본주의다. 가족인 옥자를 돼지 모양의 순금으로 사들인 것. 물론 그것이 미자의 최선이 선택이었지만 미자 역시 자본주의 순응하고 마는 모순덩어리다.


나 역시 모순덩어리다. 옥자 영화를 보고 식욕이 뚝 떨어지며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채식을 해본 적이 없는데 잘할 수 있을까?

채식주의자들도 생선은 먹는 채식주의자, 식물성만 먹는 채식주의자 등으로 분류가 나눠진다고 하던데 나는 어떤 걸로 해야 할까?

왜 인간은 식물처럼 광합성만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까?

식물도 생명인데 생명의 존엄함을 위한다면 식물도 먹어서는 안 되는 걸까?


깊은 고민인지, 자기합리화인지 모를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래 나 역시 모순덩어리다.


봉준호 감독을 세상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 우리는 모두 모순되다. 아프리카 기아들을 위해 기부를 하며 고기를 먹는다. 우리가 먹는 그 고기를 만들기 위해 동물들은 학대되고 또 그 동물들을 키우기 위해 수많은 곡물들이 투입된다. 그 곡물만 있으면 아프리카에 기아는 없을 텐데 말이다. 그는 영화 '옥자'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모순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인지 보여줬다. 이건 영화일 뿐이고 나는 달라!라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모순적인 존재임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살아가야 하는지
영화 '옥자'는 그 고민의 끝이 아닌 고민의 시작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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