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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Nov 02. 2017

한 권의 책과 같은 '완벽한 날들'

속초 완벽한 날들 BOOK & STAY


흘러가는 가을 날씨가 아쉬웠고 혼자 조용히 떠나고 싶었다. 여기저기 차 타고 구경 다니기보다는 책 읽다가 지루해지면 동네 산책을 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완벽한 날들 BOOK & STAY 였다. 메리 올리버의 책 '완벽한 날들'의 이름을 따온 이곳은 서점과 게스트하우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곳이 생긴지는 1-2년 정도 된 거 같았고 블로그에서 그들의 흔적을 남기며 소통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다소 딱딱한 어투보다는 '서점 일기'라는 주제로 편하게 일상을 적어 사장님의 다이어리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지금에 대한 어느 정도에 만족감들이 섞인 한탄 같은 그 일기가 지금의 나와 같았다.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끼며 소소한 기대를 안고 그곳으로 갔다.



꽤 괜찮은 카페



속초에 온 제1의 이유는 여유롭게 책을 보며 머물 곳이 필요했다. '완벽한 날들'에는 1층에 서점이 있으니 고민할 것이 없었다. 또한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속초에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괜찮은 카페였다. 속초에 카페가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괜찮은 카페'가 부족했다. 내가 말하는 '괜찮은 카페'란, 커피가 맛있고 아늑한 느낌을 내는 조명이 있어야 하며 실내가 너무 복작복작하면 안 된다. 관리가 된다는 느낌으로 신뢰감을 주며 내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겠다 라고 생각이 드는 곳이다. 말해보니 참 어려운데, '완벽한 날들'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크지 않은 서점이지만 시부터 철학책까지 분류가 다양하고 색다른 그림책들도 구비되어있었다. 커피 등의 음료도 제공하며 그 맛도 좋았다. 오래 머무른다고 눈치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이곳에서 오래 머물며 책을 보고 쉬어가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책장 사이사이 책과 어울리는 문구들이 옆에서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느낌이었다. 또 이곳은 동네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해서 가만히 앉아 동네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는 재미도 있었다.




한 권의 책 같은 게스트 하우스



서점도 그렇지만, '완벽한 날들'의 게스트 하우스에는 여러 글귀들이 벽, 방문, 창문 등에 새겨져 있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붙인 듯한 그 글귀들은 그 순간, 그 공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공용 공간 가운데 테이블 서랍에는 이전 여행자들, 사장님의 손때 묻은 책들이 있었다. 한쪽 벽면은 방문자의 메모, 손편지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글 하나하나가 짧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옥상에서 본 글귀와 풍경이 참 인상 깊었다. "모든 사람은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라는 세계 인권선언 제24조를 보며 나의 이유 없는 떠남에 정당성을 찾은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의 휴식과 여가를 제일 마지막에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있다!



우리가 뭘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햇빛을 쐴 수 있는 테라스, 노을을 볼 수 있는 루프탑, 나만의 영화를 만들어주는 빔프로젝트, 아기자기 마을.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겠다. 우리는 어딜 가든 밖이 보이는 창밖을 선호하며 비싼 와인을 사더라도 이태원의 루프탑을 사수하려 했다. 집 꾸미기, 오늘의 집 등에만 보이는 그 빔프로젝트를 언젠간 사겠다고 다짐하며 하트를 눌렀다. 제주도의 아기자기한 마을을 여행하며 이런 곳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이곳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있다!



나는 특히 1인실을 사용하여 빔프로젝트가 제공된다는 말을 듣고 기대했었다. 좋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USB에 담아 가며 늦은 저녁에 이 영화를 혼자 다 보고 자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빔프로젝트 화면이 침대에 완전히 누워야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완전히 잠을 자는 자세로 영화를 보았다. 결론은 초반 20분을 보다가 꿈뻑꿈뻑 맥락 없이 영화 내용이 바뀌게 되었다. 잠을 잤다는 소리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게 제일 아쉬웠는데 그런 내 모습이 참 웃기기도 했다.







혼자 여행 오면 시간이 많은데, 특히 밤 시간이 한가하다. 그 시간에 '완벽한 날들' 방문자의 손편지들을 하나하나 읽었는데 이런 글이 있었다. '속초는 부산과 제주를 섞어놓은 거 같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바다가 있지만 부산처럼 와글와글 도시 같지 않았다. 제주처럼 아기자기하지만 차 없이도 두 다리로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었다. 부산과 제주의 장점만 쏙쏙 뽑아 적절히 잘 섞어놓은 곳이 바로 속초다.



낮에 서점에서 얼핏 들으니 이곳이 아직 장사가 잘되지는 않는 거 같았다.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는 그 말이 괜히 아프게도 느껴졌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이 좋은 곳이 혹여 사라지지 않을지..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도록, 오래오래 '완벽한 날들'에서 완벽한 날들을 보낼 수 있도록 꿋꿋이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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