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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Dec 12. 2017

비주류를 품어주는 동네책방

독립 책방 '초판 서점'과 시집 책방 '위트앤시니컬'


언제부터인가 동네책방이 점점 늘어간다는 소식을 들으며 동네책방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책으로 구성된 편집숍 혹은 서적 큐레이션 그 자체인가 아니면 크기가 작다는 것뿐일까. 동네 책방의 이유를 생각하는 건 책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책을 인생의 변곡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내 삶 때문이다. 사랑하는 책이 있는 공간이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곳이길 원치 않았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생겨나는 동네책방의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고 싶었다. 호기심에 시작된 관심은 나를 여러 동네 책방으로 이끌었고, 책 혹은 서점을 주제로 다룬 매거진을 사서 보게 만들었다. 그 과정 속에서 기억에 남은 책방과 그들의 존재 이유를 적어보려 한다.





스토리지북앤필름의 두 번째 책방, 초판 서점



초판 서점은 스토리지북앤필름의 두 번째 책방으로 홍대와 망원 어느 중간에 있는 동네책방이다. 스토리지북앤필름은 독립출판, 독립서점에 관심이 있다면 알게 되는 첫 번째 책방이다. 이는 2008년 필름 카메라 판매로 시작해 독립출판과 독립출판 관련 워크숍을 진행하는 오래된 독립 책방이다.


우선 '독립출판'에 대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독립출판이란, 대형 출판사를 통한 일반적인 책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 혹은 소수가 기획, 편집, 인쇄, 제본까지 직접해 책을 출판하는 것을 말한다.


독립출판은 기존에 정해진 책의 형식에 지루함을 느끼며 생겨났고 자신의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되었다. 이 독립출판은 책 기획부터 인쇄, 유통까지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진행해야해 개인적인 시간과 금전적인 비용이 상당히 투여된다. 또는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해 사전에 펀딩을 받아 비용을 줄이는 사례도 많다. 이외 독립출판물 유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독립서점'이다.


국제표준 도서(ISBN)를 받지 않은 독립출판물은 대형 서점에 유통할 수 없고 또한 인지도도 떨어지기에 입고를 해도 판매가 되지 않는다. 이에 독립출판물 창작자들은 독립서점에 입고 문의를 해서 유통을 하고 있다.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독립출판물이 많아지면서 독립서점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러한 독립출판의 역사에서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오래된 독립서점으로 유명하다. 초반에는 자체적으로 선별하는 것 없이 입고 문의를 하는 모든 독립출판물을 받아주었다고 한다. 이는 이 책방이 독립출판물을 응원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입고된 수많은 독립출판물 중 이 책만은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초판 서점'을 만들었다고 한다.




| 독립출판물 창작자를 응원하는 책방


초판 서점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나 역시 독립출판물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맞는 지인과 공부를 하며 우리가 경험한 것을 흘려버리지 말고 기록해서 독립출판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말은 했지만, 독립출판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기획을 하고 콘텐츠를 만들어가면서 이후 과정에 대한 막막함이 느꼈다. 그때 SNS를 통해 초판 서점에서 독립출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상담시간을 마련한다는 안내를 보았다. 영업시간 내 방문해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답례로 책방에서 서적을 1권 정도 사달라고 말했다. 때마침 좋은 기회에 다음날로 초판 서점을 방문했다.



간판도 없이 포스터 같은 서점 안내를 보고 한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15평쯤 되는 공간에 반은 작업실, 반은 초판 서점이었다. 들어오면서 눈인사를 건네니 사장님이 상담하러 오셨냐고 하며 친절히 맞아주셨다. 동그란 작은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며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냈고 편안하고 상냥하게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셨다. 상담을 하면서 독립출판 창작자를 위한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일시적으로 진행했던 해당 독립출판 상담은 그다음 주부터 매주 진행되었다.




| 독립출판물을 위한 책방




초판 서점에 있는 대부분의 책은 독립출판물이다. 비슷한 책을 찾기 힘들 정도로 독립출판물은 각자의 개성을 뿜어낸다. 그 책들에 걸맞게 초판 서점 역시 네모반듯한 책장뿐 아니라 동그란 탁자, 비스듬한 책장, 작은 직사각형으로 구성된 책장 등으로 책을 더욱 돋보이도록 구성했다. 또한 전등이나 액자, 작은 소품으로 그만의 감성을 만들고 있었다.


독립출판물은 동네책방이 아니면 사람들을 만날 공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초판 서점의 존재는 소중하다. 처음에는 불친절하고 어색해 보였던 독립출판물이 찬찬히 살펴보니 숨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매력에 끌려 몇 권의 책을 샀는데, 그중 하나는 독립잡지인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이다. 현재 세 번째까지 나와있고 둔촌주공아파트가 재건축될 때까지 계속 연재될 거 같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주공아파트에 대한 추억을 꺼내며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과거 둔촌주공아파트에 대한 기사, 재건축을 진행하는 전문가와 인터뷰 등으로 지루할 틈 없이 책이 진행된다. 책에 실린 사진만 봐도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혹시 독립출판물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한번 보면 좋겠다. 덧붙여 그 책을 초판 서점에서 찾아본다면 독립출판물에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 책방, 위트앤시니컬



위트앤시니컬은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 책방이다. 이곳엔 시집과 시인이 쓴 책 혹은 문학계와 관련된 콘텐츠들이 있다. 신촌역 근처에 1호점을 내고 합정에 2호점을 냈다고 하니 수익이 아주 없는 건 아니란 생각에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대형 서점에서도 시집 코너를 가장 먼저 찾고 살펴본다. 그래서인지 시집을 다루는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참 많았다. 대형 서점이라고 해도 시집이 있는 공간이 협소하다. 그보다 작은 곳이나 동네책방에 가면 시집이 1~2권 혹은 아예 없는 곳도 있다. 시가 주류가 아니라는 건 나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그 무엇보다 주류인 시집이 설 자리가 없는 건 아무래도 속상한 일이었다.


내 속상한 마음을 달래줄 곳이 있었으니 바로 위트앤시니컬이다. 이 책방은 카페 파스텔, 프렌테 서점과 함께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는 브랜드 자체의 색깔을 내기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고 고정비를 낮출 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한다. 이에 프렌테 서점의 책들을 구경하다보다 위트 앤 시니컬을 만나게 된다. 커다란 책장이 모두 시집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습니다. 맞은편 계산대를 이용해주시겠어요? 고맙습니다. - 유희경 올림


내가 위트앤시니컬 신촌점에 방문했을 때는 유희경 시인이 자리를 비우고 있었는데, 그의 자리 앞에 놓인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자리를 비웠다는 말을 이렇게 상냥하게 할 수 있구나 생각하며 주인이 없는 그 자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 서점을 단번에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시인이 운영하기 때문이다. 시인보다 시집에 애정을 가지고 잘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 위트앤시니컬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




위트앤시니컬은 작지만 풍부한 경험을 느낄 수 있는 동네책방이다. 유희경 시인은 한 책장을 '오늘의 서가'로 정하고 매일 새로운 시집들을 선보이고 있다. 합정에 있는 위트앤시니컬에는 '오늘의 시집'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매일 시집 한 권을 소개하고 가격도 낮춰주고 있다. 매일매일 새로운 큐레이션으로 시를 소개하며 사람들을 반겨주는 모습이다.



또한 위트앤시니컬에는 '필사의 공간'이 있다. 이는 혼자 명명한 이름인데, 한 권의 시집, 노트가 놓인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 앉아서 시집 순서에 맞게 빈 노트에 시를 필사하는 것이다. 한 사람당 보통 한 편의 시를 필사하며, 시를 적었으면 끝까지 다 적고 본인의 이름도 기록해달라는 안내가 있다. 인터뷰를 찾아보니 시를 적은 이 노트는 시집을 만든 시인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내가 적은 시가 시인에게 전달된다니 펜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모든 게 다른 곳에서 볼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위트앤시니컬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다. 브랜딩이란 무엇일까 항상 생각한다. 브랜딩의 범위가 넓고 깊기에 그것을 간략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한 단어 말하면 '경험'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트앤시니컬은 그 '경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책방이라 생각한다. 핸드폰으로도 책을 주문하고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시대에서 동네책방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 중요하다.











비주류를 품어주는 동네책방



여러 동네책방을 방문했고 그중 초판 서점과 위트앤시니컬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비주류였다. 독립출판과 시집, 이는 주류가 되어본 적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될 수 없을지 모를 비주류다. 오직 '수익'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에서 이 비주류들은 발 붙일 공간이 없다. 그러나 먼지 속에 쌓인 책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여기며 새롭게 선보이는 동네책방의 노력 덕분에 책과 책을 만든 사람과 책을 보는 사람까지 혜택을 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동네책방의 존재 이유는 이 비주류를 품어주는 것이다. 자신만의 시선과 감각으로 아직 잘 모르지만 여기 멋진 책이 있다고 속삭이는 동네책방이 우리가 바라는 책방의 모습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위트 앤 시니컬에서 본 축하화환이 떠오른다.



시집 팔아 건물 사라 꼭


자꾸 떠오르는 건 이 말이 현실이 되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꾸자꾸 생각이 나는 건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이 동네책방들이 비주류인 독립출판물과 시집을 팔아 행복하고 즐겁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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