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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Jan 21. 2018

독립출판은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다

중학동 퇴사자의 '오직 경험으로'


우리 독립출판해볼까?



브랜딩을 공부하겠다고 회사를 나와 지인과 함께한 브랜딩 스터디를 했다. 처음에는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식주를 주제로 내가 애용하는 브랜드, 공부하고 싶은 브랜드 등을 골라 미리 조사를 하고 개인적으로 매장도 방문했다. 이후 우리는 만나서 조사한 것과 직접 느낀 것을 토대로 의견을 나눴다.


한 번은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를 공부해보자고 했었다. 파타고니아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아웃도어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이다. 자신들만의 철학이 매우 단단하고 깊은 곳이었다. 매장 역시 남달랐다. 할인하는 제품을 광고하거나 기능을 강조하는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와 달리 자신들의 스토리와 가치로 매장을 구성했다.


그런데 문제는 파타고니아 제품을 살 수가 없었다. 당시는 수입이 없었고 파타고니아 제품 자체의 가격도 높았다. 심플한 면 반팔이 5만 원이 넘었고 재킷 1개에 20만 원 이상은 기본이었다. 게다가 나는 액티비티 활동조차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파타고니아 제품을 사지 않고 매장만 둘러보고 돌아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파타고니아 제품을 입어보지도 않고 이 브랜드의 제품을 신뢰할 수 있을까? 실제로 경험한 사람의 말을 듣고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우리는 직접 방문하면서 느껴보고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에 관해 이야기하자고 했다. 직접 경험하며 나눈 브랜드 이야기는 깊어졌고 이것들을 대화로 흘려버리기 아까웠다. 그래서 기록했다. 그리고 이 기록들을 잘 묶고 정리해서 독립출판을 해보자고 했다. 이것은 진짜 독립출판을 하겠다는 말이라기보다 꾸준히 브랜드에 관한 공부를 하자고 의지를 다지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 하나의 무게를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내가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한번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해야 했다.





어떤 책을 만들지?




독립출판을 하자고 던진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기획'을 해야 했다. 


어떤 구성으로 할 건지, 어떤 주제로 브랜드를 풀 건지, 브랜드 선정기준은 무엇으로 할 건지 등 끝이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경험한 브랜드를 다루지만 그중에 이야기 나눌만한 좋은 브랜드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었다. 브랜드에 관한 책이지만, 만든 사람인 우리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들어가 있는 것이 중요했다. 책을 만든 사람이 우리이고 우리가 책에 반영되어야지만 의미가 있었다.


이에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을 소주제로 정하고 주제 스토리를 만들었다. 이 주제 스토리는 그 안에 실린 브랜드와 글, 사진에 대한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일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스토리로 이해한 주제에 대해 서로 이견이 없었고 한마음으로 선정한 브랜드와 글, 사진은 일관된 느낌을 주었다. 이후 정해진 주제 스토리에 걸맞고 좋은 경험을 제공해주는 브랜드를 찾기로 했다. 직접 경험해보고 2명 중 1명에게라도 좋은 경험을 주지 못한 브랜드는 책에 실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브랜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에세이 형식으로 글을 풀어 'Brand essay'라는 나름의 형식을 만들었다.






어떻게 만들지?



책 디자인 작업은 다행히도 파트너가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신세를 많이 졌다고 생각한다. 독립출판은 작가와 출판사가 해야 할 모든 일을 개인이 해내야 하는 것이기에 파트너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글쓰기를 잘한다면 그 외의 작업을 맡아줄 디자이너분을 찾아 함께 작업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또한 만들어진 결과물을 생각했을 때도 상호보완이 되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좋다.


책 작업이 마무리되면 인쇄를 해야 한다. 인쇄에는 인디고 디지털 인쇄와 옵셋 인쇄가 있다. 책은 부수가 많을수록 단가가 떨어지기에 보관장소가 있다면 최대한 많은 양을 한 번에 찍는 것이 좋다는 조언도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이 소장할 수량 이외에는 모두 판매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과도하게 많은 수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상대적으로 소량 수량에 적합하고 인쇄 기간도 짧은 인디고 디지털 인쇄가 우리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체 부수를 인쇄하기 앞서 1-2권의 가제본을 만들어 받아보며 수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제일 중요한 문제는 예산이다. 독립출판에 사용할 예산을 정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해내는 것이 무리하지 않는 방법이다.





어떻게 팔지?



책을 만든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사실 만들었다고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그걸 사주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이 책의 스토리를 알리고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고, 너에게 필요할 거라고 소리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팔린다.

 



책에는 고유번호가 있다. '국제표준도서번호'라 불리는 ISBN이다. 이 번호가 있어야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 입고가 가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번호를 받지 않았다. 독립출판이라도 이 번호를 받고 싶다면 받을 수 있다.


ISBN 발급절차: 출판사 신고/ 사업자 등록 > 발행자 번호 신청 > 도서번호 신청 > 바코드 발급


ISBN을 받으면 좋은 점은 책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점, 더 많이 팔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책을 추가적으로 만들지 미지수이고, 위와 같은 절차를 밟아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냥 우리는 브랜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책은 ISBN 번호가 없다.


이 ISBN이 없는 독립출판물의 경우 유통경로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텀블벅 플랫폼을 통해 후원을 받아 진행하는 방법과 독립서점에 입고 문의를 하여 판매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위 2가지 방법을 모두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텀블벅 플랫폼에 페이지를 만들어 후원을 받고 있다. 텀블벅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창작물이 세상이 나올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이 세계도 만만치 않다. 이 플랫폼엔 수많은 경쟁자가 있고 후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출판물과 함께 리워드를 제작하여 묶어서 파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텀블벅에서 경쟁하기 위해 남들이 하는 건 다 해야 했다. 책에 대한 스토리로 페이지를 꾸미고 엽서와 스티커 역시 따로 제작하여 후원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막상 해보면 책을 만드는 작업보다 이후 유통을 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할 말이 참 많지만 다 말하지 않겠다. 말하면 눈물이 조금 나올 거 같다.





브랜드를 공부하기 위해 브랜드를 만들다



독립출판을 진행하면서 책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책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인쇄하고 유통해야 했다.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프로젝트 네이밍도 필요했다.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추가적인 상품 기획 및 제작이 요구되었다. 텀블벅 페이지를 통해 단순히 우리 책을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후원자분들과 소통하는 창구를 마련해야 했다. 프로젝트 이름인 '중학동 퇴사자'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1주일에 2-3개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풀어놓고 실시간으로 작업의 진행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우리의 캐릭터는 진중하고 담백하며 오후 감성이 짙은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그 톤과 느낌이 나오도록 신경 쓰며 SNS 게시물을 작성한다.


이 모든 것들이 '독립출판'이라는 이름 안에 포함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일련의 모든 작업을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라 부르고 싶다. 그렇다. 우리는 브랜드를 공부하기 위해 브랜드를 만들었다. 아직 독립출판의 모든 작업이 끝난 건 아니지만, 독립출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우리 책을 더욱 알리고 싶었다. 6개월 동안의 노력이 기분 좋은 성과를 내며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수고로운 모든 작업을 하는 이 세상 모든 창작자들을 응원한다.












- 독립출판물 이름: 오직 경험으로

- 창작자: 중학동 퇴사자 (홍슬기, 이보영)

- 인스타그램: @junghakdong_leave

- 텀블벅 페이지: https://tumblbug.com/junghakdong_le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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