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속초에서 서울로 올라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날은 1월 1일 새해로 도시 가득 들뜸이 지하철에서도 느껴지던 날이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다리를 절뚝이며 종이를 나눠주시는 할머니가 나타났다. 자리에 앉은 승객에게 그녀의 기구한 사연이 적힌 종이를 건네고 얼마 후 다시 돌아와 종이를 가져가셨다. 나는 그 몇 초 안 되는 순간에 얼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구겨진 종이, 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해 다리가 불구가 되었다는 사연,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라는 그 말, 절뚝이는 다리, 힘겨운 얼굴. 그렇게 할머니는 나를 스쳐갔고 다른 칸으로 넘어가면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셨다. 다가오는 할머니를 보고 미리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 종이를 집어 직접 건네준 사람도 있었다. 누가 누굴 평가할 수 있을까. 아무도 그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고 막막해지던 그때, 사는 게 뭔가 싶었다. 사는 게 뭘까? 나는 그분에게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왜 1월 1일 새해부터 누구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며, 누구는 지하철에서 종이를 건네주고 있을까? 사실 나는 이런 상황이 두 번째다. 1년 전인가, 다리를 절뚝이던 할머니처럼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종이에 적어 나눠주던 젊은 남성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얼어버렸고 멍해졌고 막막했다. 그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새해가 된 지금도 나는 그때와 다른 게 없구나, 나이를 먹었다고 더 나아진 게 없구나 새삼 느껴졌다. 그렇게 스쳐간 사람에게 마음을 쓰며 나는 내 걱정만 하고 있다. 막연하게 여유가 생기면 타인을 돌아봐야지 생각했지만, 참 이것도 핑계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