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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소한

누군가가 상처를 주고받는 순간

by 홍슬기


2호선 강남 방향으로 가는 출근길 지하철이었다.

사람으로 가득한 지하철에서 나는 핑크색으로 눈에 띄는 임산부 배려석 옆에 기둥을 잡고 서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내리고 앞에 서있던 한 남성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가 아닌 어떤 이가 앉는 것은. 게다가 사람이 가득한 상황 아닌가, 누구라도 앉고 싶어 했을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무심히 상황을 넘기고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임산부에게 양보하시죠!"



단호하고 굵은 목소리였다. 화난 감정이 섞여있다는 걸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누구에게 양보를 해요?"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셔야죠!"

"임산부세요?"

"안보이세요?!"

"아 네 못 봤네요...."



두 남자의 말소리가 오고 가고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남자가 일어났다. 그 자리에는 긴 머리에 안경을 낀 한 여성이 앉았다. 가방에는 커다란 임산부 표시를 부착하고 있었다. 배가 많이 나오지 않은 그 여성 역시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는 길이었으리라.

자리에 앉은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쌓인 게 터졌을 것이다.

단지 지금 이 상황 때문에 눈물이 쏟아지는 건 아닐 것이다.


임신을 하고 몸은 나날이 변하고 힘들어지는데 출근을 계속해야 했을 것이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지 못한 날이 여러 날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속상했고 그래도 몰라서 그랬겠지 하며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도 힘들어지는 날이 많아지자 임산부 표시를 가방에 부착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 표시 하나면 배려를 받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날 역시 많았을 것이다.


집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동료에게, 가족에게 조금씩 서운한 마음들이 쌓였을 것이다.

임신이라는 것이 자신 혼자만 힘들고 버겁게 느껴지는 상황에 답답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 그녀 앞에서 오늘 역시 임산부 배려석은 멀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앉아있는 사람에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을 것이다. 임산부 표시가 보이게 가방을 앞으로 당겼을 것이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자기 옆에 서있던 남자가 앉아있는 남자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자신이 바란 것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당황하고 놀랐을 것이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이 잘못이지만 저렇게 화를 낼 것은 뭔가. 왜 나는 저 사람에게 내 권리를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복잡한 마음들이 교차하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을 것이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앞날이 무서웠을 거 같다.

앞으로 이런 크고 작은 일이 얼마나 더 있을까?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상처를 주고받는 순간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일면식 없는 그녀가 내 또래 같아보였고 그래서 더욱 속상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말들이 있었다. 나에게도 충분히, 너무도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을 일이기에. 내가 겪지 않았지만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에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순간은 항상 이런 식이다.

몰라서 상처 줬고 몰라서 상처받았다.

몰라서 상처를 줬다고 해서 그 상처가 사라지거나 옅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사과를 하면 좋지 않았을까?

임산부 배려석에서 일어선 남성은 그 여성 앞에 서서 혼잣말만 되뇌고 있었다.

"아.. 몰랐네. 몰랐네.."

'죄송하다.' 한마디면 될 것을 ‘몰랐다.’는 말만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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