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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Apr 14. 2018

아직 쓰이지 않은 책, 몰스킨

매거진B로 브랜딩 공부하기 #2


2주에 한 번씩 사람들과 모여 매거진B로 브랜딩을 공부하고 있다. 오직 브랜딩으로 모인 사람들이지만,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해 꽤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부분에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분에게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날짜에 맞춰 같이 읽을 책이 정해져 있고 만나기 1주일 전에 해당 브랜드의 발제를 맡은 사람들이 함께 나눌 질문들을 고민해서 올려준다. 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해당 브랜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우리는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느낀 몰스킨



이번에는 '몰스킨'이었다. 사람들과 만나기에 앞서 이전에 나는 몰스킨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떠올려봤다. 스타벅스에서 주던 다이어리, 투박하고 심플한 모습, 정확히는 모르지만 비쌌다고 했던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몰스킨이었다. 나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고 문구류를 애정 하지만, 몰스킨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이름은 정말 많이 들었는데 왜인지 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일단 내가 느끼기에 외형적인 모습이 매우 투박했고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그 고무줄이 조금 촌스러워 보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거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알맞은 무인양품의 노트가 있었기도 했다.


그런데 매거진B의 몰스킨 편을 읽으며 찬사를 날리는 후기들을 보고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래서 강남에 큰 교보문고를 찾아가 몰스킨 코너를 처음으로 살폈다. 몰스킨의 크기가, 내지가, 색상이 생각보다 다양해서 놀랐다. 또한 네모 반듯한 수첩만 있는 줄 알았는데 타깃별로 커스텀 된 노트들이 있고 그 종류도 꽤 많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속에서 나는 하드커버에 다트로 내지가 된 손바닥만 한 검은 수첩을 선택했다. 계속 만져보고 고민했는데 그것이 좋았다. 돌아보면 널리고 널린 게 수첩이고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이쁘고 괜찮은 수첩이 꽤 많다. 그래서 2만 원이라는 가격을 주고 그 작은 수첩을 산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나는 몰스킨을 경험해보고 싶었기에 구입했다.


집에 와서 그 작은 수첩을 어떤 용도로 쓸까 하다가 필사 노트로 쓰기로 했다. 책 속 글귀, 나에게 감동을 준 문장을 적어서 몰스킨에 모아두기로 했다. 몰스킨을 쓰면서 종이의 질, 펜과 닿는 그 감촉이 생각보다 좋았다. 그리고 그 투박하고 촌스러워 보였던 그 모양이 왠지 금세 정감이 갔다. 이해가 가지 않았던 그 고무밴드가 수첩을 딱 잡아주어서 모양도 잡아주고 가방 속에서 마음대로 펼쳐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정도의 생각과 경험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모여 인사를 하고 저번 주에 발제한 순서에 맞게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토론을 했다.




몰스킨에 대한 감상


이쁜데 비싼 노트
스타벅스 다이어리
고급지고 비싼데 비싸서 안 씀
플래너로 사용
디자이너들은 특히 잘 활용-디자인북, 드로잉북
소모품이 아니라 오브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대체로 나와 공통된 이야기들도 많이 있었다. 나에게 새롭게 느껴진 경험을 몰스킨을 애용하는 디자이너들의 경험담이었다. 디자이너들에게는 몰스킨은 화방에서 본 수첩, 유명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수첩 등으로 이미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한 번쯤 사서 써보는데, 종이의 두께감이나 질이 좋아서 그림을 그릴 때 참 좋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품질의 수첩을 찾기가 힘들어서 그 이후로 계속 몰스킨을 써왔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누군가에게 몰스킨은 대체 불가능한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나에게 비싸게 느껴졌던 그 가격이 누군가에게는 합당한 가격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건 여담이지만, 독일 가격은 9천 원 정도라고 하니 우리나라로 들어올 때 마진이 꽤 붙는구나 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가격과 프리미엄의 관계를 분리하기 힘든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몰스킨이 꽤 비싼 가격에 위치하고 있어서 고급의 이미지를 가져가기 유리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몰스킨만의 그 '무엇'



Exhibition <Detour>


몰스킨은 몰스킨만의 방법으로 자신을 알리고 가꾸어가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디투어'이다.


'도시'와 '여행'은 몰스킨이 '크리에이터'만큼 사랑하는 키워드다. 비영리단체인 몰스킨 파운데이션을 통해 사회적 경험을 제공하는데, 세계 각지를 돌며 크리에이터의 몰스킨을 소개하는 전시 <디투어>도 진행했다. 밀라노 가구 박람회, 제11회 이스탄불 비엔날레 등을 큐레이팅 한 독립 레이터 라파엘라 귀도 보노가 기획한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관람객이 아크릴 눈으로 확인하고 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 몰스킨 속에 펼쳐진 크리에이터들의 아이디어는 단순히 메모나 스케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면 종이를 접거나 잘라 3차원 공간감을 느낄 수 있거나 전체 페이지를 조각하듯 도려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매거진 B 몰스킨 편 中


이 전시는 2013년 베이징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상태라고 하니 참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러나 몰스킨이라면 언젠가 다시 좋은 기회에 이 전시를 열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몰스킨을 단순히 기록하는 수첩, 다이어리로만 생각했다면 디투어가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브랜드를, 제품의 존재 이유를 깊게 고민해서 나온 결과물이라 생각했다.



몰스킨 카페


몰스킨만의 그 무엇 중에 하나인 몰스킨 카페에 대해 특히 많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몰스킨이 왜 카페를 선택했을까 하면 딱 부러지게 연결 짓기 힘들었다. 그러나 공간을 만든다는 게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한 몰스킨이 그 자체를 노트가 아니라 책으로 여겼기에 자연스럽게 여유를 즐기는 카페로 연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다. 마케터 입장에서는 유통채널의 차별화를 위해 기존의 서점이 아닌 카페라는 공간을 활용한 것이 아닐까 고민해보기도 했다. 이점에 동의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특히 몰스킨은 기존 수첩들이 판매되는 문구점에는 입점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직 서점 혹은 단독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만의 차별화를 추구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브랜드의 산업 확장은 그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다면 긍정적이고 칭찬받아야 할 모습이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몰스킨 한정판


몰스킨 한정판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한정판이라 내지를 살펴보지도 못한다' 혹은 '콜라보 한정판이지만 그것이 더 매력적이지 않고 오히려 별로였다.', '몰스킨이 이렇게 판매를 열심히 하려고 하는지 몰랐다.', '콜라보 한정판이 꽤 많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부분이 판매에 목을 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의견들 모두에 나 역시 동감한다. 한정판이라고 매력적이지도, 희귀하지도 않았다. 특징적인 부분은  콜라보를 하는 브랜드를 보면 다들 마니아층이 탄탄한 브랜드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몰스킨에 대한 인지도도 높이고 고객을 흡수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스토리텔링의 끝판왕

"나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공책을 꺼냈다. 기름을 먹인 천으로 감싸고 페이지를 고정할 수 있도록 고무줄을 달아놓은 공책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유의 공책을 '카르네 몰스킨'이 불렀다.

브루스 채트윈 <송라인> 中



몰스킨의 브랜드 스토리는 이 책의 한 글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반전은 저 몰스킨은 브랜드 이름이 아닌 프랑스 말로 검은 유포지를 사용한 표지를 뜻한다는 것이다. 과거 피카소와 헤밍웨이는 프랑스제 검은 유포지 노트를 썼지만, 그것이 우리가 아는 몰스킨은 아니다. 그러나 몰스킨은 매우 똑똑하게 이를 연결 지었다. 브루스 채트윈이나 피카소의 사진을 걸어놓고는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이라는 슬로건으로 빈 노트를 판매했다.


사람들에게 모두 다 창작의 욕구가 있고,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몰스킨은 우리의 이 마음을 이용한 것이다. '몰스킨을 피카소나 헤밍웨이가 썼다고 하니 나도 몰스킨을 사서 그들과 같은 수첩을 쓰고 싶다.', '그러면 나도 조금 더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허황심을 몰스킨은 공략한 것이다. 같이 이야기 나눈 누군가는 이것이 너무 말도 안 되는 뻥이라서 몰스킨이 싫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말도 무슨 말인지 알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봐도 몰스킨이 참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몰스킨이야말로 스토리텔링의 끝판왕이다.


화장품 브랜드들이 광고 모델로 매우 아름다운 여배우를 쓰는 이유, 어느 드라마 주인공이 사용한 가방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다 같을 것이다. 내가 저 물건을, 저 브랜드를 사용하면 나도 그들처럼 아름다워 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자극하는 것이다. 브랜드란 궁극에는 어떤 서비스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잡히지 않는 무형의 가치와 욕망을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몰스킨은 우리의 지적 욕망, 창작의 욕망을 자극했고 그것을 역사적인 인물과 엮으면서 단숨에 성장했다. 책 속의 한 글귀로 엮었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거대했다.








우리는 2시간 동안 몰스킨에 대해, 우리의 경험과 내가 하고 있는 기록의 행태, 다른 문구류 브랜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서 다 정리할 수 없지만, 브랜드로 가득 찬 이야기를 해서 즐거웠다. 이번 기회로 산 몰스킨 수첩을 쓰면서 앞으로도 몰스킨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고 생각해볼 것이다. 다음은 어떤 브랜드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될지,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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